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의무화, 건강의 가시화, 저강도 의료의 확대
누군가 내게, 미래 헬스 케어 트렌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건강의 의무화”, “건강의 가시화”, “저강도 의료의 확대”라고 답하겠다.
일본에서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심각한 저출산 고령사회(초고령사회) 맞이한 일본은 의료비 지출 증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1년 정부예산의 약 34%가 의료비를 포함한 사회보장비였다(그림1 참조).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재정적 압박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노동성은 “건강일본21”(주석1)이라는 기치로 의료정책을 전환한다.
그림1 일본 2021년도 예산 (총액 106.6조엔 )
일본 1인당 생애의료비-국민 한 사람이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는 약 2억 7천만 원이다. 그중에 70세 이전에 50%를 사용하고 나머지 50%를 70세 이후에 사용한다(그림2 참조). 특히 사망에 이르기 1-2년 전부터 생애의료비의 30%를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강수명에서 평균수명까지의 기간에 지출되는 의료비는 만만치 않다. 이러한 추세를 바꾸려는 시도가 “건강일본21”이다. “치료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치료에 들어가기 전부터 건강을 관리해 의료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쉽게 말하면, “건강일본21”은 한국의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는다) 프로젝트이다. 99세까지 건강하게 살다 2-3일 않다 죽으면 당연히 의료비 부담이 확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유지시키는 데 의료정책의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그림2 일본 1인당 생애의료비 (2018년, 단위:만엔)
그런데 건강유지, 건강관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학회가 발표한 인류의 학문적 난제 10가지 중, 2번째가 사람이 건강하게 되는 메커니즘의 해명이었다. 음주와 흡연, 운동부족 등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계속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운동을 하지 않는가?, 수많은 답은 있어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답-솔류션은 없다. 그중에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유효하다고 평가받는 정책이 정기검진이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 암, 고혈압, 당뇨병 등의 초기 발견이 이루어져,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예방과 치료를 달성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국가건강검진이 시행됐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에게는 매년 직원들 건강검진을 시키게 했다. 2015년부터는 멘털 헬스(정신건강, 스트레스 등)에 관한 검진도 추가되었다(주석2).
일본 건강보험조합의 경우, 건강검진율이 일정 수준 이하이면, 조합에 가입한 회사나 단체에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일본의 W대학은 교원, 직원들의 건강검진율이 기준을 넘지 못해 매년 약 5억원의 벌금을 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검진 시즌이 되면, 담당부서에서 교수 연구실로 계속 전화가 온다. 제발 건강검진 좀 받으라고. 그래도 교수들은 검진 안 받는다. 여전히 매년 벌금을 물고 있다.
여기서 관점을 개인으로 돌려 보자.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다” 이 전제를 부정하기는 무척 힘들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개인의 자유이고 선택이다. 고기가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건 자유 침해다. 음주와 흡연도 그것이 가져다주는 효용이 건강 리스크보다 크다고 여기기에 선택하는 이성적 행동이다. 그런데 보험자(건강보험조합, 국가건강보험)는 간섭한다. 피보험자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다. 개인의 무절제한 행동이 보험자에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100명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건강 조합이 있는데, 그중 10명에게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간암이 발생해 적립된 의료비가 사용된다면, 그것은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절제된 행동을 했던 나머지 90명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그러니 보험자(건강보험조합)는 가입한 회사나 단체에게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어겼을 때 페널티로서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게 건강의 의무화다. 더 이상 건강은 개인만의 영역이 아니다. 앞으로는 건강관리하도록 유무형으로 압박을 더욱 받고, 압박받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최근 코로나 백신을 안 맞았다는 이유로 채용이 취소되었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주석3)이나, 백신 접종자를 우선으로 채용했다는 기사(주석4)를 보았다.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백신 접종은 개인의 자유다. 백신 접종 부작용이 두려워 접종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데도 좀 더 건강한 쪽(백신 접종자)에 인센티브를 주고 건강하지 않은 쪽(미접종자)에게 페널티를 주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항공권 요금도 몸무게에 비례해서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비행기에 싣는 화물은 무게에 따라 요금을 낸다. 그러면 몸무게 40kg 성인과 120kg 성인이 같은 요금을 내고 비행기를 타는 게 불합리해 보인다. 무게에 따라 소모되는 연료비를 생각하면, 많은 연료가 필요한 과체중자에게 할증요금을 받는 게 합리적이다. 살찔 권리는 잊히고 살찌지 말아야 할 의무가 부각될 것이다. 우리는 건강해야 한다.
주석1 21세기 국민건강만들기 운동, 1차는 2000~2012년까지, 2차는 2013년에 시작해 진행중이다. http://www.kenkounippon21.gr.jp
주석2 2014년 6월 성립한 개정노동안전위생법에 의해 2015년 12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은 직원의 스트레스 체크 제도가 의무화 되었다. https://www.mhlw.go.jp/bunya/roudoukijun/anzeneisei12/pdf/150422-1.pdf
주석3 조선일보 11월2일자 기사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1/11/02/FYUYPKC4FBEYFLZGUGK5TDF4CI/
주석4 뉴스토마트 11월4일자 기사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084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