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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빵을 좋아하기라도 했더라면

by 이런이유지

한 동안은 남들처럼 빵을 좋아하기라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찮은 내 실력에서 조금이라도 완성도 높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새벽 늦도록 고생을 하다 보면 취미로라도 만들어 봤더라면, 아니 관심이라도 가지고 살았더라면 이렇게 어려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픈 초기에는 사실 완성된 모양에만 온통 신경을 썼다. 수업을 들으며 완성해 낸 제품의 맛은 이미 훌륭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수업 때 완성했던 제품의 맛은 고정값이라 여겼다. 난 레시피를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진에 멋지게 나올만한 모양을 만드는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모르고 또 몰라서 가능했던 황당한 발상이었다. 가끔 옛날 사진을 뒤져볼 때가 있는데 비루한 케이크 상태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제과류와 제빵류 모두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야 많이 먹지만 여전히 나는 빵순이보다는 밥순이다. 평소에 즐기지 않지만 케이크를 만드는 것 자체에는 즐거움을 느껴 다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만들면서도 잘 먹지는 않았다. 남편은 먹어봐야 한다며 중간중간 맛보기를 권했지만 그 마저도 억지로였다.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할 때도 맛보기를 잘하지 않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던 디저트를 그것도 완성되기 전의 원재료들을 먹어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내가 믿을 구석은 딱 하나 바로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자신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좋은 재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쓰던 제품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재료를 바꾸고 또 바꿨다. 실제 맛에서도 차이를 느껴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초기에는 손님이 적어 케이크 남는 일이 많았는데 재료비와 수고스러움만 생각하면 팔릴 때까지 며칠이고 냉장고 안에 두고 싶지만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했다. 그렇게 해야 손님 앞에서 당당하게 메뉴를 설명하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이용 후기가 올라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동종 업계에서 일하다가 휴직 중인 손님이었던 것 같다. 케이크가 맛은 있는데 빵이 조금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응? 빵?

아...!!


완성한 케이크 재료들의 세세한 차이점은 느끼지 못했는데 먹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거나 전문가는 이런 차이점도 느끼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번개라도 얻어맞은 듯했다. 빵에 대한 언급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간과하고 있었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에 집중하다 보니 크림에만 정신 팔려있었는데 빵이라니!!


그때부터 나의 제누아즈 수난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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