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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가게를 열기로 했다

그 망할 것 같은 시작

by 이런이유지

나는 서울에 올라가 몇 차례의 수업을 들으며 평소에 즐겨하지도 않고 직접 구매해 본 기억도 없을 만큼 낯선 디저트를 알기 위해 아니 만드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남편은 제주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로 취소 위기에 놓인 가게 계약을 성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일이라 그럴듯하거나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카페를 하겠다고 하면서 나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했고 남편은 카페 일을 전혀 해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둘 다 디저트를 즐기는 취향도 아니었다. 정말 대책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우리의 결혼식이 그랬던 것처럼 (혼전임신은 아니었다) 먼저 일을 저지르고 뒤에 수습하기로 했다.


진행 과정에서 건물주에게 신뢰를 잃어 모든 일이 무산될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계약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임차하고 있는 건물의 주인은 원래 그곳에서 국수장사를 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장사를 접고 다시 육지로 돌아간 상태였고 원하는 임차인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손님으로 안면이 있던 남편이 연락을 해서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말에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원래는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지인이 카페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침 나는 오븐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 함께하기로 했다. 준비과정에서 계획했던 일이 무산됐고 임대인과 만나는 날을 하루 앞두던 시점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디저트를 배우고 있었다. 갑작스럽지만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우리라도 이곳에서 장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남편이 임대인을 만나 사정이 이렇게 바뀌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전하자 임대인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생겼으면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지 바쁜 시간 내서 어렵게 내려왔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냐는 것이었다. 'A 씨 믿고 미리 매장 안에도 들어와 보라고 배려까지 했는데 나는 만나본적도 없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를 그 사람들이 내 집에 들락거렸다는 사실조차 기분이 나쁘다. 같이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있기는 했던 거냐. 당신들이랑도 계약 못하겠으니 당장 돌아가시라'는 말과 함께 쫓겨났다고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남편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나대로 노력하느라 이렇게 서울에 올라와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데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건가? 임대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억울했다. 함께하기로 했던 지인과는 멀어졌어도 창업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마지막까지 노력했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했던 말 중 '살면서 우연히 우리가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냐'는 말은 가슴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남편은 어떻게든 설득하겠다고 다시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겨 다음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냈다. 마침 내가 제주도로 돌아오는 날이라 클래스를 들으며 만든 케이크를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가 지나서 마음이 좀 누그러졌는지 생각보다 대화는 순조로웠다. 나는 이런 것을 만들어서 팔고 싶다며 만들어온 케이크를 선물했다. 그렇게 다시 만나서 임대인의 승낙을 받아냈다. 우리에게는 이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신뢰 회복이었고 그때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잔금 치르는 날까지 어떻게든 돈을 구해야 했다. 시부모님께 일부 도움을 받고 가능한 대출을 모두 알아봤다. 매장은 원래 국숫집이었는데 건물주의 오랜 로망을 담아 세심하게 잘 지어진 곳이라 바로 들어와서 영업만 하면 될 정도로 완벽한 공간이었다. 즉, 인테리어 비용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매장 오픈을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도 아니고 동종업계 종사자도 아니었다. 주로 봉지과자를 즐겨 먹는 내 취향은 베이커리나 디저트 샵의 고급 디저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오픈을 해버리게 될 줄은 몰랐다.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올 때만 해도 오픈날까지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할 생각만 했다. 사실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려도 될까 말까 했던 상황이었다.


텅 빈 가게 중앙에 책상을 놓고 스케치북을 펼쳤다. 주방 기구들이 들어올 배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어느 날 생리가 늦어져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빨간 두 줄이 선명하다. 나는 언제나 생리불순이었고 이 정도 늦어지는 건 늘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임신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임신 전 증상이 전혀 없었다. 평소 생리 전 증후군이나 생리통도 없었던 탓이었을까. 내가 임신이라니 하는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현타가 왔다.


나 가게 오픈해야 하잖아!!


빵도 굽고 생크림도 다뤄야 하는데 그 어떤 냄새도 견딜 수가 없다.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고 속이 메스꺼워 누워만 있고 싶었다.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계약을 마치고 연세도 (제주도는 주로 연세 계약을 한다) 지불한 상태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가게 2층 다락방으로 이사하기 위해 매장에 옮겨놓은 이삿짐이 한가득 쌓여있는 모습을 보며 누워만 있자니 그야말로 속이 타들어갔다. 오픈은 고사하고 우리 짐부터 정리해야 하는데 울렁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짐 정리조차 못한 채로 한 달이 흘렀다. 어느 날 남편이 먼저 나섰다. 이렇게 있다가는 출산일까지 아무것도 못해보고 1년을 그대로 흘려보낼 것 같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커피 및 운영은 남편이 맡아서 하고 디저트 만드는 일은 내가 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는 관련된 일을 해봤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커피머신을 다룰 줄도 몰랐다. 심지어 나는 커피를 마시지도 못하는데 이런 내가 아니 우리가 도대체 어쩌자고 디저트 카페를 하겠다고 이 난리부르스인가.


남편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없고 이 모든 상황이 부담으로 다가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캡슐커피 팔까 그냥? 아니면 음료는 외부음료 가능하다고 할까? 믹스커피도 괜찮지 않을까?” 농담이 아니었다. 어이없는 상상이지만 진지했다. 고민 끝에 우린 실력이 없으니 고수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자주 가던 로스팅 카페가 떠올랐다. 카페인을 마시면 종일 심장이 쿵쾅거려 커피는 입에도 못 대는 내가 유일하게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커피를 마시는 곳이다. 허영만 작가의 책에도 등장할 만큼 업계에서 유명하신 분의 커피라면 우리의 모자란 실력을 커버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우리 같은 초짜들에게 원두 납품을 해주실지가 의문이었다. 원두 납품을 받기 위한 면접 절차라도 거쳐야 할 것 같은 어떤 고수의 넘기 힘든 장벽 같은 것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문의를 해보니 너무도 친절하게 납품을 약속해 주셨다. 처음으로 믿을 구석이 생겨 한시름 놓았다.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겼을 정도다.


기쁨도 잠시. 이제 겨우 커피 납품처를 정했을 뿐이다. 좋은 원두를 맛있게 내려야 하는데 맛있게는 둘째치고 생전 만져보지도 않던 커피머신을 다룰 수나 있을지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난 케이크를 주로 만들어야 하는 중대한 역할을 해야 하니 커피는 온전히 남편 몫이었다.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난 그저 나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으니까.


남편은 매장을 가득 메우던 이삿짐을 2층 다락방으로 올려두고 어설픈 손으로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레시피와 도구를 집어 들기 시작했다. 레시피를 펼쳐두고 수업 때 촬영해 둔 영상을 번갈아 보며 케이크 시트를 굽고 생크림을 만들어 아이싱을 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동그랗고 각이 예쁜 케이크까지 바랬던 건 아니었다. 처음임을 감안하더라도 놀랄만한 망작이었다. 마치 뭐랄까... 언젠가 보았던 할머니의 손두부 같은 질감에 전혀 원형도 아닌 기하학에 가까운 형상이었다. 사람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을 경험했다. 우린 박장대소 했다. "아.. 너무 심각한데 왜이렇게 웃기냐" 그리고 깊어지는 한숨.


하..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은 일단 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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