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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Oct 18. 2023

당신 인생에는 어떤 자전거가 있나요?

우밍이 ≪도둑맞은 자전거≫를 읽고, 책 서평

그녀의 자전거만큼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게 될 자전거를 만났다.  


샤라라라라라라~~♬♪  그녀의 자전거가 내게 들어왔다. 아주 오래전에 나왔던 의류 브랜드 광고 문구다. 이 카피에 마음이 끌려 이 브랜드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아니, 이 브랜드 심볼인 자전거 모양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리고 2023년 10월 어느 날, 그녀의 자전거만큼이나 내 마음에 오래 머물게 될 자전거를 만났다. 바로 대만의 국민 작가 우밍이가 쓴 장편 소설 ≪도둑맞은 자전거≫다.   


≪도둑맞은 자전거≫


이 책은 2018년 대만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오르며  대만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장편소설이다. 우리나라에는 2023년 1월 비채 출판사를 통해서 출판되었다.


이 책을 쓴 작가는 현대 대만 문단을 대표하는 국민작가로 부상한 우밍이(吳明益)이다. 1997년 소설집 ≪오늘은 휴일(本日公休)≫로 등단한 우밍이는 2000년 ≪나비탐미기≫로 타이베이문학상, 2007년 장편소설 ≪수면의 항로≫가 아시아위클리 선정 중문소설 베스트 10 선정, 2011년 대만에서 출판된 장편소설 ≪복안인(複眼人)≫으로 2012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소설부문 대상과 2014년 프랑스 문학상 리브르 앵쉴레르상을 수상한 저력 있는 작가다.  


by eunjoo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비채, 2023]


책의 내용 & 메시지 


이 책은 주인공 청이 20여 년 전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접하게 된 대만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3년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상가 중화상창 철거 작업이 시작된 다음 날, 주인공 청의 아버지는 04886 번호가 각인되어 있는 행복표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 문학사에 한 획을 긋게 될 마음껏 애도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던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추적이 시작된다.          



사람들의 삶은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연찮게 받은 독자의 편지 한 통을 계기로 20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자전거를 찾게 된다. 진실이 궁금해진 청은 과정을 되짚어가게 된다. 역추적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그들의 삶 속에서 깊이 스며있는 역사의 흔적을 발견한다.


평생을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간 라오쪄우와 바쑤야, 종군사진작가가 된 바쑤야의 아들 압바스, 1945년 전쟁 막바지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청의 외할아버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일제통치시대와 2차 세계대전은 그 시대를 겪은 대만인은 물론 후손의 인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전거는 잃어버린 대만의 역사이자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

     

며칠 전 밤, 나는 압바스에게 아버지가 소년공으로 일본에 가서 전투기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과 나중에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 얘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아버지가 조금 낫군요. 적어도 테이프 두 개는 남겼으니.” 압바스가 속력을 높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타이베이로 돌아가고 싶은 내 심정을 그도 알고 있었다... “사는 동안 어떤 나사가 빠져버린 거예요. 당신들조차 그걸 알지 못했겠죠.”(pp.214~215)     

     

모든 역사는 기록되어야 기억할 수 있다. 


유한한 사람의 일생만큼이나 사람의 기억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잊지 않기 위해서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청이 만난 인물 가운데 종군사진작가 압바스가 있다. 생전에 소원했던 아버지 바쑤야와 입대를 계기로 만난 라오쪄우의 죽음을 살피지 못한 후회와 상실감에 휩싸인 그는 청이 했던 것처럼 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역사를 접하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압바스는 소중한 것과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한다.

     

“세상에는 내 것보다 좋은 카메라도 많고 나보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한 곳을 이십 년 동안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거예요. 어차피 시간은 공평해요. 내 일생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두세 번 뿐이에요.”(p.360)    

     

역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에서 작가의 몫은?


소설 속에 들어있는 진실과 허구를 가려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닐까. 이 소설의 내용을 보면 작가의 경험과 실제 역사가 허구와 뒤섞여 전개된다. 이것은 이 소설이 지닌 특징이자 “소설 속 모든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건 위험한 일”(p.61)이라고 작가가 당부하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책에 나오는 ‘잃어버린 자전거’와 제2차 세계대전사, 자전거 발전사, 나비 공예사 등 대만의 사회문화사처럼, 허구 속에 진실의 기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로 이것은 작가의 몫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그것들이 내 지식 용량을 훨씬 초월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료를 수집해 읽고 또 많은 기관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 책이 찰나나마 ‘완벽하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p.459)    

    

by eunjoo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비채, 2023]

         

평가 & 마무리


잃어버린 역사를 되돌아보고 인생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마음껏 사랑할 수도, 마음껏 애도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 우밍이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전작 ≪수면의 항로≫을 읽은 한 독자에게 받은 편지를 계기로 시작된 자전거 찾기에서 청이 만난 자전거들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았다. 낡고 부서져 다시 길 위를 달릴 용기와 능력을 상실한 것, 브레이크장치가 부서진 것, 스포크가 녹슬어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것, 허브의 쇠구슬이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는 것 등.(p.64)

     

자전거는 역사를, 또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닮았다. 작가 우밍이는 직접 낡고 고장 난 자전거를 해체하고 새로 기름칠을 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잃어버린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인생의 페달을 멈추지 않고 힘차게 밟아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이 소설은 과거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존숭과 돌이킬 수 없는 인생 경험에 대한 경의에서 비롯되었다. 자전거를 찾다가 우연히 어떤 시간의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정을 느끼고, 페달을 밟는 속도, 땀, 불규칙한 호흡, 눈물 나는 슬픔과 눈물이 나지 않는 슬픔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p.463)


별책 & 부록, 철마지 


이 책에는 철마지(鐵馬誌)란 이름의 Bike Notes 7편이 이야기 중간중간에 들어있다. 형태에 대한 설명부터 역사까지,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자전거 마니아들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청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행복표 자전거

by eunjoo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비채, 2023]


일본 자전거 산업의 현지화를 알리는 이정표가 된 후지패왕호

by eunjoo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비채, 2023]


이 가을 여러분의 마음을 촉촉이 물들여 줄 우밍이의 자전거를 타고, 햇살 맑은 시월에  단풍 곱게 든 거리를 씽씽 달려보면 어떨까요?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비채 #장편소설 #역사소설  

by eunjoo [도둑맞은 자전거, 브런치's 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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