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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26. 2023

한파 대소동

갑자기 시동이 안 걸려 당황하다.

긴 연휴가 끝나고 드디어 딸아이 등원하는 날이 왔다.

어제 신나게 논 여파인지 9시가 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아이를 그냥 나둘수가 없었다.


더 자고 싶다는 딸아이에게 12시간 가까이 잤고, 어린이집 꼴찌로 가게 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제 잠들면서 꼭 1등으로 등원하겠다고 말하며 잠들었는데.    

 

남편은 출근길에 차량온도계를 찍어 보내왔다.

영하 17도.


말이 안 되는 온도이다.

이곳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숫자 이기도 하다.    

 

이런 강추위에 감기에 걸릴세라 아이에게 몇 겹의 옷을 껴 입히며 말했다.

“어린이집에서 외투는 벗어도 목수건은 벗지 마”

“응 왜?”

“밖에 지금 장난 아니게 추워. 잘못하면 감기 걸릴 수 있어”

“알았어”     


우리 모녀는 감기에 취약하다.

정말이지 면역력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감기에 잘 걸린다.

그래서 요즘엔 각종 영양제를 먹으며 면역력 키우기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나 이기도하다.

그 덕분인지 감기가 찾아와도 짧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코로나, 독감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것이 그 덕이 아닐까 추리해 본다.   

  

홍삼에서 알로에로 갈아 탄 것이 신의 한 수 이기를.

내가 선택한 고가의 알로에가 딸아이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있는 중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우리는 강하게 부는 칼바람을 맞으며 차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아이를 태우고 나서 시동을 거는데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차량 계기판에 뜬 화면을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묻고 싶었다.     

톡을 확인 안 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 시동이 안 걸려.”

“지금 차야?”

“웅”     


옆에서 딸아이가 외친다.

“아빠. 엄마차 시동 안 걸려”

“딸! 아직 어린이집 안 가고 거기 있어?”

“웅 아빠 못 가”

“조금만 기다려 아빠 금방 갈게”     


우린 그 추운 차 안에서 5분가량 기다렸고 남편이 오자 바로 남편차로 옮겨 타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빠랑 같이 가니 딸아이는 철없이 신이 나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야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내 차량 보닛을 열고 휴대용 배터리를 가져와 꽂았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걸리지 않았다.

몇 분 뒤 다시 걸었다.

역시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잠깐만 집에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회사에 갔다 오겠노라고.

20분이 지났을 즈음 남편이 내려오라는 전화를 했고, 나는 서둘러 내려갔다.     

남편은 자신의 차량과 나의 차량을 선으로 연결하며 점프를 했다.

단번에 시동이 걸렸다.

“역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최고네”    

 

미션을 클리어해서 뿌듯해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강추위에 얼굴은 빨개져 있었지만, 일을 하나 해결했다는 뿌듯함으로 남편은 회사로 복귀를 했다. 

그리고 나도 작업실로 갈 수 있었다.     


추울 땐 연료를 항상 많이 채워 넣어 놓아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주유소를 들러 기름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방금 전에 점프를 했다고 말하며 시동을 끄지 않고 켜 두었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나니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졌다.


명절 남편에게 받은 상품권으로 결제를 하고 잔돈을 받으니 왠지 공돈이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 이 단순함.     


작업실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난로를 켜고 가장 걱정했던 가습기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얼지 않았다.


며칠 전 그림을 그리고 물통의 물을 그대로 놓아두고 갔는데 그 네 칸짜리 물통의 칸 중에 가장 적게 물이 담긴 곳에 살얼음이 보였다. 너무 놀라웠다.    

 

아침에 주차장에서 너무 추위에 떨어서인지 작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얼어있는 물그릇을 바꿔주고 그리고 가습기의 물통을 비웠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추워진다는 말에 단단히 대비를 했다.


작업도 손에 잡히지 않고 엄마에게 줄것도 있고 해서 엄마집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아침에 일어난 대소동을 얘기해 주고, 추우니 밖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엄마에게 줄 것들을 이것저것 건네주고 나서야 나는 우리 동네로 향했다.


우선 가장 먼저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또다시 10권의 그림책을 빌려왔다.     

책을 들고 추위에 몸서리치면서 나는 집으로 열심히 달렸다.

6층을 단숨에 달려 올라갔다. 

숨이 차서 그런지 조금 따뜻한 기운이 몸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편안하고 따뜻한 곳은 역시 집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빌려온 그림책들을 살폈다.   

  

그림책은 딸아이에게도 보여주지만 목적은 내가 보는 것이다.

그림책을 만들려면 다른 그림책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따뜻하고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한 권 골라 따뜻한 커피와 함께 즐겼다.     


몸과 마음이 샤르르 녹아내린다.     


음. 역시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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