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남성 04 - 믿음의 수여자
풍부한 감정-다양한 색채와 폭넓은 진폭을 가진 감정의 소유자에게 장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감정을 “비자발적 몰입”이라고 규정합니다. 이성과 논리로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슬픔 최대치의 3분 1만 슬퍼해야지!’, ‘아무리 화가 나도 분노는 10초만 표출한다’ 혹은 ‘기분이 꿀꿀하니, 기쁨으로 바로 전환해 하루 24시간 유지하자’라는 식의 조정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휩쌓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감정에는 이성(理性)를 잠시 날려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일단 빠져들게 되면, 감정이 가라앉을 때 혹은 해소될 때까지 그 조절이 매우 힘듭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감정에 강제로 몰입됩니다. 그래서 “감정기복”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기복이 크다”라는 말은 감정의 변화가 크고, 그 주기가 예측 불허라는 말인데, 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안정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큰 타격을 줍니다. 그 타격을,“자기 확신의 부재(不在)”, “자신(自信)의 저하”라고 표현보았는데,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떨어트립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첫 번째로 꼽겠습니다. 출발에서부터 목표(꿈) 성취까지의 여정은 자기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해 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꿈이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며, 황당한 것입니다. 로켓을 타고 화성을 가는 일이 꿈이지, 슬리퍼 신고 동네 편의점 가는 일이 꿈이지는 않습니다. ‘황당한 꿈을 과연 내가 성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자신에게 계속 던져 주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아야 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이 꾸준함입니다. 덧붙여서 성과의 즉각적인 가시화입니다. 다이어트를 목표로 했다면, 매일 운동과 식단 조절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몸무게를 재었을 때, 단 100g이라도 빠지고 있다면(성과의 가시화) 용기(자기 확신)를 얻어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목표에 도달합니다.
일반적으로 꿈은 단기간의 성취이기보다 장기간의 과제입니다. 전문직 자격증 하나 취득하려고 해도 몇 년이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꾸준함이 요구됩니다. 꾸준함이 자기 확신을 심어 줍니다. 그런데 감정 기복은 그 꾸준함을 방해합니다. 저는 앞서, 감정을 “비자발적 몰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았던 감정의 급격한 변화로 - 특히 부정적인 감정인 슬픔과 분노에 빠져버리면 하루 일상의 리듬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꾸준함이 깨집니다. 이런 일이 빈번히 발생하면, 꾸준함을 이어갈 수 없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떨어집니다.
이때 옆에서 누군가가 믿음을 다 잡아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정기복에 빠져 꾸준함이 깨진 일이 잠깐이며,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 왔다고 말해 주면 다시 용기를 얻을 것 같습니다. 원래, 목표를 향해서 걸으면 2보 전진할 때도 있지만, 3보 뒷걸음 칠 때도 있고, 다시 5보 앞으로 나가는 등, 전진과 후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되새겨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고, 배우자(남편)이며 부모(아버지)입니다. 가족은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 보는 일이 가능해, 감정 기복에 빠지는 패턴을 대략 예측하는 등, 당사자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도 높기 때문입니다.
자녀에 대한 응원, 지지, 조언, 부모 누구나가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의 할 일로 굳이 구별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결이 약간 다르다고 봅니다. 제 딸이,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원생 중에, 머리가 큰(대두大頭) 여자 아이 2명이, 머리가 작은(소두小頭) 저의 딸을, 머리가 작다고 놀렸다고 했습니다. 집에 와 울면서 저에게 그 (놀림 받은) 원통함을 하소연하는데, 저는 듣는 내내 웃겨서 힘들었습니다. 머리 작은 게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특히 여자애들이) 소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피지컬, 몸의 비율이 좋아집니다. 키가 조금 작아도 머리만 작으면, 8등신, 9등신이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머리 사이즈는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살(체중)이야 다이어트로 빼서 날씬해 질 수 있지만, 머리 크기는 인위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타고 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어린 애들이, 누구나가 선망하는 소두를 놀리고, 그 소두가 슬퍼하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은 사실의 정정이었습니다. 머리 작은 것이 좋은 거라고, 다들 머리가 작은 사람이 되고 싶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딸 아이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저의 확신 넘치는 태도에 울음을 그쳤습니다.
아내였다면, 다수가(2명이) 놀렸다는 사실에, 또 딸이 슬퍼했다는 사실에 반응해, 화를 내거나 딸을 안쓰러워했을 것 같습니다. 그 감정에 먼저 공감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 속에서는 계속 ‘팩트체크, 팩트체크, 머리 작은 게 좋은 거야! 머리 작은 게 좋은 거야!’라는 문장만 반복되었습니다. 진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맴돌았습니다. 같은 문제여도, 남자와 여자, 엄마와 아빠의 반응(대응)이 다릅니다. 공감을 먼저 해 주느냐, 아니면 깨우침을 먼저 주느냐의 차이입니다.
엄마와 딸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엄마와 딸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엄마와 아들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아빠와 딸, 아빠와 아들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는 서로의 감정에 공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든 일을 겪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해 주어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제안한다면, 그 관계는 친구이기보다는 멘토, 코치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감수성 혹은 감정의 풍부한 엄마와 딸은 서로의 감정을 읽고 공감합니다. 엄마가 아들의 감정도 읽을 수 있겠지만, 아들은 엄마의 감정을 읽을 수 없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감정을 잡어내기 힘듭니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한쪽만이 공감력이 월등히 뛰어납니다. 아빠와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와 아들은 그런 사이가 되기 더욱 힘드며, 만일 부자(父子)가 친구 사이가 된다면 그게 더 큰 문제로 보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른 비슷한 관계로 유추해 보면, 스승과 제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연예 콘텐츠를 보면, 여성들이 말하는 남자 이상형 중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두리뭉실한 소리를 싫어해,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데, 가정에서 딸이 아버지에게 제공 받아 왔던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공감보다 새로운 팩트-몰랐던 사실을 주로 전달 받았다면, 배우자(남편)에게도 그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는 게 많은 사람 -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이상형이 됩니다.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은 왜 리액션이 좋은 여성을 선호할까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서 감정적 지지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무의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어머니이고, 딸의 경우 아버지다”(이부영, <아나미와 아니무스>)라는 연구자의 말처럼, 그런 경험들이 무의식 중에 남아 있습니다.
성숙한 남성, 즉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저는 “딸의 (본인에 대한) 믿음을 붙잡아 주는 사람”이라고 답하겠습니다. 믿음의 수여자일까요? 심정적 응원이라기 보다는 팩트에 기반한 확인과 지지입니다. 즉 딸이 흔들릴 때, 걸어왔던 길(성취) 하나하나를 집어 가며- 팩트를 체크하며, 그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심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