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행복을 쪼개야 한다 (1-6)
어느 단톡방에서 있었던 일화다. 설명하기 쉽게“자연을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가칭을 부여한다. 한 20여명이 속해 있었던 곳이었다. 단톡방장(이하 방장)은 멤버들을 모집해 놓고, 한 1년동안 방치해 둔 상태였다. 취지는 좋은데, 방장이 활동을 안 하니, 나머지 멤버들도 그냥 방에만 소속되어 있는 일종의 수면 상태에 빠진 단톡방이었다.
아주 가끔 방장이 오프라인에서 함께 밥먹을 사람을 모이라는 공지를 하는데, 거의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방장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서 식사한 후 한 4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만남으로 인해 방장이 갑자기 단톡방 활동에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뭔가를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는 활활 타오르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는 단톡방장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선언을 해 버렸다. “이제부터 오프라인 모임 월 1회 할 예정인데, 안 나오시는 분 단톡방에서 내 보내겠습니다.”라는 말이었다.
단톡방 멤버들은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이제 와서, 왜?’ 그리고 한 멤버와 논쟁이 붙었다. 방장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친해져야 한다고 했다. 함께 밥도 먹고 함께 수다도 떨다보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고 그 일을 힘모아 할 수 있다는 의미이었다. 가칭 “자연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면 멤버들과 밥먹고 친해지면, 북한산에 가기로 뜻이 모일 수도 있고,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정의 목표가 생기고 같이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방장과 논쟁이 붙은 멤버는 반대의 논리였다. 우선 목표가 있고, 같이 일을 하다보면 나중에 자연히 친해진다는 것이었다. 북한산에 가고 싶은 사람이 북한산이라는 목표 깃발을 세우면, 함께 갈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과 북한산에 오르다보면 친해진다는 이야기였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둘 다 충분히 논리적이다. 그런데 방장의 문제는 친해져야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자기 논리만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일이 되니, 먼저 함께 밥먹고 친해질 것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걸음 나아가, 페널티를 부여하겠다고 선언한 게 최악의 수였다. “오프라인 모임 불참가 멤버 강퇴” 선언이었다. 오히려 “모임 참가 열심멤버 인센티브”가 모두가 동의하기 쉬운 룰이었을 것 같은데, 패착이었다고 본다. 결국 멤버들의 자발적 탈퇴가 이어졌고 나도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이 사건을 보면서, 사람이 일을 하는 순서, 사람을 사귀는 순서를 생각해 보았다. “친해지고 일을 하는 것”과 “일을 하면서 친해지는 것”의 선호도를 생각해 보았다. 시니어 세대와 쥬니어 세대는 어느 쪽을 더 좋아할까, 남성과 여성은 어느 쪽을 더 좋아할까 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답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이 없어도 만나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 힘을 얻을 것이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목표가 먼저일 것 같다. 동네 산 올라가는 데 먼저 친해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선호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대면 환경과 비대면환경,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임에서는 압도적으로 목표가 먼저이다. “함께 독서 모임해요”, “같이 영어 공부해요”라는 목표 깃발을 흔든 후에 사람들이 모이고 거기에서 함께 하다보면 친해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구조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같이 밥먹자고 하면 누가 모일까!, 동창회, 동향회 모임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온라인에서는 왜 모이는 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자연을 사랑하는 모임”의 방장은 자기 사는 곳 주민회에서나 해야 할 말들을 한 거다. 로컬적 기반이 있어서 자유롭게 나가고 들어오기가 힘든 곳, 동네 사람이라는 약간의 구속력이 있는 모임 - 이사가기 전까지는 얼굴을 맞부딪쳐야 하는 곳에서나 조금 통할 수 있는 말을 온라인 공간(단톡방)에서 해 버린 거다.
방장이 올드했거나 기질적으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온라인에 어울리는 방법은 아니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