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복연습 (4-4)
사람들이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인데, 그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척 기쁠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인데, 마침 그게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어도 좋을 것 같다.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할 수 있는 일이어도 다행이다.
꿈이나 도전과 같은 키워드는 “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것”과 관계가 깊다. 의사가 되고 싶은 꿈에 의대에 가고 싶지만, 아직 성적(능력)이 부족하다면 성적을 올리도록 도전한다. 꿈도 마찬가지다. 당장에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건 꿈이라기 보다는 그냥 현실이다.
헌신과 희생과 같은 키워드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나보다는 가족, 어쩌면 가족보다 더 큰 공동체를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자기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 이 세 가지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아직까지 이 세 가지가 일치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은 여럿 본 적이 있다. 최근에 본 사람은 시니어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인이 좋아서 미술을 선택했고, 단 하루도 디자인이 싫은 날이 없었고, 지금도 디자인이 좋다고 했다. S대 미대를 졸업했고,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 회사의 중요한 직위에서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세 가지 -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적 여유를 추구하고 그 다음에 원하는 삶을 사는 거다.
예전 어떤 신문 기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 기사는 은퇴 후 연극 배우를 하는 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젊었을 때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 등을 생각해 연극을 뒤로 하고 직장 다니다 정년을 맞이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연극에 대한 미련이 남아, 극단에 가서 연극을 꾸준히 보고 있었는데, (단골 손님이기에) 극단 관계자의 눈에 뛰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역 제안을 받았고, 배우로서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기사를 쓴 기자님은 그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하셨는데, 나도 동의한다. 만약,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연극인의 길을 걸었다면 경제적으로 궁핍했을 것이고, 행복하게 연극을 지속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 은퇴한 지금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에 마음 편안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지 않냐고 기자님은 썻다. 맞는 말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수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다. 그분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나는 사람들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은퇴하신 어떤 분과 만나서, 인생 2모작, 재취업 등등에 관한 사업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관한 화제로 이어졌다. 그분은 베이비붐 시대의 많은 분들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다가 은퇴했다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그 다음 말은 “그러니 은퇴한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 말이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분은 “은퇴 후에도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당당하게 말하셨다. 그 의미는 은퇴 후에도 돈 벌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말고 뛰어들어 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조금 충격이었다.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하고 돈버는 기계로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분이 은퇴한 베이붐 세대 당사자였기에, 선뜻 반론을 펴기가 힘들었다.
이 일을 되새기며, 어떤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광산에서 일하는 말에 관한 것이었다. 막장에 들어가는 말은 눈을 가린다고 한다. 뛸 필요도 없어 마부가 끄는 대로 석탄이 가득한 마차를 옮기기만 하면 된다. 폐광이 되거나 다른 이유로 말을 밖으로 끌어내 눈 가리게 풀고 다시 뛰도록 하면 얼마 후 말이 죽는다고 한다. 말은 뛰는 법을 잊어 버리고,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거다.
한 평생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을 잃어 버릴 수 있다. 나중에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어딘가에 파묻어 버리면 후에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해야 하는 일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에게 “이제는 당신의 원하는 삶을 사세요”라는 말은 무척이나 생소한 말일 거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고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냥 익숙한대로 사는거다. 거기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낀다면 나름대로 좋아 보인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해 보았다는 회한은 없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자유 의지로 도전보다 지속적인 안정을 택한 거다.
하고 싶은 일(꿈)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면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여건이 맞지 않아, 당장 못할 지라도 그 꿈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하늘 나는 게 꿈이라면, 가끔 하늘을 쳐다 보아야 한다. 하늘을 보는 연습이 필요한 거다. 하늘 보기를 포기하고 땅만 보며 걸으면 나중에 머리 위에 하늘이 있는 지도 잊어 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