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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다 Nov 22. 2019

칭찬하라, 내 자식이 남의 자식인 것처럼

칭찬이 밥 먹여준다


" 닮아 임신 잘하나 !"


 둘째 임신소식을 전했을 때 친정엄마가 던진 첫마디였다. 첫째를 어려움 없이 임신했고, 둘째도 계획하자마자 바로 생겼기로, 본인 닮아 임신 잘한다니. 신개념 임신공격인가.


 둘째 출산 직후 간호사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아기 잘 낳는 산모는 처음이에요." 말할 기력이 남지 않아 어찌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다신 쓸 일 없는 재능이네요.” 대답할 뻔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그만 묶어야겠소.


첫째와 둘째. 나온 애가 또 나온 줄 알았다. 내 자궁은 거푸집인가.


 유전자의 출처를 따지기 좋아하는 친정엄마는 자식과 손자의 장점을 발견할 때면, '나 닮아서'를 오남용 한다. 그래도 이것은 약과다. 우리의 단점이라도 발견하는 날엔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엄마 머리 위에 나의 친가 계보가 펼쳐진다. 열성 유전자의 시발점을 찾기 위해 몇 세대를 족히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엄마에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면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넌 네 아빠 닮아서-"로 시작하는 문장인데, 접목하여 응용할 수 있는 부정적 문장이 수백수천 가지다.


 30년 동안 부모님께 받은 칭찬이 손에 꼽힌다.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때만 긍정적 강화를 해주셨다. 가령, 임용고시 준비를 한다거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누누이 먼 훗날 꼭 공노비의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할 거 없으면 공무원이나 해.


 학창 시절 내내 이 말을 들으며 자라서, 공무원은 개나 소나 다 하는 줄 알았다가 큰코다쳤다.


 학부모가 원하는 장래희망란에 꾸준히 [공무원] [교사]라 적어 제출하셨다. 화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동화작가, 방송작가, 꽃집 사장님이라 적은 본인의 장래희망란과는 일말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매번 대통합에 실패하곤 하였다.


 각종 시험에서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엔 맹비난이 쏟아진다. 내가 실패하길 손꼽아 기다린 사람처럼 '그럼 그렇지'로 포문을 여는데,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다가 골인지점에 도착할 즈음엔 언제나 [네 아빠를 닮아서]란 플래카드가 내 머리 위에 펄럭이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자마자 그 사실을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알렸다. 엄마의 첫마디.


등수는?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역시, 내 엄마답다.



초등학교 3학년,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엄마는 이야기했다.


시험이 쉬웠나 보구나.


 중학교 미술 수행평가에서 곧잘 A+를 받아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 말씀드렸을 때, 엄마는 이야기했다.


너 정도 그리는 애들은 천지삐까리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불현듯 드는 생각인데. 과거의 나야, 너무 장하다. 용케 버텼구나!


 대견하게도(?) 지금의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원망을 할 만큼 다 해서 더 이상 남아있는 원망이 없다.)


 금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압박을 많이 받아 아이 계획을 미루는 부부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 있다.



자기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


 낳기만 하면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내가 알아서 자라나기로 마음먹었다. 문헌정보학과를 가기 위해 진학한 대학교 사회과학부에서 돌연 심리학을 선택한다. 남의 마음은 궁금하지 않았다. 나에 대해 알고 싶었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을 5단계로 구분 지어 놓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가 있다.


01 부정(Denial)
02 분노(Anger)
03 협상(Bargaining)
04 우울(Depression)
05 수용(Acceptance)

 

 나는 이 단계가 죽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극심한 고통과 마주했을 때 겪는 심리적 과정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 정도로 일관성 있게 칭찬에 박하고 날 아프게 하다니! 친부모 아닌 거 아니야? 이럴 바엔 주워온 다리 밑에 다시 가져다 놨으면 좋겠다. 왜 나를 이렇게밖에 못 키우는 거야?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엄마 아빠도 자식은 내가 처음이었으니까. 형제자매가 많아 엄마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인정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칭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야.


 그렇지만 화목한 집에서 사랑 듬뿍 칭찬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들의 티끌 없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워.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이 나를 무기력하게 해.


 괜찮아, 괜찮아.. 내 자식에게는 절대로 같은 상처를 주지 말자. 사소한 성취에도 주의를 기울여 칭찬을 하자. 입양해온 아들(남편)에게도 예쁜 말 많이 하자.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남편의 가정환경은 나와 정반대였다. 지금도 시부모님은 (내가 보기에 영 칭찬거리가 아닌 시원찮은 일에도) 남편을 틈틈이 칭찬하신다. 시부모님께 감사하다. 나의 롤모델이시다.


 아들을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살게끔 길러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시부모님으로부터 칭찬과 지지를 받고 자란 남편은 남을 칭찬하는 데에도 서슴없다. 특히, 아내와 자식에 관해서는 칭찬 자판기다. 고장 났는지 돈 안 넣어도 계속 나온다.


 칭찬 정말 중요하다.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 부모님의 인정과 사랑이 아이 인격형성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아무리 칭찬 많이 들어도, 엄마 아빠에게 비난당하면 아무 소용없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80년대생이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만 하더라도 '공부'가 중요했다. 그렇지만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20-30대가 되었을 때도 과연 그러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로봇들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각광받을 것이고, 다시 말해 의사, 변호사, 판사, 교사 등 사짜 직업이 먼저 위협받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공부하고 암기할 필요가 없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시대다. 영어? 우리보다 훨씬 발음 좋은 번역기가 대신해줄 것이다.



 그럼 무엇이 중요할까.



 아래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역량 4C다.



 창의력, 의사소통, 협업, 비판적 사고력. 이름에서부터 이미 느껴지는 느낌적인 느낌. 암기한다고 될 일이 아닐 것 같은 느낌. 단기간 벼락치기로 갖춰지는 능력이 아닌 그 느낌.


 부모님이 길러주어야 하는 역량이다. 자식과 눈 마주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며 아이에게 등 돌리고, 아이 말에 건성건성 대꾸만 하고 계셨다면 지금이라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 눈을 바라보셔야 한다,라고 쓰면서 내 아이의 말을 건성건성 듣는 나 자신 무슨 일)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어야 한다. 작은 성취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실패했다고 해서 노력의 과정을 무가치하다 치부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육아는 양보다는 질이다. 하루 종일 대충 놀아주는 것보다, 한 시간을 주력해서 놀아주는 게 훨씬 좋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어서, 학원을 보내야 해서, 엄마 아빠가 회사를 다녀서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숱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핑계”다.


 실천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여유가 없다고 해서 아이들 삶의 여유까지 잃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선택권없이 일방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선택한 건 부모이기에, 성장해가며 마주하게 될 수많은 선택권은 아이에게 쥐어주는 것이 공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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