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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애취애 Jun 23. 2022

행복의 벡터성

3-4, 3장 행복에는 관성이 존재한다.

예전에 행복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 마음 저울 양쪽에 행복과 불행의 무게를 달아, 더 무거운 쪽으로 판단하려고 했다. 한쪽에 행복 1개, 다른 한쪽에 불행 99개면, 불행99개가 더 무거우니,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행복을 하나씩 만들어 올리거나 불행을 하나씩 들어내서 행복의 무게를 늘려 나가면 된다. 행복의 무게가 불행의 무게보다 무거워지면 드디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된다. 간단한 논리였다. 


행복은 변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에 고난이 오면, 행복하다가도 불행해질 수 있고, 축복을 받으면 불행하다가도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삶이 나아지면, 삶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사그러들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옆에서 지켜 보니까, 행복이란 삶에 대한 자세 같다. 긍정적인 사람은 힘들고 어려워도 계속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무슨 좋은 일이 있어도 계속 부정적인 말만 한다.


부정적인 사람은 마치 자기는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속에서 불평거리를 찾아야 직성이 풀린다. 예를 들어, 집이 없으면 집이 없어 월세 나간다고 걱정, 집을 사면, 이제 대출금을 언제 갚냐고 불평한다.


처음에는 환경이 개선되면, 자세나 태도가 나아질 거라 믿었다. 아니었다. 마치 행복한 자리는 본인의 자리가 아니며, 본인은 저 밑으로 떨어져서 투덜거리며, 불만을 늘어놓아야 자기 삶의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걸 보면서 태어날 때부터 그런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긍정의 자기장이라는 표현이 있다. 긍정의 자기장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튕겨내고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만 들어온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요소만 바라보는 사업가에게 리스크를 직시하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자기장으로 자기를 둘러 싸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긍정적인 말들을 튕겨 낸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어디서든지 불행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세바시 인생질문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뭘해도 행복한 사람과 (뭘해도) 불만인 사람의 말버릇”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다. 업로드 한지 두달이 되지 않았는데, 조회수 430만회를 찍었다. 행복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박재연)이 강연한 내용이다. 그분은 뭘해도 행복한 사람을 보고 석사 논문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저 사람은 왜 늘 행복한가?’가 연구 주제였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정말 “뭘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는 거다. 그리고 거꾸로 “뭘해도 불만인 사람”도 있는 거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전공자도 그렇게 사람을 나눈다.


이게 무서운 말이다. 행복한 사람이 뭘해도 행복하니까 평생 행복하게 살게 된다. 불만인 사람을 뭘해도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고 평생 사는 거다. 이미 정해진거고,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불행한 사람이 행복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가 문제라면 외부 여건이 개선이 되어도 본인의 행복은 어차피 그대로일꺼다.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꿈꾸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아내에게 “당신은 당신의 가족, 자녀, 친구들이 모두 부정적이었으면 좋넸냐?”고 물었더니, “그런 저주가 어디있냐”고 했다. 본인도 알고 있다. 부정적인게 나쁜거라는 것을 말이다. 이건 탕수육을 부먹으로 먹느냐 찍먹으로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치킨, 양념이냐 프라이드이냐 어느 쪽이냐로 고민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관한 문제다. 긍정적인 게 좋은 거고, 부정적인게 게 나쁜거다. 그러면 좋은 쪽으로 가야 한다. 나는 아내에게 태도를 고치고 자세를 바꾸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싸운다. 


나는 말 잘한다. 내가 아내보다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말싸움으로 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긴다. 그런데 싸우고 나면 아내가 삐진다. 그러면 내 생활의 질이 떨어진다. 내가 이겼는데, 내가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한다. 아내의 화가 풀릴 때까지 숨죽이면서 지낸다.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 진 것 같다. 그래서 안 싸우기로 했다. 그리고 관찰했다.


아내 본인도 인정한다. 자기는 자기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세바시 인생질문의 박재연님 강연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 지를 너무 잘 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행복이라는 게 커다란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 보는 게 행복하면 반드시 넷플릭스를 보고, 하루 30분 햇빛을 쬐는 게 너무 좋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햇빛를 쬐려고 하는 거다. 행복은 일종의 마약이다, 한 번 맛보면 그 맛에 착 달라붙어, 그 맛을 떼지 못한다.


내가 생각한 행복과 굉장히 비슷한 표현을 한 블로그 글이 있어 이미지를 갭쳐해 놓았다(블로거로부터 캡쳐 사진 등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모든 게 좋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고,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는 표현도 마음에 든다. 이제 행복한 순간이 계속 늘어나는 거다.


행복이라는 게 꼭 큰 성공을 통해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을 때 행복한 지를 알고, 그 상황을 늘려 나가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일단 본인이 그 상황을 잘 모른다. 무의식중에서 혹은 대화 중에서 우연히 나오지만, 그것을 향해 스스로 전진할 힘을 잃었다.  


행복에는 백터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중립적인 지대에 머무는데, 긍정의 중력과 부정의 중력이 작용해서, 어떤 사람은 밣은 태양 쪽으로 끌려 가고, 어떤 사람은 어두운 블랙홀 쪽으로 끌려 간다. 한 번 끌려가기 시작하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빠져 나올 수가 없어 보인다. 점점 중력이 강해진다. 그래서 뭘해도 행복한 사람이 나타나고, 뭘해도 불만인 사람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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