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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Nov 19. 2019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살아남기

무적 통장 꿈나무


 결혼 전, 국민임대아파트 26형(원룸)에서 자취하고 있었던 나는 신혼생활 또한 그곳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까지 총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구하러 다닐 심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오랜 수험생활로 인해 결혼 시점까지 모아둔 돈 없었던 나, 결혼할 생각이 없어 버는 족족 써왔던 남자친구가 만났으니,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원룸에서 신혼을 시작해 첫 아이 7개월까지 키우고 국민임대 36형(약 10평)으로 이사를 했다. 첫째가 7개월부터 본격 걸음마를 시작했던 터라 아주 절묘한 시기에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어찌나 설레던지.


 36형은 약 10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작은 방 하나, 거실 하나, 좁은 주방으로 구성돼 있다. 좁은 편에 속하지만 원룸에서 이사 온 나와 남편은 이제야 숨 좀 쉬며 살겠다고 들떴다.



 이곳에서 둘째까지 낳고 3년 정도 살다가 최근 국민임대 55형(약 23평)으로 이사했다. 55형은 거주하는 국민임대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장 큰 평형으로, 거실다운 거실, 방다운 방이 있어 비로소 집 느낌이 났다.


 누군가 놀러 와도 절대 자고 갈 수 없었던 구조의 이전 두 집과는 달리 이번 집은 손님에게 방 하나쯤은 내어드릴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자고 갈 수 없다.'는 점은 사실 단점보단 장점으로 작용했던 부분이다. 친정이건 시댁이건, 무조건 당일치기라니! 아싸라비아.


 좁은 집을 거쳐 지금의 집에 이르기까지 온몸에 참을 인을 새기는 세월이었다. 집안의 가구와 커다란 장난감을 피해 요리조리 걷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레고 블록이라도 밟는 날엔, 목구멍에서 온갖 쌍자음이 들끓었다.


 장난감이 거실을 장악해도 발 디딜 틈이 있다니! 이곳이 천국이로구나. 아이 둘을 육아하며 틈틈이 짐 정리를 하려니 진도가 영 나가지 않았다. 무려 4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10년이 채 안된 국민임대아파트인데, 10년 훌쩍 넘은 듯 보이는 올드한 느낌은 물론이거니와 23평이 17평처럼 보이는 마법의 공간이었다.


 좀 더 깔끔하고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 시트지 작업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온라인으로 몰딩 시트지를 주문했다.



 덕분에 한껏 밝아진 거실의 모습이다. 화분을 배치해 생기를 더해보았다. 건강한 식물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식물을 들일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화원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햇빛을 덜 받아도, 물을 덜 주어도)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보았다.



 칙칙한 신발장은 화이트톤 페인트를 칠하였고, 손잡이에도 골드 스프레이를 도포해 분위기를 바꾸었다.


슈즈랙을 이용해 공간활용을 한 신발장 내부
신발장 뒷면에는 포켓을 달아 아이들 어린이집 통신문을 넣어두었다


 국민임대아파트 주방의 기본값이다. 여러 차례 이사를 하다 보면 주방과 화장실이 언제나 가장 복병인데, 이 집도 예외는 없었다. 기름때와 찌든 때 8년 치가 누적되어 있었고, 오염물질들이 겹겹이 쌓여 단층을 이루고 있었다. 곰팡이와 때를 닦아내다가 내 남은 수명의 1/4 정도가 함께 닦여나간 기분이 들었다.



 주방 조명과 싱크대 손잡이를 교체하니 전반적으로 밝아진 분위기다. 생활 스크레치가 심한 수전 또한 교체해주었다.



 원형식탁의 로망을 실현한 주방의 모습이다. 흔들림이 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견고하고 공간 활용에 도움이 되어 만족도가 높다. 아이들이 모서리에 찍힐 일이 없어 안전하다.


주방과 이어지는 발코니 :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


 냉장고 옆쪽에는 이전 집에서 아이들 옷장으로 사용하던 수납장을 두어 잡다한 생활용품들(청소도구, 욕실용품, 미세먼지 마스크, 의약품 등)을 수납하였다.



