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둬..
4월 15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우체국 건물이 30년 이상 된 건물이라고 해서 재건축 사업에 선정이 되어
약 9개월 동안 철거 및 건축 공사가 이뤄질 계획이 잡혔다.
나는 어떻게 되는지 몹시 불안했다.
갑자기 사업장이 없어져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돼버리는 게 아닐까?
본사에서 내게 내려진 통보는 다시 사업장이 영업을 재게 할 때까지 기본급의 70%를 받고 휴직하라는 거였다.
다른 주변사람들은 나 같으면 월급 70% 나오면 무조건 쉬고 놀겠다는 말을 한다.
나의 성향은 집에서 놀면 더 병난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MBTI가 E.N.T.J이다.
움직이고 활동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내게는 오히려 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건데 그런 활동들을 하지 말라고 하니
나는 너무 답답했고 불안했다.
우체국이 영업을 중지하고 하루 이틀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가다 생각하고 쉬었다.
직장생활 10년 만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쉬게 되어서 내 연가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냥 무조건적인 강제휴식이기에 즐겨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아 이대론 안 되겠어…. 뭐라도 좀 배워봐야겠다 싶어서 내일 배움 카드로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알아봤고,
직업학교의 문도 두들겨 봤다.. 직업학교 유인물을 보니 ‘전기내선 공사’라는 프로그램이 맘에 들어 직업학교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 학생들이 채워지지 않아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래 그럼 휴직동안에 그거 배우면 나한테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다 싶었다..
5월.. 6월…7월…8월….
전기내선공사의 프로그램은 결국 학생수 미달로 모집을 하지 않았다.
허어얼!!
난 그것만 믿고 기다렸는데 결국 나는 그 기다린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 한 도태된 나라는 생각에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부랴부랴 9월에는 무엇을 배워볼까??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10월 저렴한 가격으로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영어수업과 라인댄스를 등록했다.
그냥 그 수업 자체를 등록했다는 자체만으로 내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냥 마냥 돈을 벌지 않는 상태에서 지출이 이뤄졌지만 그냥 소득의 성과를 낸 듯 한 기분이랄까?
여기서 잠깐!!!
내가 가입한 영어수업을 깨알자랑하자면 내 학급 친구들은 주로 연령대가 60~70대가 주를 이루었는데… 열정은 우리 3040보다 더 패기가 넘친다.
그리고 생각보다 수준도 높고 꽤나 영어 발음이나 문법 단어에 진심이고 핸드폰 번역기를 찾아서 문장을 적어 그걸 읽는 노력 또한 정말이지 최고 중에 최고다.
이른 아침에 매주 월, 목 아침 10시에 1시간씩 영어 수업을 받는데 내 학급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익어가고 싶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끝없이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
(모르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 모르는데도 가만히 지나가는 게 더 창피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이다.)
11월 중순이 된 지금
제법 우체국 건물이 거의 다 지어져 가고…12월 말쯤이면 공사가 마무리되어 간다고 생각하니…
이제 나도 곧 복직하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 이렇게 긴 휴식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내가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된 사람마냥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만 생각을 했고
제대로 쉴 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막상 이제 슬슬 복직 준비를 하려고 하니 내가 그동안 쉬었던 시간들 동안 나는 너무 아등바등 아르바이트든 무언가를 막 하려고만 애썼다.
잠시 그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서 나를 온전히 맡기고 편히 쉬며 시간을 채워갔어도 됐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거 같다.
아직 한 달 넘게 남은 시간 동안 무얼 막 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브런치 스토리 작가로서 글을 쓰며 휴식도 갖고
독서도 하고
음악도 듣고
여행도 다녀오고….
그렇게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연습을 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