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이 예쁘게 살아있는 아이싱을 해내려면 작업하는 동안 수평과 수직을 잘 맞춰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손이 그 당연한 걸 해내지 못하고 있다. 속 작업을 마친 케이크 윗면에 생크림을 2~3번 떠올려 적당한 두께로 펼치고 옆 면 또한 비슷한 두께로 일정량을 덧 붙이는 것으로 모양을 잡아간다. 도구가 손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케이크의 모양은 울퉁불퉁했다. 빈 곳은 새로운 크림으로 덧 붙이면서 매끄러운 모양을 완성하는데 노련하지 못한 손놀림으로 하염없이 더하기만 반복하니 생크림은 두꺼워지고 모양은 잡히지 않았다.
윗면에서 옆면으로 떨어지는 각이 예쁘게 완성되려면 생크림의 온도와 점도가 잘 맞아야 한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도구의 각도도 한쪽으로 기울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답답했다. 윗면은 가운데가 불룩하거나 테두리 부분이 두꺼워지고 옆면은 아래쪽이 두꺼워져 사다리꼴이 되고 또 그것을 의식해서 작업하면 위쪽이 두꺼워져 흡사 네페르티티 여왕의 왕관모양으로 마무리됐다.
다음날이면 조각으로 나눠 개별포장을 하고 윗면을 장식하면서 실수한 부분을 커버하려고 애를 썼다. 지인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만들었다면 양해를 구해보겠지만 실전은 그게 아니었다. 너그럽고 좋은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종종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손님들이 오면 쇼케이스의 케이크들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돈을 받고 판매하는 제품으로써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으니 늘 마음 한구석에 큰 돌덩이가 있는 느낌이었다. ‘가오픈 기간입니다’ 혹은 ‘오픈한 지 몇 개월 안 됐어요’라는 말에 기댈 수 있는 시간들도 빠르게 지나갔다. 일단 일을 시작하고 운영을 하다 보면 실력도 당연히 늘게 될 테고 그 기간은 대략 1년쯤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 같지 않은 현실에 부담이 커졌고 대책 없이 가게를 오픈해서 개고생 중인 이런 상황을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다.
각을 살리기 위해 매일매일 돌림판을 돌렸다. 연습용인지 전문가용인지 구별도 못하고 도구를 사용하다가 점점 더 나은 것들로 바꿔가면서 최상의 상태를 꿈꿨다. 전문가들은 아이싱 작업을 5분 이내로 끝낸다던데 또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완성하기도 한다던데 하는 말들만 크게 들렸다. 50분을 붙잡고 있어도 모양이 안 나오는데 도대체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가능한 속도인가 의심했다. 물론 내가 정말로 케이크 작업을 50분 동안이나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전에 다 망쳤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싱 부분을 다 거둬내고 새로 생크림을 준비해서 만드는 진 빠지는 작업을 계속했다. 초반엔 주로 이런 식의 삽질로 시간을 속절없이 보내다가 결국 야근까지 하게 되는 상황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주 가끔은 생크림이 손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 때가 있기도 했다. 그럴 땐 잠깐 드디어 방법을 터득했다고 착각했고 그다음 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을 해보면 또 실패 하면서 마음은 1톤쯤 더 무거워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같은 재료로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데 어제는 괜찮고 오늘은 안 괜찮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뭐랄까. 시간이 흐를수록 일을 한다기보다는 스스로를 시험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체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의 인내심과 지구력은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하는 기분. 또 어쩔 땐 싸우는 심정으로 내 말을 지겹게 안 듣는 생크림을 멍하니 째려보기도 했다.
반죽기에 많은 양을 돌려둔 생크림을 끝까지 일정한 점도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풀어졌다. 그러면 다시 치고 또다시 쳐서 사용했고 결국 분리현상이 일어나 통째로 버리는 일이 잦았다. 방법을 생각해 보다가 생크림 휘핑시간을 조절해 보기로 했다. 반죽기에 계량하는 생크림의 용량은 그대로 하고 점도 조절을 작은 볼에 소량씩 덜어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절하기가 더 쉬워졌고 현재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나에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이대로 적응해 왔다.
점도랑 온도는 짝꿍이라 점도를 조절할 때 온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작업 중에 생크림 분리가 쉽게 일어나고 점도도 생기지 않는다. 억지로 해봐야 절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 단순히 모양만 안 나오는 게 아니고 표면도 매끄럽지 못하다. 불안정한 아이싱을 완성하면 케이크 아래쪽으로 물이 생기기도 한다.
한참을 고군분투하다가 "아 더 이상 못하겠다"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남편이 옆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 썰어서 비닐로 다 쌀 거라서 별로 티 안 나", "무너지는 거 아니면 그만 마무리하자", "얼른 냉장고에 넣어봐" 위로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그 괜찮다는 말조차 반갑게 들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늦도록 마무리하고 잠이 들면 또 같은 '여전히 각 잡히지 않은' 일상의 반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