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브런치 연재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제3화.

by eunjoo

“축하드립니다. 임신 3주입니다.” 신혼 초, 속이 울렁거리고 체한 것 같은 증상이 며칠 째 계속된다는 말에 우리 엄마 신 여사는 약 먹지 말고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했다. 신 여사는 용하다는 무당도 네 점은 네가 보라고 문전 박대 당할 정도로 촉이 좋았다. 그런 신 여사의 당부였기에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의사는 이렇게 빨리 임신을 알아채는 산모는 처음이라 신기하다고 했다. 임신 3주에 초음파 사진을 통해, 점으로 있는 아이를 처음 봤다.


비록 사진 속 아이는 점의 형태였지만, 20년 넘게 흐른 지금도 내가 엄마가 될 거라는 기대로 가슴 뛰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하고 벅찬 감정이었다. 한 달 두 달 지나고 몸이 불어나면서 내 안에 생명체가 느껴졌다. 아이를 작게 낳아야 산모가 편하다는 신 여사의 권유에 따라, 출산 전날까지 매일 산책을 나갔다. 혼자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걷는 즐거운 산책이었다. 뱃속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도 했다.


이듬 해 봄, 그토록 고대하던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서의 삶은 임신 초기 사진으로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충만하지도 벅차지도 않았다. 엄마 경력이 쌓일수록 무력감만 깊어졌다. 엄마 경력은 해가 거듭될수록 노하우가 쌓이고 익숙해지는 직장에서 내 일과는 달랐다. 엄마의 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마주했고 늘 초보의 자리를 맴돌았다. 엄마로 20년 넘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방송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했었는지 내 양육방식을 떠올려보고 그때 딸의 마음은 어땠을지 헤아려 본다.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와 잘못한 말과 행동들이 떠오른다. 엄마로서 내가 잘 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깊은 자책과 미안함이 앞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 준 딸이 고맙다. 엄마가 되는 일은 역할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일이 아닐까 한다.


딸을 처음 품에 안은 그날,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좋은 어른이 되어보려 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치지만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 마음의 여유 없음이 아이에게 불안이 될 수 있음을, 엄마로 살아가지만 나 자신으로 잃어버리지 않아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딸과 내가 함께 지나온 그 시간들이 더없이 즐거웠을 텐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남은 날들은 좋은 엄마가 아닌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딸아이의 말에 지금 보다 더 많이 귀 기울이고, 깊이 사랑하되 부담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할 줄 알고, 어려울 때 기꺼이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 말이다. 하지만 좋은 어른이 꼭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겠다. 그 또한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던 것처럼 강박이 될 수 있으니. 그저 내 깜냥에 맞게 할 수 있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장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좋은 어른이 되어 보면 어떨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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