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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Oct 05. 2023

여행하는 소설, 우리 이야기

장류진 외 <여행하는 소설>을 읽고, 책 서평

 10월,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모두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처지는 아닐 것이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 대비 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인 방법, 바로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여행하는 소설≫


창비교육에서 2022년에 출판된 이 소설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이 책은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2021)을 쓴 작가 장류진을 비롯한 일곱 명의 작가가 의기 투합해서 펴낸 여행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집이다. 


책의 내용 메시지

     

이 책에는 장류진 작가의 <탐페레 공항>, 윤고은 작가의 <콜럼버스의 뼈>, 기준영 작가의 <망아지 제이슨>, 김금희 작가의 <모리와 무라>, 이장욱 작가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 김애란 작가의 <숲속 작은 집>, 천선란 작가의 <사막으로> 단편 7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곱 편 가운데 나, 가족, 타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3편을 소개하려 한다. 먼저 '나'가 주인공인 장류진 작가의 단편 <탐페레 공항>이다. 


단편 하나꿈을 재발견하는 여행 


 <탐페레 공항>, 장류진


이 단편은 주인공 '나'가 돈을 아끼기 위해 들른 낯선 곳에서 짧은 시간 맺어진 인연을 통해 자신의 꿈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형편이 녹록지 않은 나는 취직을 위한 스펙을 마련하기 위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삼 개월 동안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기로 한다. 항공비를 절약하기 위해 핀란드를 경유하는 항공권을 끊은 나는 경유지인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얀을 만나게 되고 4시간 정도의 짧은 핀란드 여행을 한다. 


삼 개월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친 나는 집 우편함에서 얀이 보내 준 사진과 엽서를 받았다. 청춘의 희망을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낯선 이에게 베푼 친절은 배려가 되어 주인공 '나'의 팍팍한 삶에 윤기를 더한다. 특히 30대의 직장인들의 애환과 고달픔을 다룬 글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작가 장류진은 이번 단편 소설에서도 주인공 '나'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는다. 


“하얀 밤, 태양이 뭉근한 빛을 내는 창가에 앉아 가위와 풀과 사진 그리고 편지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더듬거리는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오래 울었는데도 이상하게 진정이 잘되지 않았다. 심장이 물에 뜬 듯 출렁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봉투 안에 든 편지를 꺼내서 펼쳤다. "글씨를 힘차게 쓰던 용감한 한국의 숙녀분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구나.”(p.34) 


▶단편 둘, 이해와 화합의 여행 


김금희 <모리와 무라>


<우리는 페페로니에서 왔어>(문학동네, 2020)로 '2020 김승옥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금희 작가의 <모리와 무라>가 두 번째 단편이다. 이 단편은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여행에서 발견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오해가 이해로 바뀌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는 이야기다. 모리와 무라는 여행지 료칸에서 키우는 개들 이름이다. 


30년 동안 근무한 호텔에서 퇴직한 숙부는 나에게 늘 이해불가의 대상이었다. 고모 해경의 제안으로 숙부와 함께 셋이서 일본 온천 여행을 떠난다. 어느 날 밤, 깔끔한 성격에 특별할 것만 같았던 숙부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작가 김금희는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 안는 것이 가족이라고 말한다.


“숙부가 나무바가지로 거기 떨어져 있던 거미를 떠서 옮겨 주던 기억. 그런 장면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부터 아무래도 미심쩍어 경계했던 숙부의 어떤 면들도 비단잉어의 흐드러지는 지느러미들이 불러일으키는 생경하고 이물거리는 톤 정도로 약화되었다. 어쨌든 그 여름 그 여행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가계, 나의 숙부의 삶을 요약하게 된 것이었다.”(p.128)


단편 셋누군가 떠오르는 여행 


김애란 <숲속 작은 집>


≪두근두근 내 인생≫, ≪바깥은 여름≫, ≪비행운≫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사회에서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애정을 전하고 있는 작가 김애란의 <숲속 작은 집>이 마지막으로 소개할 단편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일곱 시간가량 걸리는 나라의 산악 도시로 여행을 떠난 부부가 숙소에서 겪은 일을 통해 사회적 편견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은주와 지호 부부는 날씨 좋고 음식 맛있고 사람들이 착하다는 외국에서 집 한 채를 빌려 한 달 동안 지낼 작정으로 여행을 떠난다. 숙소는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부부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숙소 담당자에게 불쾌해진다. 떠나는 날 아침, 은주는 그간의 일들이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작가 김애란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동시에 낯선 문화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걸 보자 문득 '방금 전 엽서에서 본 그 애 이름, 그 중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있는 거 같은데?' '분명 어디서 자주 본 아니 자주 쓴 글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내 바지 주머니에 든 쪽지가 떠올랐다. 그걸 보면 당장 알 수 있을 텐데. 지호 앞에서 그 종이를 차마 꺼낼 수 없었다.”(p.211)


평가 마무리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일상에 쉼표를 찍어 주는 여행 이야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떠난 길에서 우리는 단편 <탐페레 공항>에 나오는 나처럼 자신의 꿈을 재발견할 수도, 단편 <모리와 무라>에서 보는 것처럼 가족의 이해와 화합을 이룰 수도 있다. 그리고 단편 <숲속 작은 집>에 은주처럼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치고 힘든 일상에 쉼을 가져오고 용기 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여행은, 곧 삶이다. 이것이 ≪여행하는 소설≫에 나오는 일곱 작품을 통해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일곱 색깔 여행으로 삶을 다채롭게 물들여보면 어떨까.


작가들은 세상은 여행자인 우리에게 무한히 열려 있고우리는 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여행하면서 마주하는 불안혼돈어긋남절망이해희망성찰깨달음 등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을 더욱 다채롭게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요.”(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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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여행하는 소설, 브런치's 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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