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이 남자를 완성한다

성숙한 남성 09

by 꿈애취애

콩트 만화에서 본 일화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신에게 기도합니다. “신이시여, 저는 성공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신은 답합니다. “죽도록 일하라”. 다른 젊은이가 기도합니다. “신이시며, 저는 성공 필요 없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평균 정도로만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신은 답합니다. “미치도록 일하라”.


수십년 전, 죽어라 일하는 것, 또는 일하다 죽는 게 사회가 추구하는 미덕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직원이 죽도록 일을 시킬 수도 없고, 또 사원들도 죽도록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워라벨이 더 중요합니다. 또, 조직을 위해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딱 하나의 직업군, “일(task, mission)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 있습니다. 군대입니다. 군인에게 만큼은 그렇게 말(명령)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군인은 임무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초월적 헌신자”입니다.

군인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애국심 때문일까요? 저는 애국심이 나라의 무엇을 사랑한다는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국토 강산을 볼 때마다 설레이고 나라 생각에 잠을 설치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사랑을 뜻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 전장(戰場)으로 군인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모성애는 특별합니다. 저는 모성애(母性愛)와 상응하는 부성애(父性愛)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일치한다면, 부모애(父母愛)와 같은 말이 통용되지, 모성애라는 단어가 쓰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주장에, 많은 분들 - 특히 남성분들이 오해를 하십니다. 남자에게 부성(父性) 자체가 없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십니다. 모성과 모성애가 다른 말이듯이 부성과 부성애도 다른 말입니다. 남자에게, 아버지에게도 부성(父性)-아버지로서 가지는 속성이나 성품, 요소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성의 대표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남자들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는 지인 분과 이야기를 하다고, 제가 “남자들에게는 모성애와 같은 부성애(사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하니, 그분이 약간 발끈하시면서, “남자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이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대화에서 국어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성애와 같은 “사랑”이 없다고 했는데, 상대방은 갑자기 “책임”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남자들은 “과일”을 싫어한다’고 하니, 상대는 ‘남자들이 “고기”를 안 먹는다’는 말이냐고 따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 “사랑”을 이야기했는데, “책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옵니다.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관찰(재연) 예능 프로그램에서, 10대에 결혼해 출산한 커플이 나왔습니다. 10대 남편이 아내와 자식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니, 예능 출연자(서장훈), “저렇게 책임이 없어서야”라고 한탄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며 제가 기대했던 문장은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였는데 말입니다. 또, 연예&결혼 콘텐츠에서 남자들이 “책임”을 느껴 결혼한다는 내용을 많이 접합니다.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거 아니었나요?


“책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남자들에게 있어 굉장히 복잡하다고 봅니다.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힘듭니다. 언뜻 여자들과 남자들이 바라 보는 출산 혹은 “사랑”단어 사용법 차이와도 비견됩니다.

여자의 인생에서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를 나누는 가장 큰 사건(이벤트)은 출산입니다. 출산 전후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됩니다.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유튜브 교양 프로그램(북언더스탠딩, “아들 낳은 엄마가 남자처럼 변하는 이유)에 의하면, 남아를 출산한 엄마의 몸에서 남자만이 가지는 xy염색체가 발견된다고 합니다. 태반을 통해 아들의 염색체 일부가 산모의 몸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조사한 샘플수가 적어 아직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조사한 대상 중 xy염색체가 발견된 건수가 50%를 넘었다고 합니다. 자가면역질환(자기 몸을 지켜주어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병)은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히 많은데, 그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합니다. 신체적 변화입니다. 또 출산하고 나서는 호칭부터가 달라집니다. 엄마 본명이 아닌, 누구누구 엄마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사회적 변화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의 모든 사고의 중심이 아이에게 고정된다고 합니다. 아이가 우선이 됩니다. 심리적 변화입니다. 이렇기에, 여자에게 있어 혼인보다 출산이 더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벤트)입니다. 이 때문에 출산을 진중하게 고민하며 진행하는 여성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출산을, 결혼에 붙어 오는 1+1 이벤트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하게 따라오는 일이기에, 그리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남성들의 대부분이 출산을 결혼에 따라 오는 1+1패키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같은 출산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무게가 다른 것입니다.

