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 인생은…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5화

by eunjoo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분위기의 동네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그때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듣던 소리가 있었다. “얘는 늘 직진이야.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바람이 쌩쌩 불어.” 요즘 같으면 사람의 행동을 빗대어 그 사람을 표현하는 ‘직진 은주’니 ‘바람 은주’니 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다리미질로 구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손질해 준 교복을 입고 앞머리에 검은 색 실 핀 하나를 딱 꽂으면 등교 준비 끝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부터 나의 ‘도도한’ 직진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만나는 슈퍼 아주머니는 늘 이렇게 물었다. “은주야 학교 가니?”, “네, 안녕하세요.” 내 대답도 언제나 똑같았다. 마을 어른 몇 분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가에 도착한다. 이쯤에서 항상 고민이었다. 차로 20분, 도보로 40분 걸리는 학교에 버스를 타고 갈지, 걸어서 갈지. 대게는 입학선물로 받은 손목시계가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그래, 버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출발지가 1시간 넘는 거리에서 오는 버스는 출근하는 어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콩나물시루가 되어 있었다.


“아!! 괜히 기다렸어...” 그 시절 나는 “도도하다” 것도 모자라서 “참 도도해!”라는 말을 듣던 아이였다. 도도하게 살려면 콩나물시루 버스에 타면 안 되는 거였다. 도도한 인생에 지각 또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튼 학교까지 가는 지름길을 향해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오르고 올라도 인정머리 없이 높아만 지는 언덕을 달리고 또 달렸다. 학교 정문 앞에 다다르면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숨은 턱까지 찼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3층에 있는 교실로 가는 동안 숨을 고르고 손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고 무심한 듯 교실 문을 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이모네 집이 있었다. 이모네 집은 이층 양옥집이었는데 옥상이 있었다. 옥상 텃밭에서 물을 주던 이모부가 “저기 우리 조카 오네.”라고 하면, 이모는 대문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가 직접 만든 빵이나 음료수를 주곤 했다. 이모부는 먼발치에서 실루엣만 보고도 나를 알아 봤는데. 하교하는 아이들 중에 그렇게 씩씩하게 걷는 애는 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나는 직진 모드로 집을 향해 걸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익숙하고 맛있는 냄새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곧장 엄마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엄마,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내 눈은 분주히 부엌 안을 살폈다. “엄마, 떡볶이 했네?” “맛있겠지.”, “엄마, 딸기 샀어?” “응”, “엄마, 밥은?” “얼른 손 씻고 와.” 온종일 직진 모드로 지친 나의 하루가 끝났다. 어째도 저째도 다 괜찮고 내가 일등으로 예쁘고 내가 최고라는 엄마가 있는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스위트 홈에 안착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첫 직장은 정부출연 국책연구기관이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나는 그곳에서 사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MBTI 검사에서 항상 I가 나오는 극 내성인 성향이지만, 어울리기를 즐기고 운동을 좋아한다. 그때 나는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코트로 나가거나 가끔 볼링을 치러 다녔다. 당시 막역하게 지낸 동료가 회사 근처에서 차 한 잔 마시자고 했다. 약속 장소에 그는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왔다. 셋이 또래였고 은근 친화력이 좋은 나는 부담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동료의 친구가 불쑥 꺼낸 한 마디에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위 10%예요.” 근거가 뭐냐고 물었더니, 사는 지역과 출신 학교, 다니는 직장에 외모까지 더해서 나름의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자기만족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상위 10%라고 자부하는 심리와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사고방식이 놀라웠다. 거기에 일면식도 없는 나를 끌어들인 것에 불쾌감이 밀려왔다. 동료의 친구라 무례하게 굴 수도 없고 해서, 적당히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그 말은 잊히지 않았다.


“귀한 자식이네요. 나도 귀한 자식인데.”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한 금명이가 극장에서 함께 일하는 충섭에게 한 말이다. 미대를 나왔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충섭은 극장에서 영화포스터 그리는 일로 자신의 생계를 꾸려갔다. 충섭 엄마는 아들의 포스터를 보러 충섭 모르게 극장 앞을 다녀가곤 했다. 아들 작품은 자랑스럽지만 혹여 아들이 불편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우연히 그 모습을 발견한 금명은 아들을 아끼는 충섭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부정하는 충섭에게 금명은 “자기처럼 부모님이 귀하게 키웠으니 귀한 자식 맞다”라고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내 입에서 “이거였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때 그 ‘상위 10% 인생’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는 명동 거리에서 오천 원에 산 여름 원피스를 백화점 고가품으로, 학교 앞 리어카에서 산 가방을 명품으로 오해받아 나도 모르는 부잣집 딸이 되었었다. 첫 직장인 국책연구기관에서 입사초기에는 정시 출·퇴근을 했다. 요즘 말로 칼퇴하는 내게 ‘땡주’라는 별명이 생기더니 어느 순간 부원장 조카로 변신해서 요주의 낙하산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동료가 내게 한 마디 했다. “나이도 어린데 어쩜 그렇게 매사에 당당하냐?”


“당당하다”는 어릴 적에도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다. 타고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천성도 내가 잘나서도 아니었다. 금명이 말처럼 ‘부모가 귀하게 키운 자식’이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늘 당당할 수 있는 거였다. 부모님은 잘못된 행동은 정말 눈물 쏙 빠질 정도로 따끔하게 혼냈고 잘한 일은 민망할 정도로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혼날 때도 나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섭섭하거나 무섭지 않았다. 칭찬을 들을 때는 최고로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첫 직장을 다니다가 유학을 간다고 할 때도 결혼을 한다고 할 때도 왜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오케이였다. 나를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그들 덕분에 도도한 어린 은주는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세상에 상위 10% 인생은 없지만, 100% 당당한 인생은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이나 스펙이 아닌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믿고 자식이 원하는 삶을 온전히 지지하는 부모의 사랑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안에서 귀하게 대해야 밖에서도 귀하게 대접받는다.” 엄마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브런치표지(상위).JPG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5화, 상위 10%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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