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복연습 (4-12)
최근, 유튜브로 본 어느 설교에서 목사님은“인생에 억울함은 없다”라고 하셨다. ‘정말일까?’라고 생각하며 내가 최근 당한 억울한 일은 뭘까 하며 기억을 되돌려 봤다.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굳이 꼽으라고 하면 oo 사업비 지원 발표 사건이 기억난다.
창업을 하면 단계별로 자금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사업들이 있다. 그 중 하나인 oo 사업에 지원했다. 지원 금액은 최대 1억원이었다. 최종 합격 인원의 2배수를 뽑는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이제 절반 안에만 들면 최종 합격이었다. 발표 준비를 했다. 당시는 코로나 상황이어서 사상 처음으로 비대면 발표-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정부 예산으로 한 사람당 1억원을 지원하는데, 모니터로 10분간 얼굴보고 선발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코로나 라는 특수 상황에서 어찌하겠는가.
선발 기관도 비대면 발표는 처음 하는 일이라 만전을 기하고 싶었는지, 발표 전날에 발표 예정자들과 온라인으로 상담하며 인터넷 환경 등을 서로 체크했다. 나도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아, 설비가 좋은 비즈니스 회의실을 빌려 그곳에서 온라인으로 상담했고 발표하기로 했다. 상담날에는 선발 기관 매니저로부터 영상과 음성이 가장 깨끗하게 보이고 들린다 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발표 순서를 전달 받고 약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순서가 맨 마지막에서 두번째였다. 지원 사업 심사위원 하셨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심사위원들도 사람이라, 하루종일 심사하면 뒤로 갈수록 퍼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면, 지쳐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발표 순서는 랜덤 - 추첨으로 정한다.
마지막에서 두번째라면 심사위원들은 다 퍼져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심사를 보는데, 나는 오후 4시30분쯤이었다. 추첨 결과를 받아들이고 발표에 임했다. 카메라를 보며 발표하는 게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발표 하던 중, 스피커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영상과 음성이 도중에 끊겨서 안 들렸으니, “중간”부터 다시 해달라는 것이었다. 크게 당황했다. ’아, 말렸구나!’ 90%쯤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중간”부터 다시 해달라고 한다. 가수가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마이크 문제로 안 들렸으니, 거기 2분30초부터 다시 불러달라고 하면 감정 이입이 잘 될 지 모르겠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해 달라는 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그리고 40-50초쯤 들리지 않았고 스피커로 소통하면서 약 30초, 합계 1분30초쯤 딜레이 되었으면, 발표시간을 그만큼 늘려 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거 없었다. 그냥 정해진 시간 10분으로 잘라 버렸다. 나는 중간에 안 들려서 돌아가서 다시 중간부터 발표했는데, 발표시간 연장은 없었다. 심사위원님들이 많이 지치셨던 것 같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내 아이템과 지표가 빼어났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원금 1억에 사업의 존망이 달려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받으면 좋았겠지만, 받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특이한 케이스를 경험하니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여담으로 발표까지 하고 탈락한 케이스를 두 번 경험했는데, 한 번이 이 oo 사업이었는데, 발표순서가 마지막에서 두번째였다. 다른 한 번은 xx 사업이었는데, 발표순서가 맨 마지막이었다. xx 사업의 경우, 운영측에 문의하니, 발표순서를 팀이나 회사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했다고 한다. 순서는 추첨으로 정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oo 사업에 탈락한 후, 몇달 후 당시 지원 받고 있은 사업의 중간평가가 있었다. 평가에 따라 사업비 수백만원이 증액 혹은 삭감이 되는 자리였다. 이것도 처음으로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화상 통화 툴 줌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보고를 하는 형식이었다. 내가 2번째 발표자였는데, 화면 공유가 되지 않았다. 내가 준비한 발표자료가 심사위원들에게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는데, 운영하는 매니저님이 크게 당황하셨다. 나는 매니저님이 가지고 있는 내 자료를 화면 공유 부탁드렸고, 발표하면서 중간중간에 매니저님에게 슬라이드를 넘게 달라고 부탁하면서 무사히 보고를 마칠 수 있었다. 아마 원인은 맥OS와 윈도우 OS의 충돌이었던 거 같다.
모든 팀의 중간보고가 끝나고, 매니저님이 “어떻게 담대하셨냐?”고 물어오셨는데, oo 사업 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사업비 1억이 걸린 발표에서 스텝 꼬여서 망친 경험을 해 보니, 이 정도는 그냥 대응할 수 있었다.
oo 사업의 경험은 억울했던 일이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경험은 없었으면 비슷한 상황에서 담대하게 대응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나중에 사업비 10억이 걸린 발표에서, 혹은 투자 유치 100억이 걸린 발표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튀어나올 지 모르는데, 한 번 경험해 본 것과 처음인 것은 확실히 다를 것 같다.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본인의 아내가 출산했을 때 피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혈관이 순두부와 같아, 손을 대기만 하면 부숴져 버려 출혈이 계속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그 케이스를 “두 번째”로 겪는 상황이었다. 담당 의사가 나중에 자신이 평생 “두 번째”겪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처음 경험이 있어, 당황하지 않고 처치해서 지혈에 성공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들어보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와 그래도 한 번은 경험해 본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분명 다를 것이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 치루어야 하는 비용이다. 일견 억울해 보이는 일, 당시에는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경험이 어떤 성공을 불러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100억, 1,000억을 불러올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인생에 억울함은 없다”고 하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