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10화
사서삼경을 읽기 시작했다. 무너진 내 마음을 돌보고 사춘기를 겪는 딸아이를 이해해보려는 것이 사서삼경을 읽는 목적이었다. 사서삼경 가운데 시급한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사서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시경≫, ≪서경≫, ≪주역≫의 삼경은 제자리에 두고 사서만 꺼내 내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옆에 두고 새로 입수한 도서를 임시로 보관하는 북 트럭에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꽂아놓았다. 우선 마음이 가는 ≪논어≫부터 읽었다. ≪논어≫를 통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당위성을 돌아보게 되었지만, 고민에 필요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예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다음 ≪맹자≫는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전체적으로 빠르게 한 번 훑은 후에, 필요한 부분 위주로 집중해서 읽었다. 신기하게도 왕도정치를 주창하는 맹자의 사상에서 고민에 대한 해답을 하나씩 찾아 나갔다. 임금을 어버이로 백성을 자식으로 비유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규모만 차이가 있을 뿐 가정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의 하나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부모로서 지녀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깨달았다. 3년 가까이 책을 읽고 노트에 옮겨 적고 마음에 새기며 하나하나 실천을 해나갔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많이 성찰했다.
사서를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딸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은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차이가 났다. 딸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이 다른 딸아이의 행동이 불편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못하고 사회적 틀에 맞추려 했던 지난날 딸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렸다. 고회성사 하듯 미안한 마음을 딸에게 전했다. 아이는 오히려 자기도 그때 왜 그랬나 싶다며 속을 썩여 죄송하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좋고” 고맙다고 했다.
<속눈썹 위에 올라앉은 행복>. 벨기에 작가 브리짓 민느가 쓴 책 제목인데, 마음에 들어 행복을 표현할 때 문구로 즐겨 인용한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살포시 속눈썹 위에 올라 앉아있는 작은 행복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내게 찾아왔다. ≪대학≫과 ≪중용≫ 그리고 삼경은 필요할 때 소용되는 부분을 읽어보기로 마음먹고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두었다.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네이버에서 인문학을 위주로 책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내게 사서삼경은 여전히 요긴한 자료다.
올 봄 딸아이와 함께 원주로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떠났다. 지난해 큰 수술을 받고 아직 회복기에 있는 처지라 먼 곳은 자신 없어 집 근처 기차역에서 가까운 원주로 정한 것이다. 기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가 가방에서 의자에 달려 있는 식판 위에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캔 커피와 컵 과일 그리고 삶은 계란이었다. 모처럼 하는 기차 여행인데다 날씨도 맑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삶은 달걀이 더해지니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즐거웠다.
달걀 껍질을 까면서 정차하는 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다 문득 인생이 기차 여행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마다 달라지는 풍경과 한 역 한 역이 살면서 마주하는 하나의 인생처럼 느껴졌다. 기차 여행이 인생이라면 기차 여행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삶은 달걀은 인생의 모습을 결정하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순간 내 입에서 불쑥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삶은 계란이다.” 딸아이가 “뭐지?”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삶은 계란이 너무 맛있어서 지금 엄청 행복하다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