 냉장고와 수납장 사이에는 재활용 분리수거함을 두었다. 예전 집에서는 베란다가 하나뿐이라 세탁기 두는 베란다에 분리수거함을 두었었는데, 동선이 길어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앞 베란다에 두었다.



 분리수거함 맞은편에 있는 스피드 랙에는 상온에서 보관 가능한 각종 식료품을 적재했다.


주로 군것질거리


 신발장 색상과 동일한 시트지가 붙어있던 안방 문에도 페인트칠을 해주기로 했다.



 화이트톤의 페인트를 칠하고, 손잡이를 골드 색상으로 달아주었다. 문패도 같은 색으로 맞춰 부착해주니, 호텔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안방 조명등은 깃털등으로 달아주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너무 낮게 달았는지 남편이 자꾸 헤딩을 한다. 옷 갈아입다가 팔 쑥- 넣는 시점에서도 전등을 몇 번씩 건든다. 장난감에 냥냥 펀치하는 고양이 같다.



침대 아래쪽 벽면에는 붙박이장을 설치하기로 했다.



 무광 화이트톤의 붙박이장을 설치하니 살짝 고급스러워 보인다. 요즘 대세인 우드 블라인드도 달아주었다.



 이전 집에서 제대로 된 화장대가 없었던 터라 옷장 겸 화장대로 사용할 서랍장을 하나 들였다. 골드 프레임 거울을 거치하고, 수납장 손잡이도 골드 색상으로 바꿔달아 주니, 꽤 그럴듯하다.

 

 평소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 화장품은 단출한 편이다. 둘째 아이 낳기 전까지는, 첫째 아이 등 하원 길에도 풀메이크업 상태였거늘. 시간적 여유 없는 건 차치하고, 무엇보다 살이 쪄서 바르는 면적 넓어져 화장품 값이 더 많이 드는 듯하다.


 

 붙박이장과 서랍장 사이 공간에는 사용 시기 지난 서큘레이터를 봉인해두었다.



 화장실 옆 틈새 공간에는 리빙박스를 쌓아 맨 위칸은 수건, 두 번째 칸은 아이들 내복(씻고 나와서 바로 갈아입힐 수 있어 엄청 편리하다), 세 번째 칸은 휴지를 보관해두었다.



 사전점검 때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던 화장실. 검정색 줄눈이 시공되어 있는 것 아니냐고? 무려 곰팡이다!


 세면대와 변기 뒤는 처참히 녹슬고 곰팡이로 뒤덮여 있어, 업체를 불러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갈색 꽃무늬 벽이었던 욕조 옆 포인트 타일은 욕실 전용 페인트로 칠해주었다. 페인트가 우윳빛 색상이라 기존 화이트톤 타일과 살짝 색상 차이 있지만, 갈색보다는 훨씬 낫다. 암만.



 어린이집 화장실, 키즈카페 화장실에서 자주 보셨을 악어 수전을 가정집에 달아보았다. 오늘도 씻기 싫어하는 아이들 데리고 "악어가 할 말이 있대." "안녕 씻기 싫어하는 친구? 나랑 물놀이하고 놀자!" 등 악어에 빙의해 씻기기를 시도한다. 내가 악어인지, 악어가 나인지.



 아이들 방으로 사용할 공간이다. 생각보다 커다란 붙박이가 있어, 아이들 옷은 붙박이 안에 전부 수납 가능했다.



 아이들 방문에도 문패를 달아주었다.


 키즈룸이라니!

 있어 보인다.

 장난감 있어 보인다.



 아이들 방은 역시 정신없어야 제 맛이다. 저게 제일 깔끔한 상태라는 것이 대반전. 평소에는 모두 바닥에 쏟아져 나와있다.



 주방놀이 옆에는 3단 선반을 두어 아이들 장난감을 수납했다. 주로 습기에 약한 원목 장난감을 놓았다.



