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 나의 첫 직업은 간호조무사였습니다.

간호조무사로서의 삶은 너무 고단하다.

by 가시나물효원

전문대를 졸업하고, 딱히 무얼 할지 내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뭘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잘하는 것도 딱히 없었다.

아빠가 대학 졸업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고 있는 딸을 보니 한숨을 내쉬며 “운전면허증 따, 학원 등록해 줄게”라고 말씀하셨고,

그다음 날 나는 아빠가 운전면허 학원 등록을 해주셔서 운전학원을 다니면서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리곤 아빠가 집에서 대학 졸업한 딸이 집에서 노는 꼴 도저히 못 보겠다고 “ 간호학원이라도 다녀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이라도 따…”라고 하셨고,

나는 그 해 간호학원 3월 개강반에 1년 과정을 등록을 하였고, 다음 해에 시험을 봐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첫 직장이 삶을 좌지우지한다고 해서, 어느 과를 선택해서 해당 병원에 갈지 망설였다.

정형외과?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한의원? 치과? 등등

구인 신문에는 간호조무사를 뽑는 곳이 많았다.. 취업의 길은 넓었는데 막상 내가 선택하려는 병원의 폭은 좁았다.

그렇게 고민고민하다가 익산에서 제일 바쁜 정형외과 병원에 취직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 원장들이 유능해서 그런지, 환자들 사이에 소문을 탄 건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손님들 덕분에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기 바빴다.

처음 하는 직장생활이라서 몸에 일을 맞춰가면서 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오전에는 외래에서 오후에는 수술방에서 근무를 했다.

외래에서는 환자이름을 차트 보고 호명하고 환자를 원장님 진료실까지 안내하고,

정형외과라서 드레싱 업무가 많았는데 환자들 드레싱 하는 원장을 도와 보빅, 포타딘, 등등 소독약을 원장들 스타일에 맞춰서

포셉에 쥐어줬고, 원장들이 붕대를 감으면 거기에 맞춰서 플라스타(반창고)를 잘라서 주는 일을 주로 했다.

때론 방사선사들과 깁스를 하는 경우 환자의 다리를 들어주거나 팔을 받쳐주기도 했고,

봉합이 필요한 사람이 오면 원장 옆에서 가위질을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술방에서는 환자의 바이탈싸인(호흡, 혈압등)을 체크하며 원장과 수술방 간호사가 소독되지 않는 부분

즉 오염된 부분에서의 일을 시킬 경우 내가 대신 맡아서 보조일을 했다..


간호조무사의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든 건 세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첫 번째는 접수대에 앉아서 편히 일하는 원무과 직원들을 보면서, 나도 좀 힘들지 않게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엉덩이주사(근육주사 IM), 혈관주사(정맥주사 IV)를 놓을 때 혹시나 환자가 잘못되면 어쩌나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내가 주사를 놓음으로써 혹시나 환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던지, 혈관을 몇 번씩 시도를 해도 잡히지 않는 경우.. 환자가 쏟아내는 짜증들을

내가 흡수할 그릇이 너무 좁았다고 해야 하나….

세 번째는 여 직원들의 은따로 힘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나 할까? 메디학원에서 보험심사 청구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나는 매주 일요일 대전으로 수업을 다니면서

보험심사청구 자격증을 취득했다.

두 번째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환자들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으면서 가끔 심하게 냄새가 나는 사람도 있고,

엉덩이에 오돌토돌 뭔가 많이 나서 만지기 싫을 정도의 피부를 가진 사람,

갑자기 주사 놓는데 방귀를 뀌어대는 사람.. 주사가 항생제여서 아픈데 주사가 아프다거나, 주사를 잘못 놔서 아프다고 난리 치는 사람 등등

주사를 놓는 입장에서의 불안감과 불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질투인 거 같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아빠가 직장생활 시작하자마자 차를 중고차로 한 대 사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차를 가진 유복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내가 본인들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니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고, 좋은 가방을 들고 다니고…

뭐가 그 여직원들에게 미움으로 찍혔는지 점심 먹을 때나, 간식 먹을 때, 쉬는 시간에 나를 은근히 따돌렸다.

나도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인지 잘 지내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너네들이 옷, 신발, 가방 등 이런 걸

질투한다면 나는 더더욱 비싼 옷, 신발, 가방도 들고 다닐 것이고,

환자들이 수고했다고 병원으로 보내주는 간식이며, 환자가 나에 대한 호감으로 종종 꽃 배달이 오는 것 또한

나는 열심히 즐겼다.


직장에서 정말 사람이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아무리 참고 견디려고 해도 한 번에 무너지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같이 일하는 원장도 본인의 기분대로 가볍게 나를 대하는 태도들도 싫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밑에 사람 없는데… 본인이 고용주라는 이유 하나로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게 이치 아니던가…

그렇게 간호조무사로서의 직업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분들이 요즘 내 주변에 많다.

다들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나는 간호조무사 직업을 높게 평가하진 않는다.

말 그대로 AN(assistant nurse)라는 말처럼 간호사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가끔 똑같이 고생하는데 좀 더 더러운 일은 몽땅하면서 월급은 간호사보다 2배나 적게 받는다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뭐든 각자 본인에게 맞는 일과 본인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있을 텐데,

나에게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은 딱 여기까지 인 거 같다.

지금은 우체국에서 청원경찰로 일하고 있지만 처음 가진 직업 때문에 그런지 이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사 2급도 취득하고 요양보호사도 취득한 걸 보면

첫 직장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파급력은 정말 크다는 걸 또 한 번 절실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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