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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Oct 13. 2023

당신은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나요?   

문경민《지켜야 할 세계≫를 읽고, 책 서평  

하나의 전체로서 본 개인은 그 안에 사회 전체가 갖추고 있는 것을 지니고 있다.

브레이어(E. Brehier)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우리 곁에서 깊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여름 우리 사회가 겪은 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 되어 곳곳에서 터져 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렴풋하게라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신간 도서가 출간되어 소개합니다. 이번 서평은 다산북스 사전서평단에 선정되어, 출간 전에 가제본으로 받아 본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지켜야 할 세계≫ 

                  

≪지켜야 할 세계≫(다산책방, 2023), 이 책은 2023 혼불문학상을 받은 작가 문경민이 쓴 장편소설이다. 


“정윤옥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그녀가 1년 전까지 일했던 고등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p.6, 가제본) 책을 펼치자마자 만난 문장이다. “국어교사 정윤옥의 마지막 한 해”를 다룬 내용이라는 정보를 책 소개에서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첫 문장부터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서사를 풀어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책의 내용 & 메시지    


주인공 정윤옥은 중등 국어교사였다. 화약폭발 사고로 잃은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공장에 나간 엄마 그리고 뇌병변장애가 있는 남동생 지호가 그녀의 가족이었다. 정년을 앞둔 윤옥은 눈 내리던 2월 어느 날, 자정 무렵 집을 나섰다가 눈길에서 넘어졌다. 그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뒤로 1년을 더 살다 생을 마쳤다. “지켜야 할 세계”라는 책 제목처럼 윤옥에게는 지키고 싶은 세계가 있었다. 이 장편소설은 윤옥과 그녀가 지키려 했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 같더라."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 같더라.”, “어쩔 수 없었다.”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당위성을 구하는 이 한마디를 통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면죄부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연일 흘러나오는 뉴스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윤옥처럼.  


▶장애에 대한 인식, 아직도 개인의 몫인가? 


2023년 통계에 의하면 40~60대 중장년층 5명 가운데 1명은 장애를 가진 가족을 돌보기 위해 퇴사를 한다고 한다.(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보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가 개인적인 일이라는 편견과 인식이 만연하다. 2023년 통계에 의하면 40~60대 중장년층 5명 가운데 1명은 장애를 가진 가족을 돌보기 위해 퇴사를 한다고 한다.(재단법인 돌봄과 미래, 보고) 지금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더 미천했던 70년대, 장애를 가진 가족에 대한 돌봄은 전적으로 가족 몫이었다. 결국 윤옥의 동생 지호는 10살 때 원주에 있다는 소망의 집이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훗날 동생을 찾아 그곳에 간 윤옥이 겪은 소망의 집 현실은 참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호는 없었다. 


지호가 그곳에 없다는 윤옥의 통화에 “그런 애들은 원래 오래 못 산다. 그러니 생사를 묻지도 찾지도 말라”(p.90)고 엄마는 말했다. 지호를 보내던 날도 그랬다. 이웃 수림 아주머니는 그 일이 “지호도 살고 윤옥이도 살고 윤옥 엄마도 모두 다 같이 사는 일”(p.70)이라고 말했다. 그날 “같이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삼켰던 윤옥의 눈에서 오늘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켜야 할 세계, 다산책방, 2023]


윤옥이 가르치는 학생 가운데 지호와 같은 장애를 가진 시영이가 있다. 시영에 대한 윤옥의 태도에서 지호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 자신에 대한 회한을 느낄 수 있다. 


윤옥은 허리를 숙여 시영을 가볍게 안았다. 시영이 고개를 돌리며 작은 소리로 또 아, 하는 소리를 흘렸다. 시영이 이렇게 할 때마다 윤옥은 가슴이 아팠다. 시영의 유난히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윤옥의 뺨과 턱을 간질였고, 윤옥은 그것이 그만 서러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윤옥은 시영의 어깨를 쓸어주며 말했다. “애썼다. 고맙다. 시영아.”(pp.29~30, 가제본)  


[지켜야 할 세계, 다산책방, 2023]


▶무너지는 교육, 갑질 이대로 괜찮은가? 


갑질 :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이 자신의 방침에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갑질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시사상식사전, 2016) 


이 정의를 내린 시기를 보니 2016년이다. 우리 사회에 꽤 오랫동안 갑질이 진행되어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 갑질은 사회 전반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 사회의 기간을 흔들기에 이르렀다. 지난여름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 서이초 교사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언제부터인지 학교에는 심상치 않은 현상이 생겼다. 수업의 주체가 교사와 학생이 아닌, 갑질하는 학부모가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카프카를 비롯한 대문호들의 이름을 말하며 은근히 뻐기며 즐거워하던 학생들과 함께 한 세계 문학 작품을 활용한 윤옥의 수업처럼, 교사와 학생들이 만들어가던 수업은 학부모가 제시한 수업 가이드라인과 민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 책에는 교사 평가를 위해 수업 촬영을 요구하는 학부모와 학생을 교육수요자로만 바라보며 학부모 민원을 받은 교사를 사고뭉치 취급하는 관리자가 나온다. 


이처럼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생활지도는 정서적 학대로, 학생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아이만 미워하는 것으로 변해 학부모에게 민원 대상이 되고 담임교체를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윤옥이 느낀 위축과 부담감은 지금 대한민국 교사의 현실이자 학교의 현실이다.   

                 

[지켜야 할 세계, 다산책방, 2023]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정말로 그런 걸까.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중증장애를 지닌 남동생 지호를 생면부지의 사람을 딸려 낯선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교사 정윤옥 국어 수업 관찰 분석 보고서’를 만든 학부모들에 의해 흔들리는 교권도 학교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이 모든 일들이 개인적인 사건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을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회는 어떠한 개인에게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 브레이어(E. Brehier)는 사회학자 모스(M. Mauss)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전체로서 본 개인은 그 안에 사회 전체가 갖추고 있는 것을 지니고 있다.” 브레이어의 말처럼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인과 사회는 서로 상호 침투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평가 & 마무리 

 

국어 교사 정윤옥이 '지키고 싶어 했던 세계'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국어 교사 정윤옥이 ‘지키고 싶어 했던 세계’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장애를 가진 동생을 둔 국어 교사 정윤옥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 문경민은 독자들에게 장애와 돌봄 그리고 학교가 처한 현실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이 책은 그 고민들이 모여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좋은 어른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이 시대에 사회적 화두가 될 것이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수록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가독성 문제가 아니었다. 간결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표현한 한 인생과 사회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허투루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부분은 1부에서 3부까지다. 사전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보내 준 가제본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거기까지였다. 아마도 뒷부분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나의 전체로서 본 개인은 그 안에 사회 전체가 갖추고 있는 것을 지니고 있다."

- 브레이어(E. Brehier)


#지켜야 할 세계 #문경민 #다산북스 #사전서평단 #사회적 화두 


by eunjoo [지켜야 할 세계, 브런치's 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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