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알람에 맞춰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켰다. 어제와 같은 상황을 또 겪을 수는 없으니 어느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시트를 구워내겠다는 다짐도 아니고 고작 타협점이라니.. 어제 그 고생을 했다고 하루아침에 보상이라도 받듯이 실력이 늘어 있을 리 만무하고 타협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원인을 알아야 새롭게 시도해 볼 텐데 불과 몇 시간 전에 몰랐던 원인은 오늘도 알 수가 없다.
남편과 둘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빵 굽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아침 청소는 남편에게 미뤄둔다 해도 전날 만들어 숙성시킨 케이크를 손님들에게 하나씩 나갈 수 있도록 자르고 포장을 하고 장식도 해야 한다. 케이크를 자르기 또한 어려운 일이다. 분할기로 최대한 균등하게 자국을 남기고 그 선을 따라서 따뜻하게 데운 칼을 이용해 수직으로 자르는 일(수직 맞추기도 칼의 각도가 자꾸만 틀어져 일자로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른 케이크 밑바닥을 스패츌러로 떠서 하나하나 비닐을 씌우고 유산지 깔아서 접시에 옮기는 일까지(이 단계에서 케이크를 많이도 쓰러트렸다).
어제의 고단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픈 준비를 한다. 피로에도 모양이 있다면 내 피로의 모양은 저기 저 수월봉 지질공원에 있는 퇴적층 같을 것이 분명했다. 매일 쌓이는 피로를 풀지 못한 채 그대로 다음날의 피로를 쌓아 올리는 기분.
오픈전에 할 일이 많아 케이크를 쇼케이스에 다 진열도 못한 채로 손님을 맞이하고 주문 들어오는 대로 하나씩 장식을 해서 나갔다. 이렇게 준비가 안된 채 장사를 시작하면 남편과 나는 왜 더 일찍 그리고 더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나 하는 자책에 시달린다.
아직은 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모든 것에 서툴러 모든 일이 부담스럽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마감 시간인 오후 7시가 되면 녹초가 되어 누울 자리부터 찾았다. 매장 한구석에 누워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식사를 마친 뒤 작업을 시작한다. 배달도 안 되는 시골지역이라 7시쯤이면 알아서 식사를 해 먹어야 한다. 끼니를 챙기는 것 마저 일처럼 느껴진다. 어려운 케이크 만드는 작업을 앞두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밥 먹을 때 틀어놓은 노트북 앞에서 엉덩이가 요지부동이다. 시험을 앞두고 괜히 책상정리부터 하는 마음으로 제일 중요한 케이크 만들기를 제외한 잡다한 모든 일들에 집중력을 빼앗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은 숙명처럼 따라온다.
임신 초기라 휴식이 중요하지만 쉴 수는 없었다. 내일의 오픈시간이 터널 안의 열차처럼 쭈욱 밀려 나오는 느낌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도저히 피할 방법은 없고 시간의 속도에 맞춰 앞으로 달리는 것 만이 살길이었다. 시트는 오늘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유튜브를 찾아보고 책을 뒤져봐도 내가 아는 방법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방법은 알겠으니 내가 망치는 이유에 대해서 누구라도 알려주면 좋을 텐데 학교에 입학한 것이 아니니 그럴 사람이 없었다. 옆에 동네 빵집이라도 있다면 찾아가서 내가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케이크 가게라고는 덩그러니 우리밖에 없는 곳. 다시 한번 밀가루와 마주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