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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애취애 Jun 27. 2022

멋진 죽음 - 멸사, 사명, 자기주도

2장 자유가 아닌 자기 주도성(2-7)

멋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죽으면 멋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20년전 쯤이라면 멸사봉공(滅私奉公)이었다. 대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장렬하게 장엄하게 싸우다 죽는거다. 그 예를 하이틴 라이트 노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에서 찾을 수 있다. 고등학생 주인공들은 학교 컴퓨터부와 우주 함대 게임을 한다. 이기는 쪽이 동아리방을 차지하는 거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 컴퓨터부의 부장이 타고 있는 기함이 직격을 맞고 폭발하기 직전, 부장은 외친다. “커, 컴퓨터부에 영광 있으라!!!”, 그리고 장렬히 전사한다. 이거, 일본 에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의 패러디다. 딱 그 시대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죽는 순간까지 국가, 조직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거다. 그때는 그게 멋져 보였다.


10년 전에는 바뀌었다. 멸사(滅私)보다는 사명(역할)이 멋져 보였다. 묵묵히 자기가 맡은 바를 하며 자기 자리에서 죽는 거다. 군인이라면 싸우다 죽는거고, 의사라면 생명을 살리다가 죽는거다. 학생을 가르키는 선생이라면 교단에서 강의하다가 쓰러져 죽는 거다. 끝까지 자기 일 하다가 죽는 거니,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대학원 동료들에게 나도 교단에서 쓰러져 죽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니, 비난이 쇄도했다. “?”, 학생들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자기 눈 앞에서 선생이 쓰러져 죽으면, 학생들이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였다.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일일 지도 모른다고 했다. 꽥!, 맞는 말이다. 학생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 일 하다가 죽는 거는 일단 멋있는 죽음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요즘 생각하는 멋있는 죽음은 자기 주도로 죽는거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볼 수 있는 영화 “투모로우 워(The Tomorrow War)”에 나오는 한 캐릭터는 말기 암 환자다. 병상에서 누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 괴물과 맞써 싸우는 군인에 자원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자폭을 하며 외친다. “나는 내 방식대로 죽을꺼야(I’m gonna die my way) ”.


그 순간에 시나리오 작가는 여러 대사를 넣을 수 있다. “컴퓨터부에 영광 있으랴”라는 대사처럼 “인류의 영광을 위해!!!”라고 외칠 수도 있고, 군인으로서 본분을 생각하며 전사(戰死) 그 자체가 당연한 거라며 아무 대사 없이 마지막까지 총을 쏘다고 죽을 수도 있었다.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제작비 수천억을 쏟아 붓는 헐리우드 상업 영화에 대사 한 줄을 허투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사에서 이 시대를 엿볼 수 있다. 대의를 선택하든, 사회적 책임을 다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중요한거 자신이 선택하는 거다. “내가 결정한 나의 인생이야”, “내 인생은 내 방식대로 살고 내 방식대로 끝낸다.”가 대세인 거다. 


희생과 헌신, 책임이 있기 때문에 멋있기도 하지만, 그 전에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에 멋있는 거다. 분위기에 몰려 대의를 위해 죽는 거, 멋지지 않다. 피하고 싶은 의무나 역할 때문에 죽고 싶지도 않다. 자기가 좋아서 대의를 쫓고, 짊어지고 싶은 의무를 짊어진다. 모두 자기 주도이기 때문에 멋있는 거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내가 살고, 내가 죽고 싶은 방식으로 내가 선택해서 죽는다. 그게 자기 주도이고 멋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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