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시 30분 8번 출구#1
서랍레터는 이주이와 이소이가 만드는 뉴스레터입니다. 살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서랍장을 설렘과 두려움으로 열어봅니다. 매일 밤 꿈속의 나와 무의식이 만든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록하지 않아 기억에 없던 '오늘'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격주로 목요일 늦은 11시에 보내드립니다. 서랍레터 구독폼은 글 맨 아래 있습니다. 구독하시면 아카이빙 페이지 열람 및 격주로 저희의 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19시 30분의 8번 출구 앞은 소이와 주이가 소원하고 고대하는 일상이 시작되는 시공간입니다.
주이는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회사에서는 떠올리지 않았던 여러 생각을 합니다. 집에 도착하려면 세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릴 때 내가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비로소 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일종의 에세이를 그리는 일입니다.
소이는 주변을 볼 겨를 없이 빠르게 작업실로 갑니다. 마치 계절을 밀어내는 것처럼요. 노트북을 켜고 호흡을 고르면 백지 앞의 저녁이 시작됩니다. 어떤 날은 하기 싫은 일을 맡은 사람의 꾸역꾸역일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가장 좋아하는 알사탕을 물고 있는 기분으로 문장과 이미지를 즐겁게 떠올리기도 합니다.
〈19시 30분의 8번 출구〉에는 세 번의 초록 불을 기다릴 때, 작업실에 앉아 호흡을 고르며 하는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이주이
이사 온 동네의 산책로는 재미가 없다고 애인에게 말했다. 나는 지나가는 곳마다 풀들의 생김새도, 나무가 서 있는 모습도 좀 더 확연하게 달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길바닥도 뭔가 변주가 있었으면, 갈림길도 더 다양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선택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애인은 내게 다른 산책로를 같이 더 찾아보자고 대답했다. 어쩌면 주말마다 함께 갈 만한 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산이라니. 요새 부쩍 내 체력에 신경 쓰고 있는 그이기에, 함께 산에 가면 아마 메트로놈 같은 박수 소리와 “쉬는 건 정상에 가서 쉽니다” 따위의 자비 없는 말들로 갈 길을 재촉해대겠지. 살짝 두려워진 나는 마지막 말은 못 들은 척하고 그래도 풀 냄새가 나쁘진 않다고 말을 돌렸다.
이 동네의 산책로가 마냥 별로인 건 아니다. 몇 달 전 얻은 나의 첫 자취방 근처에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강이 있고, 15분 거리에는 천이, 20분 거리에는 도시 숲길이 있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집에 혼자 있으면 본가에서 살았던 때 즐겨 했던 대공원 산책이 간절해진다. 얼마나 그리우냐면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이미지트레이닝을 해볼 정도다.
자, 방구석 대공원 산책을 해보자. 횡단보도 건너에 대공원 정문이 보인다. 나는 초록 불이 되기를 기다린다.
정문에 들어서서 몇 발자국을 가면, ‘하얀이’가 있던 곳이 보인다. 일곱 살 때 나는 한 나무에게 하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주변 나무보다 기둥이 하얗고 반질반질해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나는 동네방네 하얀이를 자랑하곤, 내 나무 친구를 위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주었다. 하얀이는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개 인형 ‘해리’와 함께, 내 마음속 가장 아끼는 존재가 되었다.
정문 분수대를 조금 지나면 엄마와의 추억이 유독 짙은 길이 나온다. 엄마가 이제는 걷지 못할 수 있다고, 다리도 손도 팔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심지어 말도 잘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들은 날로부터 며칠 뒤, 나는 엄마의 걷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꽃들이 유독 촘촘하게 모여 있어 엄마가 좋아하는 길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두 다리로 서 있고 걷고 말하고 웃는, 그러니까 엄마의 활기가 담긴 모든 것들을 꽤 필사적으로 남겼다. 훗날 이 사진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좋아하는 애와 함께 걸으며 이 애와 언제 사귀게 될지를 생각하는 내 모습이 있다. 나는 당시 내 가방에 담겨 있던, 그 애가 사준 형형색색의 젤리들을 떠올린다. 계속 걸어 후문 쪽의 한적한 풀숲에 다다르면, 재즈댄스를 배웠다며 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 애와 킥킥대며 그 공연을 관람하는 내가 있다.
