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내가 특이한가? (5-5)
연구를 하다가 창업을 했다. 나는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단순하게 말하면, 사업을 하는게 더 재미있어 보여서다. 그게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되돌아 보며, 연구자로서 내가 추구하던 행복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내가 나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내가 쫓던 행복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부동심(不動心)”이었다.
내 인생을, 창업을 결정했던 시기인 2019년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그전까지 내가 했던 운동 중에 팀 운동은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어 뛰어야 하는 운동에 참여한 적이 거의 없다. 또, 내가 배운 악기 중에서 합주(合奏)가 필요한 악기도 하나도 없다. 독주(獨奏)가 충분히 가능한 악기들 뿐이었다. 배워보러 했던 취미들, 예를 들어 서예도 다 혼자하는 취미다. 연구 전공을 선택했을 때도 팀을 이루어서 실험을 해야 하는 연구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전공을 더 선호했다.
나 같은 류의 사람으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난다. 어느 기사에서 읽었는데, 처음에 시나리오 작가을 하려다가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소설가로 전향했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나리오 작가보다 혼자 하는 소설가가 더 잘 좋았나 보다.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싫었다. 타인과 이익을 논하기도 싫었고, 다른 사람의 감정 파장이 내게 부딪쳐 내 감정이 요동치는 것도 싫었다. 타인으로부터의 격리를 원했다. 나만의 성(城)을 쌓고, 그 안에서 들어가서 내적 기쁨을 추구하고 싶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방향이 진리의 탐구로 이어진 것 같다.
외부와 단절된 채, 자기만의 성(城)에 들어가 자기 세계에서 살면 고립을 피할 수 없다. 사고가 굳는다. 그래서 교양의 극치를 원했다. 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체험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딪끼며 대화를 주고 받는 가운데 사회에 속하고 인생을 사는 거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니,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간접적으로 얻고자 했던 것 같다.
정리하면, 부동심을 위해 자기만의 성(城)을 쌓고 그안에 들어가 진리를 탐구하며, 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간잡적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삶이 내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대학 연구자들 중에 이런 타입이 많아 보인다. 주로 문과 연구자들인데, 심한 경우 대학 교수회의에 출석을 안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출석을 안해 정족수 미달로 안건을 의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학과장 교수가 교수실을 돌아다니면서 출석을 종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교수회의 참석은 페널티 없는 의무일텐데, 자기 연구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라고 반문해 볼 수도 있는데, 그냥 성향 같다.
내가 바라보는 삶이 그런 삶이었다. 내 방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사는 인생이었다. 내가 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런 타입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정말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만의 성(城)을 쌓은 의사를 보았다.
개업의였다. 자기 병원을 지은 것 같았다. 병원 맨 위층에 자기 집이 있었다. 아들도 의사였다. 같은 건물에서 산다. 그 사람은 시스템을 잘 구축했다. 자기가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고용한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진료과를 운영했고 비서실장에 해당되는 사람이 그분의 모든 사무적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병원 구조도 주차장을 건물이 둘러싼 형태여서 밖에서 보면 유럽 봉건 시대의 성(城)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안해도 수입이 발생했고, 의사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으며, 자식 교육에도 성공했다. 본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된다. 내가 상상하는 성(城)이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분 눈빛이 썩은 동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보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의심이 일었다. 혹시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축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활력이 사라지고 내적 에너지가 사그라들어 썩은 동태 눈빛과 같은 삶을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