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뚫렸다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7화

by eunjoo



따뜻한 봄볕만 가득할 것 같던 내 인생의 봄날에도 예외 없이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9년 전 암수술 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엄마에게 암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이 내려졌다. 진료실에서 엄마와 함께 “암이 폐로 전이된 것 같습니다”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게 마음 깊은 곳에 꽁꽁 묶어둔 엄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가 떨면 엄마가 더 힘들 것 같아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여섯 차례의 항암치료와 몇 번의 방사선 치료가 예정되었다.


엄마가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주사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자꾸 흘러 내렸다.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실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닦고 또 닦아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암 수술 후 5년이 지나면서부터 엄마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때때로 잊고 살았다.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살뜰하게 살피지 못한 내 미련에 대한 원망의 눈물이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을 위기에 처해서야 깨달았다.


항암치료가 거듭될수록 엄마는 점점 약해져 갔다. 엄마의 체력 보충에 효과가 좋다는 약재와 식재료 항암치료를 잘 한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엄마가 오래오래 곁에 머무는 것밖에는 바람이 없었다. 마침 내가 미국에서 있던 곳에 암 치료로 유명한 병원이 있었다. 그 병원에 연락해서 상담을 하고 병원에서 요구하는 엄마 병원 기록과 촬영사진을 보냈다. 얼마 후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병원에서는 환자수송용 비행기를 보내주고 엄마가 치료 받는 동안 보호자가 그곳에서 머물 거처도 알아봐주기로 했다.


절망 속에서 잡은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한 달 남짓 남은 시간은 너무 느리게 갔다. 그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았을 때처럼 지금 이 일도 머잖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마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남동생과 TV로 시트콤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잠든 줄 알았던 엄마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간 우리에게 엄마는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너무 늦었으니 다음 날 아침에 가자는 우리말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지금 가야 해”라고 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너무도 생소한 모습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4인실이 자리가 있어서 바로 입원할 수 있었고 걱정과 달리 엄마가 편안해 보여서 안심이 됐다. 다음 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병실로 돌아온 엄마는 잠을 자고 나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주치의가 오더니 엄마 상태가 심각해서 집중 치료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병실에서 치료받으면 안 되냐는 물음에 오늘 내일이 고비인데 다른 환자들이 불편할 것 같아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그 말이 세상에서 곧 사라질 사람의 목숨은 남아 있는 사람의 불편 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서러움이 엄습했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이해심을 보여야만 했다.


엄마는 다음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산소 호흡기를 뗀 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 동안 엄마의 마지막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참 좋았고 사랑해, 다음에는 내 자식으로 만나.”라는 말을 전하며. 장지로 가는 길에는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개나리와 산등성이를 분홍빛으로 물들인 진달래가 만발했다. 봄날에 태어난 엄마는 봄날의 환송을 받으며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장례를 모두 마친 후 미국의 병원에도 소식을 전했다. 실낱같던 희망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말하던 순간 힘겹게 붙들고 있던 마음이 소리 없이 무너졌다.


마음이 무너질 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무너진 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결코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뻥 뚫렸다. 그날 이후 평범했던 하루는 엄마 없이 살아가는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 비옥한 땅이 된다.”라는 스페인 속담처럼, 그 구멍이 내 삶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느끼면서 오늘도 특별한 하루를 살아간다. 다시 엄마가 떠난 봄이 왔다. 나는 그때 우리 엄마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 마당에 있는 장미나무는 조금 일찍 꽃 봉우리가 달렸다. 올해는 우리 집 마당에 엄마가 좋아하는 빨간 장미가 많이 피었으면 좋겠다.



엄마사진(브런치서브).jpg by eunjoo [브런치 연재 에세이 <삶은 계란이다> 7화, 구멍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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