후문에서 다시 정문으로 돌아오는 반대쪽 길에는 타인과 함께한, 유독 기억에 남는 사연은 없다. 나는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그만두고, 신나게 잡념을 하기로 한다. 왜 나에게는 영업하지 않는 상태의 놀이공원이 더 반짝반짝해 보이는지, 풀 그 자체보다 풀 그림자가 더 예뻐 보이는지, 나무와 풀꽃은 좋아하면서 이끼에게 관심을 둔 기억은 왜 없는지를 천천히 고민해볼 차례다.
좀 더 걸으면 다시 하얀이가 있던 곳이 보인다. 하얀이가 하얀 건 아파서 그런 건데, 내가 잘 모르고 그 점이 예쁘다고 했던 건 아닐까. 평소처럼 하얀이를 보러 갔던 날, 흔적조차 없이 베어진 내 나무 친구의 밑동을 보았던 어린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를 떠올린다. 그때의 무구한 상실감을.
엄마와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도 떠올려본다. 그 파일들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엄마는 걸을 수 있고(심지어 조금 뛸 수도 있다) 말할 수 있고 손으로 물건을 집을 수도 있으므로, 그날의 사진과 동영상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이제 내가 엄마의 활기에 덧붙여 기록해야 하는 건 매일 재활 치료를 해내는 그녀의 긍지일 것이다.
내 가방 속에 젤리를 두둑하게 채워주고 재즈댄스를 춰주던 애는, 매주 계속되는 나의 산책로 불만을 묵묵히 들어주는 중이다. 그 애는 재즈댄스 추는 법은 까먹었지만, 내 자취방에서 나와 함께 훌라춤도 추고 강강술래도 한다.
나는 비로소 ‘지나가는 곳마다 풀들의 생김새도, 나무가 서 있는 모습도 좀 더 확연하게 달랐으면, 바닥의 질감도, 갈림길도 더 다양해야 한다’는 투덜거림의 온전한 정체를 깨닫는다. 그 불만사항은 단순히 산책로의 생김새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조금 가벼운 향수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
*
대공원 산책을 마친 뒤, 나는 잠이 들었다. 꿈속의 나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의, 이사 온 첫날의 자취방에 홀로 누워 있었다. 잠에서 깬 뒤에는 서둘러 집 안을 훑어봤다. 식탁, 선반장, 의자, 거울, 탁상까지 모두 그대로인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혼자 힘으로 조립을 마쳤을 때의 뿌듯함, 새 스탠드의 전원을 처음 켜볼 때의 설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곰팡이를 닦아냈던 새벽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기꺼이 하는 수고들을 떠올린다. 나를 조금이라도 덜 지저분한 곳에서, 더 꾸며진 곳에서 생활하게 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 그건 오로지 이 공간에서만 느끼고 만질 수 있다.
문득 이곳 산책로에도 이름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나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소이
대림에 이사 온 지 곧 3년이다. 한 달 후에는 옥탑을 비워야 한다. 나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몬스테라는 그동안 수많은 잎을 틔웠다. 하지만 이내 하나둘 시들었고 이제 푸른 잎은 딱 하나만 남았다. 노랗게 변한 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바삭해지는 중이다. 모두 찢어진 잎인데…….
처음 찢어진 잎을 보았을 때 나는 마음 깊이 좋아했다. 몬스테라는 잎이 넓어 아래쪽에 있는 잎에도 햇빛을 전달하기 위해 예닐곱 번째부터는 찢어진 잎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몬스테라가 새로운 잎을 틔우기까지 보살피고, 몬스테라의 새롭게 뻗어 나오는 잎은 아래에 있는 잎을 보살피기 위해 기꺼이 찢어지는. 나는 이런 관계가 나와 옥탑 그리고 나의 삶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년 정도의 고시원 생활을 끝내고 옥탑으로 이사한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나의 얼굴에 어리던 불안이 사라졌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말을 방을 쓸고 닦으면서, 창에 들이친 비가 새긴 얼룩을 닦으면서, 삐걱대는 가구의 나사를 조이는 동안 자주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 쏟는 마음만큼 나도 받고 있다고.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빠르게 지저분해질 곳들을 골라 애써 청소하는 일이 좋았다. 가득 들어차 있는 책장의 책들을 빼서 먼지를 털어냈고,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다 빼고 대청소했다.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고 나만 아는 내 생활의 기쁨.
