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rthwalker May 25. 2022

내게 친절한 사람들

며칠 전에는 은행엘 갔다. 점심도 거르고 간 은행에서 나는 친절한 행원을 만났다. 명패에는 김 누구누구 계장이라고 써있었다. 나는 준비해 간 서류를 차곡차곡 모아 두 손으로 건네고, 되돌아오는 빼곡한 종이에 싸인을 하고, 묻는 말에는 또박또박 답했다. 웬일로 순탄하나 하던 찰나 서류 하나에서 큰 오류가 보였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말하는 김 계장님에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럼 어떡해야 하냐고 되묻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애교머리가 동그랗게 말린 김 계장님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짚어주었다. 행여나 우리 둘 사이에 놓인 투명 아크릴판에 목소리가 막힐까 손짓을 해가며.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김 계장님 유치원 선생님 해도 잘 하셨겠다. 나는 관절 인형처럼 고갤 끄덕이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내가 가져간 한 뭉치의 서류들 속에서 마냥 어리다고만은 할 수 없는 내 나이도 보았을 텐데. 김 계장님은 내가 일어나는 순간까지 어린 아이에게 처음 슈퍼 가는 걸 가르치는 어른처럼 당부를 거듭했다. '부동산에 이거 이거 해서 언제까지 저한테 주세요, 이렇게 얘기해서 서류 받아요. 저기 이것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말고. 알았죠?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응?' 나는 마치 기대에 부응하듯 어린 아이처럼 낭랑히 답했다. 네!


그리고도 김 계장님은 수차례 나에게 전화를 해주었고 결국 난 계장님이 말한대로 서류를 받아내 다시 은행엘 갈 수 있었다. 계장님은 나에게 잘 했다고 해주었다. 나는 뭐랄까, 심부름에 성공한 아이가 된 마음으로 뿌듯하게 웃어보였다. 감사합니다. 말하곤 쑥스럽기 그지없게 작은 젤리 봉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계장님의 창구 구멍으로 쏙 밀어넣었다. 안녕히 계세요! 그 오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은행을 나선 건 어떤 것을 어떻게 당당히 말해야 할지를 알게 된 나였다. 김 계장님 덕분에. 그날 나는 기분이 좋아 가족들에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있잖아. 나 은행에서 엄청 친절한 행원을 만났다?


김 계장님 같은 사람들.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종종 내 앞에 나타난다. 나를 모르고, 내 이름을, 내가 하는 일을, 내 삶을 잘 모르지만 그저 남에게 친절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 하루를 꾸려주고, 피로에서 건져주고, 또 내 마음의 어떤 조각을 완성시켜준다. 아주 잠시 스치더라도 내게 친절한 사람들을 나는 모조리 기억한다. 그때의 시간, 장소, 그 사람의 부스스하던 머리칼, 또는 안경테, 높거나 낮았던 목소리. 내가 마주친 사람 중엔 친절하기를 타고 난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나의 상황과 그이의 상황이 맞물려 화학 반응처럼 순간의 친절함이 생겨날 때 내가 거기에 우연히 존재했던 일도 있을테다. 나는 그 우연한 친절들을 마주치는 날엔 꼭 말이나 글로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 우연들이 나를 키울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간의 친절을 베푼 사람들이, 그 기억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다시 만날 일 없을 나에게 친절했던 어른들이 신기하다.

얼마 전 동창과 오랜만에 모교 근처의 길을 따라 산책할 일이 있었다. 야, 그거 기억 나? 정말이지 입을 쉬지 못 했다. 한 걸음마다 모두 추억이었다. 지금보다 빼빼했던 내가 교복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온 땅이 내 것인마냥 여기저기 당당히 내 추억을 맡겨두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새삼 신기했다. 떠오르는 모든 기억에는 내게 친절했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때는 고마운  몰랐던 어른들. 내게는 아침마다  구운 토스트에 잼을 발라 종이에 싸주던 학교  작은 커피가게 사장님이 있었다. 작은  한켠에 그림들을 내놓고 팔던 것이 신기해  여기서 그림을 그리냐며 대뜸 묻던 내게 평생의 이야길 들려준 할아버지 화가가 있었다.   컸던 때에도, 그리고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내게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페인의  작은 도시의 숙소 주인장은 내게 병따개 하나를 구해다주려 백발을 날리며 돌아다녔다. 유스호스텔의  침대를 쓰던 언니는 자고 있던  머리 맡에 내가  먹어봐서 아쉽다고  하몽을 사다 놓고는 새벽 기차를 타고 떠났다. 리고도 또 수많은 친절의 얼굴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문득 씻으며, 밥을 먹을 , 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을 나면서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마주친 순간마다 나는 쑥쑥 자랐다. 타인이 타인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얼마고 베푼다는 것은 소설  이야기가 아니라, 물리적 증명이 가능한 실례라는  목격하며.  순간들을 겪은 나로 인해 인간 사회의 가장 순수한 명제는 경험 당사자가 존재하는 사실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도울  있다. 그것도 아무것도 바람 없이. 삶의 장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돕고 타인이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생각하고 문득 깜짝 놀란다. 나는 그걸 겪으며   사람이구나.  경험들이 없었다면, 분명 나는 지금의 나와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었겠구나.

