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준비도 안된 채로 오픈을 해버렸다

일을 저지른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이런이유지

나는 특정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일을 잘 벌이지 않는 편이다. 보통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결정에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지만 아주 결정적이고 중대한 일 앞에서는 오히려 깊은 고민보다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따른다. 결혼이 그랬고 출산이 그러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렇다.


경험해보지 않은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결혼, 출산, 사업만큼은 보고 듣기만 한 간접 경험만으로는 내가 맞이할 현실 파악이 불가능했다. 혼자보다는 낫겠지, 둘 보다는 행복하겠지, 직장생활보다는 낫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이 모든 결정을 내렸으니.


결론적으로는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손해를 주거나 후회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나만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건가(당연히 아니지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임신 확인 후 입덧을 핑계로 눈앞에 닥친 어마어마한 현실을 훤히 보면서도 외면했다. 매장 한 구석을 꿰차고 누워 한 달쯤 지내니 메스꺼움도 좀 가라앉고 몸도 움직일만했다.


드디어 도구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다.


며칠 동안 레시피를 붙잡고 메뉴를 만드는데 일이 느려도 너무 느리다. 뭔가 하기는 하고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결과물이 안 나왔다. 세상에 딱 나만 멈춰서 발전 없는 느낌. 이렇게 하다가는 1년 내내 연습을 해도 어려울 것 같았다.


“안 되겠다. 그냥 되는 거 한 두 개로 시작하자 “


당연히 오픈은 ’ 연습이 어느 정도 되면 ‘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시간만 무한정 소비하는 느낌이었다. 병풍처럼 뒤를 지키고 있는 대출이자와 원금 생각에 시작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강제성이라고 생각했다. 오픈을 알리고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채여야 발전하겠다는 정말 단순하고 무식하고 용감한 생각이었다. 남편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어 내 의견에 동의했다.


작은 쇼케이스 안에 아이싱이 필요 없는 메뉴 두세 가지를 채워놓은 채 가오픈을 시작했다. 가게는 사람들 많은 바닷가가 아니고 동네 사람들 외에는 인적이 드문 중산간에 위치해 있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 이곳에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올 리가 없었다. 가게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보다 간식을 기다리는 고양이들과 동네 강아지들의 방문이 더 잦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어 창밖을 내다보면 드물게 동네 어르신들, 쌩쌩 지나다니는 몇몇의 차량들, 경운기, 공사장 대형 트럭들만 무심히 지나갈 뿐이었다. 이쯤 되면 매출이 먼저 걱정돼야 맞지만 디저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에 손님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손님이 올까 봐 걱정했다.


1층에서는 일을 하며 2층에 살다 보니 일이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오픈을 하던 때가 임신 3개월쯤이라 힘들면 쉬기도 하고 잠이 쏟아지면 잠도 조금씩 보충하고 끼니도 챙겨야 하는 생활에 새벽녘까지 퇴근을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번은 아침해가 밝도록 판매할 케이크를 완성하지 못하다가 겨우 마무리한 적이 있었다. 아침 6시가 넘어 케이크를 완성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주방과 매장 곳곳에 일하며 어질러놓은 쓰레기와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무슨 핑곗거리라도 만들어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오픈할 수 없게 됐습니다'라는 공지를 올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그래도 어쩌랴. 가오픈 기간도 끝나기 전에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시작을 한 우리가 그런 무책임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뒷 일은 남편에게 부탁하고 난 2층으로 올라가 잠깐 눈을 붙였다.


며칠 후 나는 전쟁이 나서 가게 지붕은 날아가고 큰 바위 덩어리가 날아와 쇼케이스 유리가 와장창 깨져 케이크들이 모두 뭉개져버리는 꿈을 꿨다. 어쩔 수 없이 오픈할 수 없는 상태를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겠다며 안도했다. 눈을 뜨고는 오픈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고 절망했지만..





keyword
이전 01화케이크 가게를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