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삼경을 읽기 시작했다.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9화

by eunjoo



엄마가 영원히 우리 남매 곁을 떠났을 때, 딸아이가 네 살이었다. 돌아보니, 아이가 어렸던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데다 딸아이마저 엄마 손이 한창 필요한 나이다보니, 내 엄마 잃은 슬픔은 느낄 여력도 없이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딸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있었고 삼십대는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몇 달에 한 번씩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염색해야만 할 정도로 흰 머리가 늘어난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 10년 동안 누구에게도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일이 정말로 기정사실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했던 그 세월동안 나는 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던 거였다. 산책을 나설 때는 엄마랑 손을 잡고 걷는 것처럼 내 왼쪽 손을 꼭 쥐고 걸었다. 엄마는 항상 내 왼쪽에서 걸었기 때문인데, 지금도 엄마의 온기가 그리울 때는 내 왼쪽 손을 꼭 쥐고 천천히 걷는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진다. 가끔 흐르는 눈물이 덤으로 따라와 민망해지는 것만 제외하면 행복한 시간이다.

애써 슬프지 않은 척 씩씩한 척하며 살아가는 10년 동안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는 내 안에 쌓이고 쌓여서 아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화장대 앞에 섰는데 목 부위에 붉은빛을 띠며 틔어 나온 것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뾰루지인 줄 알았는데 점점 우툴두툴해지더니 서로 뭉쳐서 얼굴 바로 밑까지 뒤덮고 말았다. 그 상태로는 출근을 할 수 없어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 출근하기로 하고 병원에 들렀다. 병원에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 체계가 깨져서 나타나는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했다.

무조건 잘 쉬고 잘 먹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약을 처방 받았다. 당시에 내게 가장 힘든 일이 잘 쉬는 거였다. 그즈음 이직을 해서 업무 파악을 위해 하루 한 시간 정도 늦게 퇴근하던 때였는데, 대학부설 영재원에 다니고 있던 딸아이는 특수 고등학교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은 퇴근 후에 직장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학원 근처로 가서 밤 10시가 넘어 수업이 끝나는 딸아이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 좀 하다보면, 이틀이 훌쩍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으니 도리가 없었다.

얼마가지 않아서 다시 두드러기가 튀어 올라왔다. 시간이 갈수록 두드러기 올라오는 간격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하다가는 큰 일 나겠다 싶어 체력 보강이라도 할 요량으로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어 보더니 나이는 사십 대인데 몸 상태는 육십 대라며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체력이 너무 약하니 가급적 힘쓰는 일은 피하고 무겁게 들고 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사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떻게 힘쓰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1년이 채 못 되어 왼쪽 팔에 회전근개 파열이 생겼다. 수술을 하게 되면 휴직 문제도 있고 딸아이 입시 문제도 있어 비수술 치료에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이틀에 한 번 물리치료와 일주일에 두 번 운동치료를 받고 집에서는 매일 저녁 한 시간씩 병원에서 알려준 운동요법을 병행했다. 서서히 통증이 약해지더니 육 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왼쪽 팔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10년 동안 내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응어리는 이렇듯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을 소진시켜 나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과 씨름하는 것이 직업인데 기능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알레르기가 만성화되면서 마음에 우울감이 찾아왔다. 얼마나 오랜 시간 내 속에서 버티다 겉으로 터져 나왔을 텐데 번번이 그 사실을 간과하고 미련하게 굴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의처럼 몸이 먼저인지 마음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몸과 마음은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 우울감이 깃들고 그 우울감이 다시 내 몸을 병들게 한 것 같았다.

이제부터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마음으로 화답하고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움직임으로 화답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서라는 직업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도서관에 있는 마음 다스림에 관한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니 그 이야기가 다 그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더 이상 울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서점검을 위해 서가를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사서삼경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사서삼경을 읽은 사서가 되었다.



내 얼굴.jpg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9화, 사서 삼경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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