 방문 옆쪽 공간에는 책장을 두었다. 아이들 책은 왜, 높이도 너비도 제각각인 것인가. 책 높이 책등 색깔 맞춰서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고뇌에 빠진다.



 알록달록한 모빌도 달아보았다. 베란다 오갈 때마다 얼굴을 공격당하지만, 귀여우니까 참는다.



 아이들 방과 이어진 베란다 모습이다. 55형은 앞뒤 통 베란다가 있어 집에서 계주를 해도 될 판이다. 버리기엔 넓고 활용하기엔 좁아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완성된 베란다 모습. 3단 선반 두 개를 이어 습기에 강한 장난감을 보관하였고, 하단 박스 안에는 듀플로와 맥포머스가 각각 수납되어 있다.



 구석 벽면에는 책장을 세워 시기 지난 첫째 아이 책을 꽂아두었다.


거실과 이어진 베란다


 너비가 1500mm로 앞뒤 베란다 통틀어 가장 넓은 공간이다. 한여름에 이사해 정리안 된 이삿짐을 최근까지도 쌓아두었던 곳이라 가장 늦게 빛을 발하게 된 공간이기도 하다. 남편, 아이들과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나니, 겨울이다. 시부랄, 없는 부랄 꽁꽁 얼겠네.



 한창 유행하는 라탄 의자를 놓고 열대지방 느낌으로 꾸미고자 하는 욕구가 솟아났지만, 라탄은 아이 키우는 집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까슬까슬해서 앉으면 따갑고, 편하지 않았다. 라탄을 포기하고 들인 이케아 의자. 실외용이라 오염과 습도에 강한 데다 생각보다 몹시 안락하다.



 통돌이 세탁기를 이용하는 중이라, 새로 들인 건조기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길목에 놓기로 했다.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좁아 매우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  남편도 나도 표준체형보다 조금씩 돼지런하지만, 게걸음으로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다.



 건조기 앞쪽 남는 공간에 원목 선반을 놓고 빨래 바구니를 올려두었다.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 아래 바구니엔 자주 사용하는 공구와 세탁용품이 보관되어 있다.


 스쳐가는 집, 어차피 내 집 아닌 집이란 생각으로 거주하다 나가는 사람이 많은 국민임대아파트. 본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만 손보면 스스로 주거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 국민임대아파트는 퇴거 시 [원상태로 복구]함이 원칙이다. 관리사무소의 재량에 따라 복구의 기준이 상이하니, 인테리어 전에 꼭 관리사무소와 이야기하여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임대아파트 거주자들을 두고 일부 아이들이 휴거(휴먼시아 거지)라 일컫는다 한다. 임대아파트에 대한 시선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닌지라 반박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 집도 많지만, 우리 집은 어쨌든 현재 거지 맞다. 엉엉.


 신혼초에는 무리한 대출을 하여 집을 구하기보다, 차근차근 모아가는 방향을 선호했다. 빚이 없으니 버는 족족 저금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 앞으로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컸다. 내 씀씀이도 컸다. 이제야 "빚이 있으면 오히려 더 허리 조이고 산다."는 지인들의 말씀이 납득되었다.


 국민임대아파트는 소득제한, 차량가액 제한이 있고 무주택자여야만 거주가 가능하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민간분양이나 공공분양 요건에 아주 적합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소득이 높지 않은 신혼부부라면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며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도전하길 추천한다. (글쓴이도 남편 청약통장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당첨되어 분양권을 가지고 있다. 청약에 당첨이 되면 거주중이었던 임대아파트는 분양아파트 입주 때 반드시 퇴거해야 한다.)


 국민임대아파트는 내 명의의 청약통장으로 당첨이 되었는데, 국민임대아파트는 당첨이 되어도 청약통장의 효력이 여전히 유효하다.


대학생 때부터 납입해 최근 150회차가 된 내 청약통장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공부하면 솟아날 구멍이 있다. 잘 사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보다 지난날의 나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산다면, 자존감에 타격 입히지 않고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파이팅! 나도, 여러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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