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4화
오랜만에 유튜브로 영화 음악을 들었다. 때마침 카펜터스의 <Yesterday Once More> 음악이 흘러나왔다. 카펜터스는 엄마가 가장 좋아한 외국 가수였다. 엄마가 즐겨 듣는 카펜터스 노래 가운데 유난히 내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바로 <Yesterday once more>였다. 맑고 경쾌한 목소리에 실려 나오는 우수에 찬 가사가 즐거운 추억을 소환했다.
‘When I was young …… . 세상이 온통 내 것만 같았던 어릴 적 그 시절을 한 번 더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은 영화 세트장처럼 모두 준비되어 있고 그저 공부가 내 할 일의 전부였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우주로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우주인이 존재하는 21세기니까,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과거로 가볼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내 인생에 여름이었다. 인생에도 계절과 같이 사계절이 있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이지만 내 인생의 순서는 조금 다르다. 태어나서부터 나이 앞에 숫자가 20이었던 29살 때까지가 여름, 겨울은 아직 언제 올지 모르겠고 30대가 봄, 40대부터는 가을이다. 내 계절은 봄 보다는 여름이 먼저다. 여름, 봄, 가을, 겨울 순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 번 더 살아보고 싶은 인생의 계절이 여름이기 때문일까? 가장 좋아하는 계절도 여름이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온통 땀범벅이 되지만 수돗가에서 콸콸 흐르는 물로 얼굴을 씻고 나무 그늘에 드러누워 있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시리도록 눈부신 하늘과 간간히 불어와 땀을 닦아주는 바람까지 그때 여름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로 가득했다. 언제나 내 편인 외할머니와 엄마까지 완벽했다. 집도 동네도 학교도 모두 내 세상이었다. 그런 까닭이었을까?
“은주는 참 도도해!” 내 인생에 여름이던 시절, 친척들을 비롯해 친구들까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이렇게 평했고 그런 소리 듣는 게 은근히 기분 좋았다. ‘씩씩하다’, ‘점잖다’, ‘얌전하다’ 와는 달리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이름을 도도로 바꿔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내 이름은 한 반에 적어도 두 명은 꼭 있다 .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김, 이, 박 씨 성을 가진 세 명의 은주가 있었다. 그나마 성 씨가 달라서 다행이었다. 존재감 없는 A, B가 이름 뒤에 붙지는 않았으니까.
동네에서 최고 멋쟁이로 통하는 이웃이 우리 앞집에 살고 있었다. 늘 고대기로 말은 풍성하고 우아한 헤어스타일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당시 TV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사모님 같은 복장을 하고 다녔다. 엄마와 나이도 엇비슷했지만 너무도 멋스러운 모습에 왠지 아주머니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그 이웃이 다른 아주머니들 같지 않게 도도하다고 했다. 그 순간 ‘도도하다’가 내 마음에 확 들어왔다. 그날부터 이 말에 꽂혀 살았다.
‘도도하다’는 내 삶의 화양연화였던 그 시절 나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형용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