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이름에 케이크를 넣은 건 예쁘게 아이싱이 된 케이크를 판매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아이싱이 없는 메뉴만을 판매하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 늘 아쉬움이 가득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싱이 필요한) 쑥케이크를 만들기는 했지만 과일이 들어간 하얗고 신선한 케이크를 판매하고 싶었다.
2019년 5월 말 가오픈을 시작하고 6월에 정식 오픈을 하며 신선한 제철 과일이 들어간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생크림케이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짝인 딸기는 겨울에 나오기 때문에 6월부터 출하가 시작되는 복숭아로 시작했다. 복숭아를 하나씩 자를 때마다 맛을 보며 당도가 높은 것들을 골라 과일을 듬뿍 넣고 케이크를 완성했다. 케이크는 하루 숙성이 필요해서 냉장 쇼케이스에 넣어두고 다음 날 컷팅을 했다. 처음으로 완성한 복숭아 케이크가 그렇게 예뻐 보여서 사진을 잘 찍어보겠다고 여기저기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얼마 전 그날 찍었던 사진을 발견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완성도의 기준치가 현저히 낮았던 그땐 매일 복숭아 케이크와 쑥케이크를 하나씩 만드느라 애를 썼다.
생크림은 크게 동물성과 식물성으로 나누는데 동물성 크림은 우유에서 유지방을 분리해서 만들고 식물성 크림은 우유의 유지방 대신 팜유, 대두유, 쇼트닝 등 식물성 유지에 안정제, 증점제, 착색료, 향료 등의 첨가물을 더해 만든다. 식물성 크림의 맛과 질감은 동물성 크림보다 떨어지지만 온도 변화에 민감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식물성 크림에는 트랜스지방산이며 나쁜 콜레스테롤도 포함되어 있어 많이 먹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 어릴 때 흔히 먹던 동네 빵집의 케이크들 대부분이 이 식물성 크림을 활용한 것들이었다. 내가 케이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매장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선택할 때 식물성 크림은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동물성 생크림에 관한 몇 가지 상식은 있었다.
첫째, 생크림은 반드시 차가운 상태를 유지할 것.
둘째, 생크림을 돌리는 휘퍼를 들어 올렸을 때 뿔 모양이 생길 때까지 기계를 중고속으로 돌릴 것.
셋째, 너무 오래도록 기계를 돌려 오버휩 상태가 되지 않도록 유의할 것.
넷째, 아이싱을 하면서도 온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생크림이 담겨있는 통 아래에 얼음볼을 받쳐둘 것.
다섯째, 아이싱 작업을 너무 오래 하면 생크림 상태가 변할 수 있으니 단시간에 완성할 것.
생크림 역시 성공 포인트는 간단했다. 요점은 온도와 점도였다. 모든 조건을 최대한 충족시켜 두고 배운 대로 또 영상에서 본 대로 잘 따라 하는데도 처음엔 성공 그 비슷한 것도 못해봤다. 그래도 제누아즈를 구울 땐 어쩌다 꽤 괜찮은 것들이 나와줘서 이래저래 모아서 사용하기라도 했는데 이 생크림이란 놈은 단 한 번의 희망도 주지 않았다.
작업이 어려운 포인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1차 난관은 적당한 점도 맞추기였다. 아무리 뿔모양이 생길 정도로 반죽기를 돌려도 작업이 어려웠다. 동물성 생크림은 휘핑을 할 때 기계를 너무 많이 돌리거나 작업 시 터치를 많이 하다 보면 생크림 분리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빠르고 정확한 작업이 중요시되는 것이다. 생크림의 상태는 사용법에 따라 보통 몇% 인지로 구분 지어 점도를 조절하는데 보통 케이크를 만들 땐 60%~70% 혹은 80% 정도까지 휘핑된 것을 사용한다. 90% 이상 휘핑된 생크림은 텍스쳐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며 손으로 뜯어낸 두부의 표면같이 단단하고 뭉글한 느낌으로 분리가 시작된다. 크림의 유화가 풀어져 지방층이 뭉치기 시작하는 시점인데 이렇게 까지 된 크림으로 만든 케이크를 먹어보면 먹고 나서 입에 기름기가 남고 맛은 느끼하며 식감도 좋지 않다. 사실 생크림의 점도를 몇 퍼센트인지로 나누는 이론적인 지식을 인지한다고 해서 손이 그대로 잘 따라주는 것이 아니었다. 생크림에 관한 이론은 저 멀리 의미 없이 틀어놓은 텔레비전 속의 말들처럼 배경음이 되어 흩어지고 눈과 손만 남아 서로 교감하며 생크림의 늪을 허우적댔다.
이상적으로 꿈꾸던 풍부하고 산뜻한 맛과 질감으로 휘핑된 생크림은 촘촘하고 쫀쫀한 점도에 완벽한 윤기가 난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그 질감을 통해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지금은 어떻게 작업해야 우리가 원하는 그 완벽한 크림을 만들 수 있는지 알게됐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