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소리 없이 찾아왔다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8화

by eunjoo



그날 이후 시작된 엄마 없이 살아가는 나의 특별한 하루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엄마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났다. 지금 나는 엄마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그 나이가 되었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도 커져만 간다. 올해는 엄마 생각을 하면 명치끝이 유난히 더 저려온다. 덩달아 장소 불문 눈물이 터져 나온다.


엄마를 영영 잃게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마음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이별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뻥 뚫렸다. 엄마가 떠나고 두 달이 채 못 되어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그날 점심을 먹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단골 꽃집 앞에 진열되어 있는 카네이션 바구니들이 보였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이 요동쳤다.


‘제발... 제발... 이렇게 환한 대낮에... 그것도 테헤란로 한복판에서...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입술을 꽉 물고 숨도 깊게 내쉬며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르려 애써봤지만 이미 터져버린 눈물샘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같이 걷던 선배가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컨디션이 좀 좋지 않은 것 같아 약국에 가봐야겠다며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엄친데 덮친다고 차라리 잘 아는 선배랑 있는 편이 더 나았다는 것을 혼자 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점심을 먹고 바삐 직장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조금만 울어도 토끼눈처럼 빨갛게 변하는 내 눈은 빨간 단계를 지나 맺힌 한이 너무 많아 이승을 쉬 떠나지 못하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그분들 눈이 되어 있었다. 가끔 우는 나를 달래주기 위해 엄마가 농담으로 하던 “무슨 사연 있는 여잔 줄 알겠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나 사연 있는 여자다. 사연 있는 여자 처음 보냐?’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 나니 신기하게도 후련해졌다. 이것 역시 긍정의 미학인가.


토끼눈을 한 체 그 넓은 테헤란 거리를 거닐고 되돌아 거닐면서 생각했다. 어버이날은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올 텐데 매번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신 여사가 -우리 남매는 엄마를 ‘신 여사’라고 종종 불렀는데. ‘신 여사’는 우리가 만든 엄마의 애칭이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는 딸답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스스로에게 했다.


이듬해부터는 남동생이랑 어버이날 하루 전날 밤에 고속터미널에 있는 꽃상가에 가서 빨간 카네이션을 30송이 사가지 와서, 둘이 함께 당일 날 새벽에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반차를 냈기에 회사로 가는 길에 적당한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한 해 중 두 번째로 슬픈 날을 이겨내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이었다. 내게 가장 슬픈 날은 살아있을 때 챙겨드렸던 엄마의 생일날이다. 그렇게 잘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내 안 깊은 곳에는 소리 없이 찾아온 불청객이 뻥 뚫린 구멍을 터 삼아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불청객의 존재를 알게 될 때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연재8화표지.jpg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8화, 정말 소리 없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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