“사랑”의 어법에도 차이가 납니다. 2020년에 방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중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내뱉은 명대사 중 하나가 “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입니다. 그 대사를 듣고, 제 아내는 “(기가막혀서)우~와, 남자들은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했습니다. 또,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대사를 제가 응용해, “내가 두번째 부인, 세번째 부인을 만들면, 내 사랑이 2배가 되고, 3배가 되는 게 아닐까?”라고 했다고 와이프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습니다. 이렇듯 “사랑”에 대한 남녀의 관점도 달라 보입니다.


이와 같이 특정 단어를 접했을 때, 남녀 서로가 느끼는 함의(含意)가 다를 수 있습니다. “책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상상하는 책임은 자기 맡은 바 이상을 짊어지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오래 전 뉴스 기사를 통해 접했던 내용입니다. 80년대 야구가 태동했을 때, 아이들에게 리틀야구를 가르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에게 입영 영장이 나왔고, 청년은 곧 군대를 가야 했습니다. 청년은 친구를 찾아가, 각목으로 자기 팔을 부러트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친구가 놀라, 왜냐고 묻자, 자기가 지금 군대를 가 버리면, 야구를 하던 아이들이 흩어져 버린다, 이 아이들에게 다른 팀을 찾아줄 때까지 입영을 연기하고 싶다며 말합니다. 친구는 각목을 휘둘려 청년의 팔을 부러트렸고, 청년은 부러진 팔을 근거로 입영을 연기했고,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맡아줄 팀을 찾아 인계한 후, 군대에 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實話)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리틀야구팀 역대 감독 중 한명이 그 주인공입니다. 누구도 팔까지 부러트려가며 아이들을 감당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을 했습니다.

중국 고사(古事)에 나오는 오자서(B.C. ~485, 가문에 복수를 위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본인에게서 유래된 고사성만해도, 동병상련, 굴묘편시, 일모도원, 부관참시, 도행역시, 6개나 되는, 오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인)와 그의 형 오상의 이야기도 “책임”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오자서의 아버지가 초나라 왕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왕의 분노를 사 감옥에 갇힙니다. 오자서 가문을 파멸시키기로 마음 먹은 왕은, 재주가 뛰어난 아들들을 남겨 두면 후환이 될 것을 우려해, 두 아들에게 교지(왕이 내리는 명령서)를 보내, 왕성(王城)으로 들어오면 아버지를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오자서와 그의 형은 함정임을 바로 간파하지만, 형은 자신은 장자(長子)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며 왕성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처형당합니다. 죽으러 가는 길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장자로서의 책무=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책임은 초월적 헌신을 가능하게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입니다. 어느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는데, 자기 팔을 부러트리고, 동생(오자서)이 뜯어 말려도 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해 죽을 자리로 향하게 만드는, 무엇입니다.

군인들이 제 발로 죽음이 드리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나라를 사랑해서라기 보다, 맡겨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의 힘은 생존 본능을 뛰어 넘습니다. 그리고 이 책임이 부성(父性)의 최고봉이라 봅니다. “어머니는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고, 아버지는 책임으로 자녀들을 양육한다.”입니다.


저는 모성애를 여자가 가지고 태어나는 선천적인 것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책임은 남자가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할 속성으로 간주합니다. 책임(감)이 있느냐 없느냐로 남자를 미성숙과 성숙으로 판단하겠다는 뜻입니다. 책임은 가정에서 아버지에게서 배울 수 있고, 형에게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학교에서 선배에게서, 직장에서는 사수나 상사(上司)에게서도 배웁니다. 책임이 남자를 남자답게 만들고(출처, 영화배우 제이미 폭스), 또 책임이 남자를 완성시킵니다(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의 사상).


책임이란, 맡은 바 이상을 짊어지고자 하는 태도이며, 상식을 뛰어넘는 헌신입니다. 후천적으로 길러야 할 속성이며, 남자를 완성시키는 요소입니다. 이를 가진 자가 성숙한 남성이며,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어야 할 사람이 가정에서의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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