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프롤로그
요즘 집 밥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특별히 음식을 맛깔스럽게 잘 하거나 요리에 취미가 있는 건 아니다. 집 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는 딸내미 때문이다. 딸은 세 달 전부터 입시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일한다. 평일 하루는 오후 4에 수업을 시작해서 10시에, 주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4시에 마친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이라, 집에 오면 평일은 11시가 넘는다. 그 시간에 배달 음식을 먹는 딸이 안쓰럽고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없지만 아이 밥상을 한 번 차려보자는 마음먹었다.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다해 딸이 좋아하는 나물 반찬 몇 가지와 불고기를 만들어서, 도착 시간에 맞춰 밥상을 차려 놓았다. 딸은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 엄마 뭐야”라며 부엌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식탁을 본 딸은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고맙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딸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니, 참 잘했다 싶었다. 그 후로, 딸이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집 밥을 해놓기 시작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끼니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평일에는 퇴근 후 외식을 할 경우가 많아서 거를 때도 있지만, 주말은 예외 없이 삼시 세끼를 집 밥으로 해결한다. 몸이 피곤하거나 주말만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에 솔직히 꾀가 날 때도 있다. 처음 저녁을 차려 놓은 날 그토록 반가워하며 맛있게 밥을 먹던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해, 다시 부엌으로 향한다. 그날 메뉴를 하나 둘 머릿속에 그리며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식탁 위에 놓는다.
장보기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오후에 온라인으로 해결한다. 주말 동안 식구들에게 해 줄 음식이나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한다. 학창 시절 가정 수업시간에 배운 5대 영양군을 토대로, 영양군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식단을 짠다. 가급적이면 제철 채소와 과일 위주로 장바구니를 채우지만, 비상용 꽁치 통조림과 옛날 맛 소시지는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비치해 둔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시간이 없을 때, 이 두 가지는 우리 식구에게 훌륭한 반찬이 되는 요긴한 식재료다.
가끔은, 금요일 저녁에 배송 온 식재료를 정리하면서 메뉴를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면, 콩나물은 애초 국을 끓이기 위해 샀지만, 돼지고기와 함께 매콤하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콩나물 불고기 재료가 된다. 불고기 거리였던 소고기는 싱싱한 대파와 향긋한 버섯이랑 함께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주말 저녁에 뜨끈한 파개장으로 변신한다. 이렇듯 그때 상황이나 그날 기분에 맞춰 메뉴를 변경하는 일도 집 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토요일 아침이 되면, 부엌에 즐겨 듣는 음악을 틀어 놓고 주말 밥하기 루틴에 돌입한다. 아침은 고기나 찌개보다 생선과 국 위주로 반찬 몇 가지를 더 해 가볍게 먹는다. 빠지지 않고 주말 아침 식탁에 오르는 단골 반찬이 있다. 단백질 담당 계란말이다. 주 메뉴가 생선 구이냐 생선 조림이냐에 따라 맛에 변화를 준다. 구이는 청양고추만 잘게 잘라 넣고 칼칼하게, 조림에는 대파와 양파를 송송 썰어 넣어 고소하게 만든다. 구색에 맞게 같은 재료로 어떤 맛을 낼지 선택하는 것도 집 밥의 묘미다.
“밥 다 됐어. 오세요.”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각자 자리를 잡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딸은 집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비법이 뭐야?”라며 연신 음식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집 밥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 딸은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번번이 살가운 표현을 해준다. 음식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나에 대한 사랑이 담긴 표현이지 싶어, 더 고맙다. 딸의 칭찬이야말로 내가 집 밥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딸에게서, 이 부엌에서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고 있는 딸만한 나이에 내 모습이 보인다. 가족을 위해 밥을 하고 조리 도구며 식기, 그릇장 등 부엌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반짝 반짝 윤이 나게 닦고 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우리 엄마의 공간이었던 이 곳. '그때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지금 나는 엄마의 부엌에서 내 딸을 위한 음식을 만들며 생각한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딸에게 대물림하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내가 집 밥을 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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