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는 말

브런치 연재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제2화.

by eunjoo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엄마와 딸만이 나눌 수 있는 티키타카 대화다. 물론 우리 엄마 신 여사와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을 내어주기만 하는 안쓰러운 엄마의 모습에 정작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위로는 받지 못할망정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말을, 그것도 딸에게 들은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지. 꼭 너 같은 딸 낳으라는 엄마의 반격에서 짐작하고도 남았다.


이런 말을 퍼붓고도 얼마 가지 않아 둘도 없는 다정한 사이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 모녀였다. 서로의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엄마. 미안.”, “미안해, 딸.” 진심이 담긴 한마디면 서운함과 미움은 봄 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랑은 다시 여름의 태양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엄마와 딸보다 더 사랑과 미움이 넘치는 애증의 관계가 세상에 또 있을까. 엄마와 딸은 어쩌다 이다지도 각별한 사이가 된 것일까?


엄마와 한 몸을 나누어 열 달을 동거하면서 이미 예정되어 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에 나와서 가장 먼저 만나는 대상이자 처음 관계를 맺는 존재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엄마가 하는 모든 것들은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더구나 여자 아이에게 엄마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딸은 자신과 닮은 엄마와 끈끈한 심리적 유대감을 지니게 되고 엄마의 영향력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딸에게 엄마는 인생의 롤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 여사 또한 내게 세상을 만나는 통로였고 여자로서 삶을 보여주는 인생 선배였다. 엄마가 내게 건네는 말 한마디,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모습,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엄마의 말은 가장 힘이 셌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 “기특하다”라는 칭찬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고, “왜 그랬어?”, “다 소용없네.”라는 말은 자신감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좋은 아이가 되려고, 공부를 잘하려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내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깔려 있었다. 물론 신 여사가 내게 준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이라면 꿈쩍 못하는 아빠를 제쳐두고 온 신경이 엄마에게 향한 까닭은 여자라는 동질성에서 오는 친밀감 때문인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내게도 딸아이가 생겼다. 엄마가 된 기쁨도 잠시, 신 여사는 내 딸이 네 살 되던 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인생에 버팀목이 되어 주던 엄마를 잃고 딸이 아닌 오롯이 엄마로서의 긴장되는 삶이 펼쳐졌다. 나와 닮은 아이 성별마저 같은 딸은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내향성이 강하고 말주변이 없는 나와 달리 딸은 활달하고 자신의 의사는 똑 부러지게 내세 울 줄 알았다. 딸이 나와 달라서 더 좋았고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처럼 할 말 못 하고 양보만 하면서 살지 않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너는 네 인생을 온전히 누리고 살겠구나.’ 흐뭇하면서도 한편 부러웠다. 대학생이 된 내게 신 여사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내 딸이지만 네가 참 부럽다.”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가는 딸에 대한 자부심 이면에 존재하는 부러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딸은 자식 이전에 여자로서 자신을 대변하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살아갈 동질적 존재다, 삼대를 잇는 우리 세 모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딸은 외동이다. 외동인 딸아이가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경험이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람에 주말에는 어김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린이대공원에 놀러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댄스 배틀이 열리고 있었다. 재밌게 구경을 하던 딸이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가서 춤을 췄다. 어찌나 신나게 춤을 추던지 몸치인 내게서 나온 아이가 맞나 싶었다. 관중의 인기에 힘입어 1등을 한 딸은 상품으로 받은 키친타월을 두 팔에 안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었다.


“와, 너무 잘 췄어, 완전 멋져.” 폭풍 칭찬을 쏟아 내는 내게 딸은 “엄마, 좋아? 그렇게 좋아? 엄마가 좋아해서 나도 좋아.”라고 했다. 춤도 잘 췄지만 씩씩해서 너무 좋다는 내 말에 딸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짜는 창피했는데, 엄마한테 키친타월 주려고 나갔어.”, “왜? 엄만 키친타월 필요 없는데.”, “아니, 그래도 있으면 엄마가 좋잖아. 비싸다고 안 사니까. 타주고 싶었어.” 다섯 살짜리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엄마를 위해서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 그 후로도, 딸은 “엄마, 내가 이거 하면 좋아?”라거나 “엄마, 이거 하는 거 싫어?”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야무지다는 소리를 듣는 딸아이에게도 엄마는 자신보다 더 우선되는 존재였다. 엄마로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내 삶을 반영하는 것이고 딸의 인생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말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무심히 던지는 말 한마디는 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삶을 버겁게 만드는 부담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탐구를 통해 삶의 본질을 파헤친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주장했다.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이 당신의 삶을 드러낸다.”라고.


행여나 나의 견해나 욕구가 딸에게 투사될까 두려워 때론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딸의 진짜 마음을 미처 알아채지 못할까 하는 염려에 편견 없이 들으려고 애쓴다. 엄마와 딸, 서로의 말이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서로에게 감미로운 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나를 떠난 말이 딸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나 믿음직한 존재인지”로 해석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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