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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누아즈(1)-그 미궁 속으로..

by 이런이유지

실패…!

실패….!!

또 또 실패!!!


벌써 영업 종료 시간인 7시가 다되어간다. 출근 후 지금까지 한 일이라고는 케이크 시트를 만들고 버리기 뿐이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육안으로도 부드럽고 폭신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를 자랑하는 3장의 빵인데 내 눈앞에 놓여있는 둥글넓적한 것들은 요리보고 조리 봐도 도저히 쓸모를 찾을 수가 없다. 오븐에서 꺼낸 틀을 뒤집어 빵을 빼 식힌 후 1cm 높이로 자르는데 어찌 된 일인지 3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확히 어떤 실수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2장을 썰고 나면 마지막은 너무 얇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럼 2번을 구워서 총 4장의 제누아즈 중 3장만 쓰면 될까 싶지만 덜 부풀어 오른 빵의 상태는 식감이 빵도 아닌 것이 떡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겨우 그 정도의 꼼수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부터 ’ 계량-반죽-굽기-식히기-자르기’를 온종일 반복했는데 단 한 번의 성공이 없다니. 첫 실패에 약간 실망했고 새로 계량하기를 몇 번 반복한 후 12시쯤엔 당황했다가 오후 2시쯤엔 짜증이 났다가 4시쯤엔 도대체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가 6시가 넘어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언제까지 나를 골탕 먹일 작정이냐 어디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오기라도 부리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제누아즈를 완성하는 일은 고작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서있는 것도 힘들고 이렇게 큰 스트레스는 태교에도 안 좋을 것이 분명하다.


과일을 손질하고 나면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며 태산 같은 부담인 생크림 작업을 해야 했다. 아침부터 생크림 작업만 했어도 퇴근시간에 마칠 수 있다면 잘했다고 손뼉 칠 일 일텐데 취침시간이 다가오는데 겨우 자투리 빵이나 긁어모으는 신세라니. 한가하게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시간도 없이 실패해서 쌓아놓은 빵들 중 쓸만한 것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난 배운 대로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실패의 연속인지 너무 궁금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고 시간이 뒤처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냉정하게 째깍째깍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만 멈춰 서있는 느낌. 어김없이 해는 지고 아침은 다가온다. 이런 중압감을 느낄 때면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나도 언젠가 실력이 늘어 모든 상황에 대처가 가능한 날이 오긴 올 텐데.. 그때의 나를 지금 당장 이 자리에 데려다 놓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오늘도 이렇게나 힘들었던 보람도 없이 대충 찝찝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토록 원하던 나의 미래는 대충 몇 개월 후에 있을 줄 알았지 3년을 넘길 줄은 몰랐다. 3년쯤 흘러 성공하는 횟수가 많아진 어느 날 과거의 나와 악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빵을 마스터했다며 자만 좀 해보려는데 또다시 나에게 실패를 건네는 제누아즈. 이젠 4년이 넘었는데도 컨디션이 안 좋거나 작업에 집중을 안 하면 그날은 어김없이 두 번째 계량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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