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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맛

구름을 닮은 케이크

by 이런이유지

디저트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 제과류는 늘 먼 이야기였다. 음식은 맛집을 찾아 먼 곳이라도 주저 없이 다니면서도 디저트류를 따로 찾아 먹지는 않았다. 식사 후 근처 카페를 갈 때는 메뉴보다는 공간이 필요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집에서는 과일이나 슈퍼에서 사다 놓은 과자를 먹는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케이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면 늘 필요했기 때문에 이벤트 음식으로써 익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적엔 주로 동네 빵집에서 팔던 버터크림 케이크를 먹었고 조금 커서는 우리나라 대표 체인점의 케이크를 먹었다. 먹었지만 먹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케이크의 크림은 늘 달고 느끼하기만 하다는 생각에 빵만 파먹다가 말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를 나누어 담은 접시를 앞에 둔 순간들은 언제나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맛있는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초를 꽂고 여기저기 크림을 묻히며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필요한 케이크는 좋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음식이지 맛있어서 사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 조각 이상을 먹는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이었다. 늘 남은 케이크는 은박지에 싸인채 냉동실 한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어느 날 '으악, 이게 아직도?!'라는 외침과 함께 버려졌다.


몇 년에 한 번쯤은 아무런 이벤트가 없더라도 부드럽고 폭신한 케이크가 생각날 때가 있었다. 대략 3년 정도의 주기였던 것 같다. 난 케이크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홀케이크는 부담스러워 며칠을 고민하다가 기회를 봐서 한 번씩 조각 케이크를 사 먹었다. 그럴 때마다 며칠 동안이나 고민하고 꿈꾸던 상상의 맛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분명 맛있게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었을 텐데 난 맛있는 디저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결정하고 처음 겪는 우여곡절에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다가 문득 케이크가 먹고 싶은 순간 상상하고 기대했던 생크림 케이크의 맛과 질감을 떠올려봤다. 빵은 방금 나온 카스텔라의 속살처럼 뽀송뽀송 가벼우면서 부드럽고, 우유의 풍미를 가진 산뜻한 크림 사이로 신선한 과일이 듬뿍 들어간 풍성하지만 무겁지 않은 케이크. 왠지 뭉게구름을 닮아있을 것 같은 그 맛을 찾아내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했다.


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오전부터 저녁까지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한 일, 생크림 작업이 너무 어려워서 제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업체에 문의했던 일 (나는 절실했고 담당자는 어리둥절했다), 만들 땐 괜찮았는데 판매하려고 보니 모양이 무너지던 일 등 숱한 어려움을 맞이해야만 했다.


내 노력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렵기만 한 케이크 앞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남편과 전국일주를 목표로 캠핑을 하던 중 겨울 추위를 피해 잠시 내려왔던 제주에서 3년간 놀고먹다가 우연히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 좀 놀고먹었다고 이런 어려움이 오나? 1mm만큼이라도 나아지는 건 맞는 건가? 다른 케이크집 주방은 어떻게 돌아갈까? 제누아즈가 이렇게까지 안 되는 게 말이 돼? 생크림은? 뭐야 도대체 이거!! 나 제주도에 놀러 온 건데 지금 이 상황 도대체 다 뭐야 으허허헝!!ㅠ


서당개는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난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수를 반복 중이니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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