고시원에서 지낼 때는 잠을 때운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집에서 가꿀 수 있는 생활이 없었으므로 나는 옥탑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생활을 길어 올리게 되었다.
첫 1~2년은 대체로 서로를 보살피는 일이 잘되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이유 없이 히죽였다. 해 질 녘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자주 호들갑 떨었으며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하고 싶었던 일도 어쨌든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몬스테라의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라 생각했지만, 다음번에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땐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막막해졌다.
자랄 시기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무심히 넘긴 겨울도 오래전에 지난 후였다. 줄기마다 새우잠을 자는 사람처럼 동그랗게 웅크린 잎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기지개를 켤 것 같았지만, 미처 틔우지 못한 잎도 노랗게 변하고 있었다. 내가 눈길 주지 않은 날들이 임계점을 넘었다. 몬스테라는 죽음으로 집을 채웠고,
그제야 둘러본 집은 성한 게 거의 없었다. 나무 도마는 언제부터 관리가 안 되었는지 곰팡이가 피었고 신발장은 아래쪽 경첩이 떨어져 너덜거렸다. 책장 구석에서 치다 만 거미줄을 걷어냈다. 한눈에 발견하기 어려운 찌든 때가 장판처럼 깔려 있었고.
2020년 여름 나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너무 막막하다는 혼잣말로 여름을 다 보냈다. 나의 폐허를 걸으며 무엇이 가장 치명적인지 발견했을 때도 우는 상상밖에 하지 못했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고 믿었던 일에서도. 나는 과녁에 닿지도 못하고 곤두박질치는 화살촉이었다. 재능과 적성에 대해 자주 생각해야 했다.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것이 일이 되었을 때 적성에 안 맞을 수 있다는 것과 내가 노력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재능에 대해서도.
나는 몬스테라가 왜 죽어가는지 열심히 검색했고 내가 분갈이했던 화분이 너무 컸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몬스테라에 주고 욱여넣기만 한 것이다. 몬스테라는 사는 곳을 바꿔야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5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오면서 내가 품었던 생각처럼. 하지만 그동안 나는 나를 얼마나 구겨 넣었을까.
그해 여름 나는 전문가의 손길을 빌려 새롭게 분갈이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몬스테라는 새로운 잎을 하나도 틔우지 못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푸른 잎들도 이제 다 시들어 딱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나도 여전히 2020년 여름에 마주한 폐허를 걷고 있다. 나의 폐허가 이다지도 큰지 미처 몰랐다는 당혹감으로. 집에서는 겨우 바닥을 쓸고 닦는 일로 기진맥진하고. 거울에 비친 몬스테라와 나를 바라본다. 삶을 정하는 게 내 몫이 아닌 것만 같다.
이사를 앞둔 나는 습관처럼 다음 집에서는 다를 거라 생각한다. 분명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부산에서 서울에 올 때도 그랬고, 비로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옥탑에 들어오면서도 같았다. 작업실만 있으면 시를 더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직장에서도 다음 프로젝트 때는 더 잘할 수 있다고 가볍게 넘겼다.
당장 내게 있는 것과 지금 하는 일에 소홀했다. 지금 잘 마무리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같은 결말일 것이다. 고개를 꺾은 몬스테라의 넓은 잎이 나를 마주 보았다.
나는 필요 없는 짐부터 정리했다. 출처 모르게 얻어와 한 번도 쓰지 않은 전자제품을 버렸다.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도 한쪽으로 빼놓았다. 한꺼번에 중고서점에 팔 것이다. 냉장고에서 잠자던 소스병을 정리했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재료도 정리했다. 공구함을 꺼내 테이블과 책장의 나사를 조이고 수평을 맞췄다.
찌든 때는 걸레질로 지워지지 않았다. 청소용품을 사 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는데, 내가 처음 옥탑에 들였을 때와 비슷한 몬스테라가 있었다. 넓고 푸른 잎을 본다. 그 푸름을 좀처럼 잃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그 몬스테라와 같은 크기의 화분을 골라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돌려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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