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을이라고 말한다. 딸아이의 이름을 가을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나는 가을에 진심이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에게 가을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의 끝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으로 시작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즐거움,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빨간 고추잠자리와 바닥에 널린 빨간 고추의 색 대비까지도 좋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가을의 절정은 나뭇잎이 떨어질 때 온다. 청량한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색색의 낙엽을 바라보는 기쁨, 낙엽이 발끝에 툭툭 차일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도 가을의 일부다.
쌀쌀한 바람에 코끝이 시리다가도, 정오의 햇살은 그 싸늘함을 금세 녹여준다. 그래서 가을은 쓸쓸하면서도 아늑하다.
“그럼 봄은 어때?”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문득 내 삶에서 봄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었던가 되묻게 된다. 봄의 꽃이나 겨울의 눈처럼 눈요깃거리는 있을지 몰라도, 특별히 좋았던 봄도, 겨울도 나에겐 없었다. (여름은… 묻지도 말라. 싫다.)
굳이 봄의 기억을 꼽자면, 20년 전 캠퍼스의 봄이 떠오른다. 파란 셔츠에 흰 바지를 입고 지나가던 남학생에게서 풍기던 향수가 좋아서, 순간 그를 따라가 키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우스운 추억 하나 정도?
오히려 화사한 봄은 나를 더 어둡게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산후우울증 때문이었을까. 나는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육아는 힘들었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진 살아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죽음은 두려움이 되었다. 건강에 대한 불안은 점점 심해졌다. 편두통이 계속되자 병원에서 뇌 CT를 찍었고, 기침이 오래 가면 폐 CT를 찍었다. 목에 작게 솟은 혹은 초음파상 문제없다 했지만, 나는 조직검사를 고집했다. 결과는 역시 이상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려 응급실에 갔던 날도 여러 번 있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안정 취하세요.”
불안이 특정 계절에 찾아오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봄이면 증상이 조금 더 심해졌다.
거리의 꽃들을 볼 때마다, “내년에도 내가 이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 중 꽃이 눈에 들어오면 그 생각이 스며들지 못하게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깊은 우울 속에서 10년의 봄을 보냈다.
하지만 그해 봄은 달랐다.
그 봄을 맞기 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을에, 나는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을 마주했다.
둘째 아이에게 발달에 이상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했다.
하루 종일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살았고, 세수를 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돗물과 눈물이 뒤섞인 채,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던 날도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었다. 나의 일상이 실제로 무너졌다.
아이의 어려움에 대한 결과를 듣고 맞이한 추수감사절이었다. 예배당은 풍성한 열매로 장식돼 있었고, 찬양팀은 유난히 기쁘게 찬양을 시작했다. 모두가 “일어나 함께 찬양합시다”라고 외쳤지만, 나는 일어나자마자 곧 주저앉았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 인생엔 다시는 감사란 없을 거예요.
제 아이가 이런데,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날은 감사 기도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들, 내가 바라던 상황들이 하나씩 기도처럼 입에서 나왔고, 신기하게도 그것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도 ‘은혜’라 부를 수 있는 도움과 위로가 이어졌다.
그건 내게 하나의 확신이 되었다. 어두운 계절 속에도 분명히 따뜻한 빛은 있다는 것.
정말 좋은 사람들도 곁에 있었다.
내가 울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무너졌을 때, 내 양옆에서 조용히 팔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그 손의 감각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을부터 들어선 어둠의 터널을 지나,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걷다 보니 마침내 터널 끝에 빛이 보였다.
그리고 계절은 겨울을 끝내고 봄으로 나아가 있었다.
창문 너머로 따뜻한 빛이 길게 뻗어 들어왔고, 우리 가정에도 감사하게 그 봄의 기운이 닿았다.
봄이 되어 둘째 아이는 우리가 바라던 기관에 입학했다.
나 역시 새 학기를 맞아 한 초등학교의 합창부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일상’이라는 것을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모든 것을 잃은 듯했던 시간, 다시 되찾은 이 평범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해의 따뜻한 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나는 그 봄날의 감사를 기억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본다. 혹시, 나처럼 오랫동안 봄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지는 않은지.
둘째 아이의 생일에 분당천을 걸었다. 사방이 벚꽃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 문득,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에, 내가 이 아이를 낳았구나.’
봄이 또 좋은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