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인과 통화하다

새로운 담당자님과의 인사

by 글로긍지

"나는 재미있는 사람인가?"


집에서는 YES, 밖에서는 NO!라고 대답하겠다.

사회에 나가면 스몰토크가 종종 버겁다.

그래도 해야 할 때가 오면 머리를 쥐어 짜내고, 의식의 흐름에 맡기기도 한다.


'많이 해야지 늘 텐데...'


수다의 발전을 바라기에는 현재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할 기회가 거의 없는 시기를 지내고 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연락들을 하루에도 몇십 통이나 했었는데.

단편 영화 관련 로케이션이나 업체 거래처들, 함께하는 스탭들, 친구들, 보조출연들, 학교 사람들, 알바 관련된 분들...


시골에 온 뒤로는 외부 사람들과의 다양한 소통이 뜸해진 채였다.


이런 와중, 아주 중요한 소통 창구가 하나 유지되고 있었다. 본업으로 쓰는 글을 도와주시는 서울의 피디님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퇴사 예정을 말씀하시면서 나는 그 회사의 다른 피디님과 연결되게 되었다.

실제로 대면한 적은 없지만 내 글을 보고 계약의 기회를 내밀어준, 전화와 메일만 주고받았어도 끈끈했던 동료. 떠난다는 것은 마른하늘 날벼락같은 슬픈 소식인데, 어쩌나. 받아들여야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고 피디님을 응원드리겠다!


새 피디님의 연락을 기다렸다. 들려온 소식으로는 이전 피디님의 퇴사가 2주 미뤄지셨다고 했다. 또 어떻게 될지 모른 채로 글을 쓰며 대기했다.


드디어.

연락이 도착했다.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 낯선 분과 통화라니.

그런데.

리스펙 했던 전 피디님과 목소리와 말투가 비슷하다?

심지어 내가 있는 여기 시골 고향분이시라니?

살던 곳의 이력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잖아?


"저는 원래 그곳 살다가, 또 그곳으로 갔다가, 서울에 왔어요."

"저도 그곳 살다가, 또 그곳 살다가 시골로 왔었는데!"

"와, 그 동네 건물에 편집실이 있잖아요. 거기서 저는 밤새서 편집했었거든요."

"그러셨구나. 그 건물에서... 대단하시네요. 피디님."

"또 거기 카페 있지 않아요? 딸기로 유명한."

"맞아요. 딸기로 유명한 집이죠!"


앞서 적었다시피 난 스몰토크를 못한다.

스몰토크 점수나 등급이 있어서 D급 평가가 나온 건 아니고.

친밀감이 깊지 않은 사이의 사적인 대화에는 머리가 하얘지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때가 종종 오며 말이 막힐 때는 어깨도 굳어버린다. 어색하진 않게 자리를 끌어가는 방도는 있지만 경청과 리액션을 주로 하지 내가 말을 맛깔나게 주도하는 편은 아니다.

그나마 친한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는 재미있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편이다만.


오래간만에 낯선 분과 스몰토크도 가졌는데, 딱딱하게 '오, 와, 좋아요, 좋습니다, 대단하시네요.(진심)'을 반복했던 것 같다.

자연스러운 대화는 아니었어도 서로에 대해서, 작품관에 대해서, 업무적인 면에서도 할 말은 웬만큼 주고받았다.


그분은 서글서글하셨고, 유쾌하셨고, 사교성도 좋아 보이셨다. 업무는 점차 맞춰가면 되겠다. 긍정적인 기운이 차올랐다.

난 이전에 사람에 의해 고생했던 만큼 앞으로는 좋은 사람이 많이 붙을 거라고 믿는 편이다.

무작정 믿으려는 것보단, 믿는 대로 되길 바라는 편이고.

'제발 좋은 사람들아, 와주세요!' 하고 마음에서 외친달까.


참, 전화를 끊고 살짝 게적지근하기도.

항상 말해놓고 이러는 타이밍이 온다.


'내 말투가 너무 형식적이고 딱딱하진 않았을까?'

'격식은 차려 보였겠지?'

'존중하는 말투를 썼겠지?'


성찰하는 시간을 잠깐 갖다가 말았다.

노련하지 못해 많이 곱씹는다.

돌이켜서 반성한다고 마땅한 수가 생기는 것도, 딱히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그나마 편한 게 글이다.

글은 내가 시간을 들여 검토하고 정제할 수 있으니까.

사람과 가지는 시간은 사실적인데 글의 시간은 무한한 판타지 같아서.

심지어 글이 솔직하고 진정성 있었는지 검토하고 수정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더 편하다.


.

.

.


아무튼 외부와의 소통이 뜸해진 시골에서 한 통의 전화는 뿌리처럼 뻗어나가는 감상을 낳았다.

이런 글까지 쓰고 싶을 만큼.


새로운 피디님께서 물으셨다.


"시골, 아무것도 없지 않아요?"


그분이 젊은 시절 여기서 사셨으니 하시는 말씀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인데.


나는 답했다.


"그러게요. 그게 좋아요."


그러한 한적함은,

20분짜리의 새로운 통화 하나가 마치 커다란 이벤트가 되는 것처럼 마음을 덜커덩 울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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