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내가 특이한가? (5-2)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아동복지원에서 실습을 했다. 원장님은 실습생들에게 다양한 심리 검사들을 시켰다. 그 중 하나가 자존감 점수였다. 자존감이 점수로 표현되는 지 처음 알았다. 그런 검사가 있는 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심리 검사지를 받고 각자가 풀고 스스로 채점했다. 채점한 결과를 보았지만, 이 점수가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 줄을 알 수 없었다. 실습생 수가 20명 조금 넘었는데, 모든 이의 점수를 공개할 리도 없고, 점수가 어느 위치에 있는 지 모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테스트였다.
그때 원장님이 말씀 하셨다. 한국 대학생의 평균이 15점이고 미국 대학생의 평균이 25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점수를 다시 보았다. 난 55점이었다. 한국 대학생 평균의 4배 가까운 점수였다. ‘아! 내가 이상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뭔가 이상하게도 보였을 것 같았다. 남들은 하루에 세끼 먹을 때, 하루에 12끼를 먹는 사람을 보면 무척 이상할 꺼 같다. 남들 - 특히 아내가 나를 보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꺼 같기도 했다.
그런데 원장님이 말씀을 덧붙혔다. “마이너스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나는 ’하! 어떻게 마이너스가 있어, 말도 안되…’까지 생각하다 보았다. 마이너스 점수가 진짜 있었다. 그것도 2명이 손들었다. 그들을 보며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심리 검사의 결과가 마이너스도 나올 수 있는 구조였는데, 그건 말이 안 됐기에 별 생각 없이 지나쳤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전제, 명제, 진리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마이너스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 거지?’라는 강력한 의문이 들었다.
마이너스였던 두 사람 중 한명은 나와 같은 실습조였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볼 때면 자기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말을 듣고 머리 속에 떠오른 글자는 딱 한 글자였다. ‘왜?’. 보통 거울을 보면 자기 이쁜데를 찾지 않나? 이쁜데가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을 텐데, 왜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거지? 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휩쌓였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마이너스 점수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10% 넘게 말이다. 실습생들은 20명이 약간 넘었지만, 점수가 마이너스였기에 손 들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을 거다.
솔직히 아직도 마이너스 점수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의 입으로 입으로 건너 건너 들었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치부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는 내 논리의 근원을 깨부셨다.
첫째,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둘째 본인이 한 말과 행동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세째 그렇기에 모두가 행복하다 라는 논리다. 첫째의 모든 사람의 “모든”이 깨진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그래서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라는 진부한 논리가 된다. 자존감이 자기애와 완전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대략 같은 맥락이다.
난 내 기준의 잣대로 다른 이(꼭 집어 아내)를 엄하게 평가했다. 왜 부정적인지, 왜 자기 행복을 모르는지, 왜 자기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 보이는지 등등.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존재들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1점이라도 있는게 디폴트값 - 기본값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게 내가 만든 3단 논리의 갖다 들이댄다면, 그것도 어떤 의미에 폭력이겠구나라고 여기게 되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이 싫어서 힘들어 죽겠는데, “넌 왜 힘들어?”, “난 네가 왜 힘든지 이해가 안 돼!”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무지 열 받을 것 같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실습 과정에 지도교수가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던진 질문, “본인이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유형인가?”에 대한 답, “행복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 가지 논리는 폐기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문장을 재검토하고 있다. 아직도 모든 사람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데, 자존감 테스트 라는 심리 검사에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마이너스”인 사람들이 존재하니, “모든 사람”이라고 확언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를 기준으로 남을 평가한다. 그 행동이 잘못되었거나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의 마음과 남의 기준을 모르니, 자기가 기준이 된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남도 먹고 싶을 꺼라는 생각에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추천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을 것이라고 생각해, 권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 맺는 기본 전제다. 그런데 자기 생각 밖의 예외 케이스를 접한다. 그러면 자기 생각이 깨지고 사고(思考)의 확장이 일어난다.
마이너스의 자존감 점수를 가지 사람을 접한 일은 꽤 강렬히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아내와 투쟁할 때, 이제는 그 부분을 끄집어 내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대신에 자존감 점수를 높이거나, 자기가 자신을 더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한다. 자존감이나 자기애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후에 변화하는 것인지 알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라는 틀이 깨져 사고(思考)가 확장된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