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일상과 달라진 시선
시골로 오고 나서 가족들을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주변 사람을 잘 살핀다’라는 평을 해주신 적이 있다.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고 상황과 사람을 잘 보려고 노력한다고.
어느 정도 맞다. 난 그런 성향이라 가족도 꼼꼼히 열심히 보고 있다.
예전에는 아니었다.
평상시 가족이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 까지도 나는 가족의 소중함을 잘 몰랐었다.
이전의 나에게 가족?
꽤나 무신경한 집단.
키워놓고 얼른 떠나라는 매몰찬 사람들.
마음으로는 뜨겁게 사랑할지 몰라도 겉은 차갑고, 돈과 빚 걱정에 바쁘고, 성공하여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들.
이런 프레임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 이후의 어느 날.
먼 지방으로 돈 번다고 떠난 내가 3개월 치 월급을 못 받고 허덕이고 있을 때였다. 가족(멤버 셋) 이 긴 시간을 달려와 줬다. 눈을 번뜩 뜰 기운도 없는 나를 묵묵히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밤은 8.5평짜리 원룸에서 치킨으로 마무리했는데, 맛은 기억도 안 나지만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무서웠던 어둠이 잠잠해진 밤.
4명이 있기에는 좁은 원룸.
가족이 바리바리 싸 온 짐으로 집 분위기를 내며 양념 치킨을 깨작깨작 뜯다가 잤었다.
그리고 다음 날.
7시간 동안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었다.
나는 또 성공해 본다고 몇 주 있다가 서울로 떠나긴 했다만.
당시 내 선택을 탓하지도, 혼을 내지도, 그러게 거기 가지 말라고 했지, 같은 질타도 없었다.
가장 힘든 사람이 나라고 여겨서 말을 삼켰을까.
냉랭한 줄만 알았던 우리 가족은 그랬다.
그날의 감사함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때부터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귀한 ‘부’인지 알게 되었다.
이후로 난 가족을 다르게 보고 있다.
아주 유심히, 정성껏, 세세하게.
무한한 애정으로, 적당한 관심으로, 싸워도 연민으로.
특히 최근에는 엄마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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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할머니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운전하는 엄마께 여쭈었다.
“엄마. 내가 보니까 엄마는 일주일에 7일을 쉬지도 않고 일을 하더라고.”
월, 화, 수, 목, 금은 회사에 나가시고, 평일 중 이틀의 오전은 짬을 내서 밭에 가시고, 주말에도 밭일을 하거나 가족들과 할머니를 챙기시고, 또 시간이 날 때마다 집안일까지 하시니까.
엄마는 스스로 본인을 ‘보조’라고 칭하시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기인’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엄마는 오늘같이 쉬는 날에도 차를 운전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가서도 사이즈 맞지 않는 아빠의 옷을 교환하고, 할머니의 경로당에 주스도 제공해 드렸잖아.”
“그랬지. 할 일이 많네. 네 아빠도 도와야 하고, 할머니도 챙겨드려야 하고, 너랑 바깥도 나가서 카페도 가고 휴식도 취해야 하니까.”
“나? 난 괜찮아.”
엄마는 나와의 외출도 일과로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바깥 생활하는 빈도도 적고 잘 놀지도 않으니까.
딸의 정신 건강까지 고려하셨던 거다.
“난 글이 휴식이고, 글 쓰는 게 노는 거야. 이렇게 생겨 먹어서 괜찮아. 진짜야. 그러니까 나랑 어디 다니는 건 빼도 돼.”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가끔씩은 친구들을 만나서 놀 예정이다.)
하지만 엄마가 작게 중얼거리셨다.
“나한테도 그게 쉬는 거지. 너랑 있으면 쉬는 느낌이 나니까.”
“아, 그럼 가자. 같이 놀러 다니자. 나도 그래.”
얼른 말을 바꿔서 전했다.
엄마랑은 어디든 뭘 하든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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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줄곧 ‘딸이 듬직하다, 우리 딸처럼 열심히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여태 직업적 꿈이라는 것이 없었고 평화와 행복, 무탈한 만족을 지향하는 삶을 지내오신 분이시다.
내가 보기에는 엄마가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그나마 있는 여가가 자기 전 독서다. 그 책마저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는 인간 관리의 자기 계발서를 보고 주무신다.
나는 엄마처럼.
강인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알지 못해도 괜찮은 상태의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처럼.
일주일을 타인을 위한 시간으로 잔뜩 채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처럼.
책도 많이 읽고, 집안일도 더 깨끗이 하고, 두루두루 살피고, 알뜰살뜰 살며,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을 위해 춤도 조금 춰드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날, 정말 그랬다.
경로당 할머니들께 우리 집에서 직접 만드신 주스를 나눠드렸는데.
갑자기 엄마가 일어나서 ‘전국노래자랑’이 틀어진 TV 앞에 서시더니.
“오늘은 기분이 좋네~ 춤이라도 출까요?”
음악에 맞춰 팔과 몸을 흔드시고.
할머니들은 잘한다며 웃으셨다.
엄마가(별명 : 새침데기) 괜히 저러는 분 아닌 거 내가 알아서.
기운 없는 와중에도 힘껏 웃으시라고 재롱부리시는 거 알아서.
딸로서 존경의 눈빛을 쏘았다.
“진짜 대단하셔.”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할머니를 챙기실 때마다 엄마는 흘리는 장난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너도 엄마를 놀아줘야 한다?"
말해 뭐 해, 그래야지요.
꼭.
내가 안 그럴쏘냐.
언제든 어떻게든 짬을 내 달려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