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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24. 2023

부지런하면 바뀌는 일상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딸아이 친구의 엄마와 약속을 했다. 

오전 10시 30분 키즈월드 오픈런을 하자고.

8시 서둘러 준비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이는 깨우지 않아도 일어났다.     


영하 10도.

휴일임에도 출근한 남편이 자동차 온도계를 인증샷으로 보내왔다.

하필 이 추운 날 약속이라니.     


후회가 밀려왔지만 춥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서둘러 아침을 먹고 씻고 준비를 했다.

10시 친구엄마와 통화를 했다.


이제 막 아침을 먹였다는 말에 우리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노라 말했다.     

나가기 전 고양이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주고 화장실을 처리해 주고,

강아지 사료 챙기고, 물 갈아주고, 패드 갈아주고.


아. 난 외출 할 때도 왜 이리 할 일이 많은 걸까.

웃기지만 챙겨야 하는 똥강아지들이 많다.     


다 이놈의 측은지심 때문에 이 한 몸, 아니 우리 식구 건사하기 바쁜 나인데.

유기견, 유기묘까지 돌보고 있으니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 누가하랴 내가 해야지.     


한파특보가 내려진 오늘 딸아이를 똘똘 감 쏴 땀나도록 입혔다.

그리고 나 또한 이중으로 입고 집을 나섰다.     

딸아이 친구네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했다.


두 아이 중 첫째가 달려 나왔다. 몇 분 뒤 둘째가 달려 나왔다. 그리고 엄마가 내려왔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경주로 출발을 했다.     

친구네 엄마는 나랑 나이차는 많이 나는 동생이지만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말이 잘 통하고, 

애들까지 잘 어울려 놀아 생각보다 자주 만나는 사이이다.


애들끼리 잘 맞으면 어른이 잘 안 맞고, 어른이 잘 맞으면 애들끼리 잘 맞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 다행이다.

우린 그나마 둘 다 잘 맞는 편이다.     


같이 다닌 어린이집이 1년 채 되지 않았는데, 몇 개월 같이 다니고 헤어진 그 후에 계속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다행히 우리 다섯 사람은 주기적으로 만남을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아마 이게 아이들의 사이가 별로라면 끝이 나겠지만 아이들끼리 사이가 너무나 좋아 계속 유지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하이코 키즈월드에 미리 예매해 둔 입장권으로 들어갔다.

신이 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흐뭇해진다.   

  

항상 혼자라 친구를 갈망하던 딸아이를 위해 이 한 몸 희생을 하니 아이가 너무나 즐거워한다.

그리고 웃기지만 아이가 행복하니 나 또한 즐겁다.     

처음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다니던 아이가 한 바퀴 돌고 나니 친구의 손을 잡고 뛰어다닌다.

이제 쉴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어쩌면 딸아이가 아닌 엄마인 내가 더 아이에게 집착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남매의 모습을 보니 언제나 혼자여서 엄마에게 매달리던 딸아이가 왠지 짠하다.


항상 친구를 갈구하던 딸아이.

엄마가 조금만 더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친구 엄마들과 자주 만나며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었을 텐데.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소극적이다.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언제나 나 위주였다.     

하루종일 딸아이가 친구의 손을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니

부족했던 나의 모습만 계속 떠오른다.     


하지만 소심한 나에게 칭찬을 해본다.

강추위에 약속을 깨지 않아 칭찬해.

부지런히 움직여서 칭찬해.

돈을 생각하지 않고 나서서 먼저 계산해서 칭찬해.

초행길 서슴없이 운전해서 칭찬해.     


음. 하루동안 나 제법 잘 해냈다.


나 아닌 딸아이를 위해서 잘 해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했던 시간을 딸아이를 위해 썼으니 보람은 있었다.


새로운 곳. 새롭게 어울려 노는 법을 알려주고. 질서를 지키는 모습도 알려주고. 

한파에 방콕 하며 짜증만을 낼 뻔했던 하루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딸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혼자서 뭐든지 잘 해내는 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젠 조금씩 엄마의 손을 놔줘도 될 듯했던 하루.     


앞으로는 남편이 일하더라도 딸아이 손을 잡고 열심히 밖으로 나가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딸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나서야 늦게 퇴근한 남편과 술 한잔 하면서 얘기를 한다.

신이 나서 엄마의 손이 필요가 없었던 하루를 재잘재잘 얘기해 주었다.     

그런 나를 수고 많았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남편과 함께 술을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사는 거 별 거 없다.   

  

다 이런 맛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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