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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20. 2023

민화의 매력

민화에 빠지다

어린이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날이다. 

이번엔 케이크가 아닌 치킨 담당이다. 치킨을 미리 주문해 두었기에 케이크담당 일 때 보다 수월해서 좋다.   

  

딸아이게게 드레스를 입혀 주었다.

호시탐탐 드레스를 입고 등원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매번 말리고 설득시키느라 힘들었는데,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드레스를 입혀주었다.     


하지만 날씨가 장난 아니게 춥다. 어젯밤부터 강풍도 불고, 기온은 어제보다 5도나 떨어졌다.

하필 오늘 왜 이리 추운지, 제발 감기 걸려서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바라본다.     

서둘러 준비해서 나섰지만 9시 40분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서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범이 어머니다.

범이는 네 살 때 같이 다니다가 다섯 살 되어 유치원으로 옮겨 간 친구이다.

딸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지난주 범이 누나의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해 주기 위해 선물을 사들고 범이 네 서 놀고 왔는데 누나와 범이에게 선물을 주어서 그런지 범이 어머니가 명절 선물을 준비해 놓고 전화를 한 것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나는 명절 선물을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받으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범이 어머니는 저번에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아서 준비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남매의 선물이 조금 부담스러웠다보다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누나가 받는데 동생이 안 받으면 섭섭할 것 같아 동생것도 준비한 것이었는데.     

명절 선물로 김세트를 받았다.

그리고 집에 많아서 드린다고 덧붙이면서 꿀병을 하나 주었다.     


에고.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나는 준비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번 시간을 내서 날 잡아 놀자는 말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서둘러 나는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주차장은 10시도 되기 전인데 만차이다.

반납할 책 10권을 들고 들어섰다.     


입구가 좀 혼란스러웠다.

한 할아버지와 사서분과 나누는 대화가 조용한 도서관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반납을 하고 나서 그림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적당한 그림과 적당한 글밥을 살피며 10권을 골랐다.    

 

사서분과 할아버지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옆에서 들어보니 할아버지께서 책을 고르는 동안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10분 채 되지 않았는데 가방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책을 대여해서 나오면서 할아버지의 황당한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침부터 가방을 잃어버린 마음이 어떨까.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매일 왔다 갔다 하는 도서관에서.


가방 안의 내용물 중 잃어버리면 안 되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라도 있다면 어떡할까.     

뒤숭숭한 마음으로 나는 차를 몰고 작업실로 향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민화를 그리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이번 작품은 사이즈가 제법 되는 작품이라 한 가지 색을 바탕에 칠하는데도 시간이 너무나 많이 들었다.    

 

날씨가 너무나 추웠다.

작업실에 도착해서 난로에 불을 켜고 커피를 한 잔 탔다.     

차갑게 굳은 손을 녹이며 손을 풀었다.

그리고 채색할 물감을 섞었다.

두 가지 색을 9:1 비율로 썩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썩어도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선생님의 설명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비율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했다.

1이어야 하는 색을 9를 짜고, 9여야 하는 색을 1로 짰던 것이다.

제법 많은 부분을 칠해야 해서 만든 양도 엄청났는데 이 많은 양을 잘못 만들다니.

나의 덤벙거리는 성격을 탓했다.     


에고. 많이 차분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어리섞은 실수를 하다니.

반성은 조금만 하고 서둘러 색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물감을 하나 다 짜야만 했다.

잘못된 실수로 물감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다시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고 칠하고, 또 칠하고를 반복하며 그 넓은 부분을 채웠다.

사이즈가 크다 보니 앉아서 칠하기 힘들어서 서서 몇 시간 작업을 했더니 허리가 아파온다.     

가만히 그 넓은 부분을 칠하며 생각해 본다.

내가 왜 다른 것이 아닌 민화에 빠진 걸까?


칠하고 칠하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칠하는 그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그림에 비해 민화는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칠하는 동안에 복잡한 일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오로지 손과 붓을 컨트롤하는 생각만 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상당한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집중력이 아주 약한 편이다. 하지만 민화를 그릴 때면 2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간다.

그래서 민화에 더 빨리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틀연속 칠해서 겨우 바탕의 3분의 2를 칠했지만 빨리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마 이번 작품은 3월쯤 완성이 될까?     


민화를 통화 인내심과 집중력을 키우고 있다.

아무리 빠르게 한다 해도 금방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채색을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바탕을 칠하고,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최소 두세 번 칠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느새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대단한 시간의 흐름이다.     


다시 한번 다른 색을 칠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명절이 지나야 다음 색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쉽지만

명절동안만 잠시 쉬어야겠다.     


그리고 명절이 지나고 또 열심히 달려보자.   

  

그림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인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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