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꿈과 망상의 차이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서귀포 2주 살기에 선정되어 제주도에서 2주간 살았다. 16명이 선정되어 갔다. 선정기준은 비공개였지만 MBTI 테스트 결과를 제출하라고 했기에 모두가 다른 MBTI였을 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는 있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그룹 중에서 가장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였다. 2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거기서 받은 임팩트는 상당했다.
서귀포 2주 살기 프로그램의 꽃은 자기발표였다. 한 사람당 15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 동안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신기하게 다들 잘 했다. 자기가 살아온 인생 이력, 자기의 목표, 자신의 가치관 등, 그 15분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인상 깊었고 감동 했고, 감탄 했다. 아직까지도 몇 개의 에피소드들을 기억한다.
그 중에 딱 한 사람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선정된 기업 대표 대신에 직원인 자기가 왔다고 했는데, 자신의 인생 목표는 파이어족이 되는 거라 했다. 30살 이전에 경제적 자유를 얻어 은퇴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들었을 때도 별로 였는데, 듣고 난 후에도 상당 기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꿈이 파이어족이라서? 아니다. 내 꿈도 파이어족이다. 내 블로그 프로필에도 쓰여 있다. 물론 나는 평생 현역도 꿈꾼다.
꿈꾸다 보면 이게 꿈인지 망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남의 꿈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타임머쉰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 아니면 화성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이게 꿈인지 망상인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야 할 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이루고 싶어 하는 의지와 행동의 유무로 나눈다.
서귀포 2주 살기에 선정되어 온 사람들 중에, 결식 해결이 사업 목표인 팀이 있었다. 한국에서 70만명이 끼니 걱정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 매일 160만명은 배달앱을 보며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70만명은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이 현실이 말이 되나 라는 문제의식에서로부터 시작된 사업이었다. 그분들은 솔류션-계획은 식당에서 남는 음식을 받아다가 끼니 걱정을 하는 분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다. 사업 동기를 들었을 때는 감탄했는데, 사업 방법을 듣고 나니 너무 빈약해 보였다. 식당 사장님들이 자기네들 음식이 남았다고 공짜로 준다는 전제였는데, 내 생각은 ‘꼭 그럴꺼 같지는 않은데’였고 사업을 지속하려면 수익이 나야 되는데, 어디에도 수익모델이 없었다. 동기는 좋은데 방법이 황당했다. 그런데 계속된 이야기는 본인들이 실제로 수십 군데의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사업을 하고 있으니 남은 음식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듣는 사장님들이 표정이 안 좋은 건 다반사고, 어떨 때는 쫓겨 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분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을까?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을 뿐이지, 이분들이 결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고 꿈꾸고 계신 분들임은 틀림없다.
꿈과 망상은 행동의 차이에서 갈린다. 집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아들에게 말했다. “내가 제국을 세워 황제가 될테니, 아들 너는 황태자가 되라”옆에서 듣고 있던 초등학생 딸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망상?” 맞다. 망상이다. 왜냐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어벤져스의 엔드 게임을 보고 나면 히어로가 되서 타노스를 물리치고 싶어진다.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마법을 쓰고 싶어진다. 하지만 금방 잊어 버린다. 우주 히어로가 되기 위한 어떠한 행동도 어떠한 계획도 없다.
반대로 우리 아들은 마법사가 되는 게 꿈이다. 영화 해리포터를 보고 마법사가 되기를 꿈꿨다. 그래서 마법 학교 호그와트가 어디 있는지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 보고, 마법 학교의 입학 대상임을 알리는 올빼미 편지가 언제 오는 지를 기다리며, 왜 아직 편지가 오지 않는지를 엄마 아빠에게 물었다. 이게 꿈이다.
자기 소개가 마음에 안 든 딱 한사람은 파이어족을 목표로 했지만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어떤 행동도, 어떤 계획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 코린이(코인 어린이)가 되어 소액이라도 코인 샀다던가, 아니면 주린이(주식 어린이), 부린이(부동산 어린이)로서 주식과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투잡을 뛸 계획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어야 우리가 공감하고 그 이야기에 박수 쳤을 것이다. 행동과 계획이 없는 꿈은 꿈이 아니라 망상이다. 15분간 자신을 알리는 그 중요한 시간에 그분은 망상을 말했다고 본다.
만약 어떤 청년이 블랙핑크 제니와 결혼하는 게 꿈이라고 선언한다면 모두들 허황된 꿈이라 여길 것이다. 청년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귀을 닫을 것이다. 그런데 청년이 지금까지 실행했던 것들과 앞으로의 구체적 계획을 말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관심이 쏠린다. 제니의 개인SNS를 팔로잉 했다거나 DM으로 제니의 퍼포먼스를 칭찬했다거나, 아니면 팬싸인회 참가를 위해 열심히 음반을 구입하고 콘서트 때는 무조건 첫열 좌석을 예매했다거나 하면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자필 편지를 직접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면 응원하고 싶어진다. 이건 망상이 아니라 그 청년의 꿈이다. 꿈꾸는 사람은 행동한다. 반 발자국이라도 전진하려고 한다.
이루고 싶어 하는 의지는 방법을 못 찾고 있을 때 나타난다. 꿈이 생겼을 때,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명확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는 경우다. 방법을 모르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계획도 세울 수 없다. 그런데 우연히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본인의 꿈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옆 테이블 사람들이 떠들고 있다면, 모든 신경이 그쪽에 쏠린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한다. 밥을 먹고 있어도 먹고 있는 게 아니다. 꿈을 향한 행동도 계획도 아직 없지만 그 의지만큼은 충만하다.
꿈꾸는 자들은 이루고 싶어한다. 망상하는 이는 이루지 않아도 된다. 그 차이가 행동으로 연결되고 실현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