나와는 아무런 연도 없으면서 (지연, 학연, 혈연 - 갖다붙일  있는 모든 연은  통틀어서), 잔스포츠 가방 하나 덜렁 들고 다니던 학생에게 되돌려받을 것은 무엇도 없다는  알면서도, 나에게 친절했던 어른들이 나를 키웠다. 엄마가, 아빠가 집에서 나를 키울  집밖에서 나를 키운 사람들은 이런 어른들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헤아릴  없이 많은 어른들, 혹은 겨우 한두살  많고도 내게 어른이었던 사람들. 이해타산이나 편리 따윈  헤아릴 생각조차  하고 그저 친절했던 어른들.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길은 오로지 친절한 마음뿐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 친절이 친절인지 몰라 생색 낼 줄도 모르는 사람들. 배운  오직 친절뿐인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도저히 멈출  없이 계속 나이를 먹고 다. 그럼에도 영원히 누군가보다는 어리고 누군가에겐 너무 어리다. 그렇기에 내게 친절한 어른들 역시 여전히, 있다.  순간들을 나는 전부 기억한다. 가끔은 잊더라도  기억들은  내게 계절의 바람처럼 돌아온다.

처음 독립하고 나서 제대로  밥을  챙겨먹을 가 있었다. 그때 퇴근 후 들른 마트에 김치 매대의 판매원에게 나는 김치부침개를 혼자 해먹을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분은 작은 키로 높은 매대를 한참 뒤져가며 가장 신선한 제조일자의 김치를 내게 전해주고,  맛있을 거라고 웃어주었다.

어느날은 늦잠  출근길에 만난 택시 아저씨로부터  미국에서 40 살다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는 다크서클을 가득 묻힌 내게 봄은 금방 지나가니  바람을 맞아보라고 창문을 열어주었다.

발이 아파 정형외과를 찾은 가을의 기억도 있다. 나이가 지긋한 간호사는 아가에게 하듯 따뜻하고 고운 수건을 내 배와 눈에 올려놔주었다. 그리곤 밥벌이를 하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냐며 눈을 붙이라고 했다. 그렇게 수액을 맞는 동안 쿨쿨 잠든 수고밖에 안 한 내게 아이나 먹을법한 과자와 음료수를 쥐어주었다.

나는 그날 김치의 사진을, 택시 차창  사진을,  간호사 선생님이 쥐어준 간식 사진을 모두 남겨놨다.

그리고 가끔은 그걸 찾아 본다.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문득  입에서 나오는 말에 놀라고 만다. 사는  너무 아름다워. 내게 친절한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이 내게 선물해주는 순간들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주 우울하고 종종 슬퍼하고 때로 비관하는 것이 습관인 내가 하는 생각치고는 너무나 밝지만, 그렇다고 절대 거짓이  수는 없는 . 세상에, 사는  너무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지 않니?


스치는 사람들의 스치듯 짧은 기억들이 영원히 나를 키운다. 나는 멍하니 멈춰있다가도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산다는 게 뭔지를 살갗으로 느낀다. 소름이 돋는 피부로 삶을 느낀다.  나은 어른이  은 그런 데서 나온다. 세상엔 무관심과 소와 계산보다 훨씬  나은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  한번 깜빡이는 의 일일지라도 영원히 기억되는  강함보다는 다정함이다. 다정함은  친절함이고, 친절은 낭만이 되고, 낭만은 절대로 약해질 수가 없다. 고로 나는 강한 어른이 된다는  뭔지 경험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과분한 친절들을 절대 놓치지 않고 살아갈 거다. 그리고 기록할 거다. 나는 얼마나 나이를 먹든  친절들을 날름 날름 받아먹으며, 나도 모르게 친절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 거다. 다른 사람에게,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에게, 나보다 등이 굽었거나 또는 꼿꼿한 사람에게. 내가 궁색치 않고 언제까지나 퍼내어 줄 수 있는 건 친절뿐이라는 듯이.


친절한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키운다. 언제까지나.

작가의 이전글 동화 같은 이야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