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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누아즈(3)-드디어 깨달은 손맛

by 이런이유지
제누아즈 만드는 과정

1. 계란, 가루재료, 우유와 버터를 정량대로 계량한다.
2. 계란과 설탕을 섞어 중탕으로 온도를 맞춘 후 반죽기에 돌린다.
3. 뽀얗게 올라온 머랭에 체친 밀가루를 섞는다.
4. 함께 녹여둔 우유와 버터를 반죽에 넣어 기포가 꺼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섞는다.
5. 유산지를 깔아 둔 팬에 나누어 담고 오븐에 넣고 굽는다.
6. 타이머가 울리면 꺼내어 식힌다.
7. 끝!!!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 과정을 매일 수 차례 반복하는 것인데 한 번을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고르고 뽀얀 시트를 완성하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오븐에서 바로 꺼낸 반죽의 가운데가 분화구처럼 푹 꺼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더 어려울 일이 남은 걸까? 차라리 앞서 겪은 어려움들이 나았다. 잘라서 괜찮은 부분을 골라 사용할지 말지 선택할 기회나 있었지 모양이 망가져버린 빵은 그마저의 희망 뭐 비슷한 것도 없었다. 꺼진 만큼 한쪽으로 눌린 빵은 육안으로도 회생 불능임을 알 수 있었다. 먹어보기도 귀찮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트가 꺼지는 현상은 빵을 꺼내자마자 팬을 바닥에 탕탕 두어 번 쳐서 수분을 날려주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빵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고 식히고 잘랐을 때의 결과물만을 생각하다 보니 알던 부분도 놓쳐서 생겨난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쌓였는지 사용 가능한 결과물이 점점 늘어나게 됐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머랭을 만든 후 밀가루와 버터를 섞는 과정을 아주 잘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잘해보겠다고 지나치게 섞다 보면 반죽이 꺼져버리고 또 꺼지지 않게 하려고 최소한의 주걱질을 하다 보면 어딘가는 덜 섞여서 문제였다.


원인조차 몰랐을 때는 '원인을 알아야 고치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원인을 알고 나니 알면서도 원하는 상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날이 갈수록 피로는 쌓였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어려운 빵 굽기를 반복하다 보니 적당히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반죽을 하고 결과물이 잘 나와주기를 바랐던 적도 많았다. 중간 과정을 대충 하면 결과도 대충 나온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진리를 깨우치듯 빵이 잘 나오는 매끄러운 반죽 상태를 눈으로 손끝으로 느끼게 됐다. 이제 됐다 싶었다. 드디어 몸으로 체득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초기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미래의 내가 바로 여기에 서있구나! 하지만 빵 굽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고 그 뒤로 난 3년이 넘도록 제누아즈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이제 좀 알겠다 싶으면 실패하고 정말로 알았다 싶을 때 또 실패했다.


첫 해부터 2년 차 정도가 될 때까지는 2호 사이즈를 기준으로 최대 6개까지 구울 수 있는 오븐에 반죽을 딱 2개만 넣고 구웠다. 더 많은 양을 구우면 온도를 달리 해야만 할 것 같고 중간에 열어서 새로운 반죽을 넣으면 열기의 변화가 있어 빵이 잘 안 구워질 것 같다는 뇌피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기계의 성능을 너무 못 믿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움을 겪는데 또 다른 실패요인을 추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효율은 떨어지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에 미련하게 굴었다. 빵을 2개만 굽고 다 나오면 또 다음 반죽을 넣고 하다 보니 마감 시간도 무한정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홀케이크 예약이 없어서 할만했지만 점점 주문이 많아질수록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차를 두고 반죽을 2개 더 넣어서 구워봤더니 여전히 잘 된다는 것을 알았다. 연속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시간 단축의 꿈에 한 발 다가가게 된 것이다.


3년 차가 가까워질 때쯤 반죽기 용량이 부족해졌다. 더 큰 용량은 가정용이 아닌 업소용인데 내가 과연 그런 기계를 다룰 수가 있을까 싶어서 주저했다. '업소용'이라는 단어가 갖는 어감은 왠지 업장경력 없는 내 손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업소용 반죽기를 주문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의 출근날짜를 받아둔 정도의 설렘과 두려움으로 기다렸다. 다행히 생각보다 사용이 편리했고 덕분에 한 번에 생산해 내는 빵의 개수를 늘릴 수 있게 됐다. 2호 사이즈의 빵을 한 번에 5개까지 만들 수 있게 되며 업무효율도 높아졌다. 나에게도 효율을 따질 정도의 실력이 생기다니. 새삼 감격스러웠다.


이제는 한 번에 여러 개의 반죽을 익힐 때 적절한 온도를 맞추는 일도 익숙하고 오븐이 돌아가는 중간에 문을 열어 다른 반죽을 넣는 것도 두렵지 않게 됐다. 지금도 종종 빵 굽기를 망치지만 이젠 경력과 여유가 생겨 두 번째쯤이면 완성도 높은 제누아즈를 만든다. 예전엔 막연함과 또 망칠 것 같다는 두려움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아주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이었다면 이제는 '아 귀찮은데' 혹은 '빨리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정도의 생각 후 별 부담 없이 제누아즈의 장벽을 비교적 가볍게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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