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6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처럼 사람의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내 인생에 봄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20대 중반에 시작된 것 같다. 첫 직장이 있던 광화문은 을지로와 종로에 근접해 있어서 퇴근 후에 놀러 갈 곳이 많았다. 친한 친구들도 직장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종종 점심을 함께 먹었다. 즐겨보는 드라마 이야기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주제 삼아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가끔은 너무 몰입해서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있었는데, 직장을 향해 무념무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퇴근 후에는 주로 종로에서 만나 영화를 보거나 저녁을 먹으며 점심 때 못 다한 이야기꽃을 다시 피웠다. 당시는 토요일에 격주로 오전 근무를 했다. 주말 퇴근 후에는 친구들을 만나 명동거리를 돌아다니며 낮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갔다. 한 번은 남자 친구와 교제문제로 고민하던 친구를 따라 남산 근처에 있는 용하다고 소문난 점집에 간 적이 있었다. 점집 마당에 들어서자 한 아주머니가 예약 번호를 묻더니 집안으로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적어도 20살은 많아 보였고 모두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덩달아 우리도 고민 많은 표정을 지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친구가 나에게도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기 순서에 묻어서 물어보라고 했다. 대학교 다닐 때 사주 카페에서 심심풀이 사주를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점집은 처음이라 뭔가 아주 중요한 인생사를 물어야 할 것 같았다. 친구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할지 말지를 묻겠다고 했다. 남자 친구도 결혼 계획도 없던 나는 고민 끝에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지’를 물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에 친구도 나도 들은 이야기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제발 너희들 중에 누구라도 빨리 결혼을 해서 다른 애들한테 자극을 좀 줘라”라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도 어울려 다녔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다면, 밤 낮 없이 할 말이 많았던 우리는 아마도 월급의 반은 통신료로 썼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정말 내 월급의 반을 통신료로 썼다. 직장에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가 어느 날 전화를 해서 “혹시 집전화로 국제전화를 한 적이 있냐?”라며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라고 말하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국제전화 요금이 100만원 가까이 나왔다고 했다. 한국통신에 확인해 보니, 우리 집에서 사용한 전화번호가 맞았다. 모두 내가 사용한 국제전화였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오늘의 운세’를 한 달 동안 매일 알아봐줬는데, 수신처가 호주에 있는 회사였다. “27살이 저렇게 어리석어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냐.”라며 엄마는 한 걱정을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는 “애가 애를 키우는 것 같다”라며 내 걱정뿐이었는데 그때의 일도 한 몫 했지 싶다.
외할머니가 허우대만 멀쩡하다고 걱정했던 나는 충전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연차를 사용했다. 대부분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다가 자다가 하며 하루 종일 뒹굴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은 엄마와 함께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수입품 상가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땅콩 잼을 사오기도 했다. 엄마도 나도 쇼핑이 목적이 아닌 좋은 날씨를 느끼고 싶어 떠나는 여행 같은 나들이였기에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맞으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거리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 모녀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스물아홉 겨울 첫 직장을 사직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모교의 대학원 진학에 실패하고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유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몇 군데 지원을 해봐야 한다는 말에 먼저 지인이 다니는 대학교에 지원을 했다. 준비가 부족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입학허가를 받아 기쁜 마음이 앞서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대학교 부속 ESL센터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토플 점수를 딴 후 석사과정에 들어갈 계획으로 떠났다. 나라도 언어도 사람들도 온통 낯설지만 불안감보다는 미래에 대한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또 다른 인생의 봄을 맞이했다.
처음 몇 달은 하루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차차 친구들도 사귀고 그곳 생활에 적응하게 되면서, 그동안 스쳐 지나간 풍경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나를 가장 사로잡은 것은 이스트 캠퍼스와 웨스트 캠퍼스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미시시피 강이었다. 미시시피 강은 중학교 영어 시간에 ‘mississippi’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때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세계지리 시간에 미국에 대해 배우면서 궁금증이 폭발했고 언젠가 꼭 직접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올린 강이었다.
지리부도에서만 보던 미시시피 강을 직접 보고 일주일에 몇 번씩 그 강위를 건너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 미네소타에서 보낸 몇 해는 충분히 좋은 날들이었다. 취업에 성공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스물다섯 그해에 찾아온 내 인생의 봄은 오직 내 앞날만 바라보며 온전히 내게만 집중할 수 있던 그 시간동안 무르익어 눈부시게 반짝였다.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않고 빛날 것 같았는데, 그때가 내 인생에 다시 못 올 찬란한 봄날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