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우리 아이는 서서 잡니다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플랭크를 선물합니다

by 디카페인라떼

아이는 서서 자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기면증이 있거나 몽유병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안겨서 자는 걸 좋아한다. 특히 코감기에 걸려서 숨쉬기가 어렵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아이는 누워서 자지 않는다. 서서 잔다. 이 자세가 무너지면 무섭게 토라진다. 쌔근쌔근 고른 숨을 쉬며 몸을 축 늘어뜨려 이제 괜찮겠지 싶어 눕히려고 직선인 몸의 각도를 기울이면 어느새 눈을 뜨고 울 준비를 하고 있다. 제 딴에는 잠들기 까지도 쉽지 않았고 이제 겨우 잠의 세계에 진입해 푹 자려는데 훼방을 하는 것처럼 느끼겠지.


아이가 서서 자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든다. 지금 내려도 될까. 우는 걸 다시 달래서 재우는 것보다는 지금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나을까. 조금 욕심을 내도 될까. 이 정도면 램수면에 들어간 건 아닐까. 벽에 있는 시계를 노려보며 그래 5분만 더 버티자 할 때도 있다. 5분 편하려다 50분의 시간이 연장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승모근이 바짝 올라서고, 어깨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엔 머리의 감각도 마비된다. 인생에 이렇게 선채로 잠들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겠나. 만원 지하철에 끼어서 피곤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아니고선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어깨 통증으로 한의원에 가니 선생님은 단호히 “안아주지 말라”고 한다. “그래 봐야 나중에는 저 혼자 큰 줄 안다”면서. 선생님은 지금 열일곱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부모를 그저 신용카드로 생각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나도 누구 못지않은 딸바보였는데 지금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중”이라고. 나중에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젊을 때부터 자기부터 챙기라는 게 침과 뜸을 놔주신 후 추나치료까지 야무지게 해 주신 그분의 처방이었다.


돌아보면 나도 유치원 이전의 기억은 흐릿하고 모호하다. 진짜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 엄마 아빠한테 많이 들어서 저장된 건지도 알 수 없다. 더구나 나도 커서는 "아이고, 저 혼자 큰 줄 알지"라는 말은 제법 들었다. 그건 또렷이 기억한다. 남편은 그러니까 ‘학령기부터 잘해주는 게 남는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한다. 코가 막혀 밤새 칭얼대던 아이가 비로소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시름이 가신 아이의 얼굴, 처음엔 안으면 내 배꼽까지 오던 아이가 골반을 지나 허벅지까지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는 새삼스러움, 아이의 몸무게가 늘어나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도 몸의 기억이다. 10kg이 넘으면서부터 아이의 몸무게가 느는 느낌이 그램 단위로 느껴진다. 좀 묵진 한데 싶어 체중계에 올려보면 여지없다. 아이보다 큰 아이들 13kg, 15kg의 아이는 어떻게 안아주나 싶은데 그 엄마들도 이렇게 매일매일 단련되는 것이겠지.


미래의 내가 팔다리 어깨허리를 두드리며 현재의 나를 원망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과거의 나도 있다. 공항철도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시절, 열차 안에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여행 중인 엄마와 아이 둘이 있었다. 한 아이는 네댓 살 정도 되어 보였고, 동생은 아직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목은 가누지만 아직 걷지는 못하는 돌 전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북유럽 쪽에서 온 걸로 보이는 그 엄마는 배낭과 아이 둘을 데리고 여행 중이었는데, 작은 아이가 보채기 시작하자 옷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아이와 엄마는 평화로웠는데, 내가 어쩔 줄을 몰랐다. 공항철도는 다른 호선에 비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용객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뭔가 이들을 가려주어야 할 것도 같고, 그렇다고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걸 들켜서도 안 될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열차 안에서 전전긍긍했다. 당시 나의 자아는 좀 놀랐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엄마가 이해가 된다. 당장 수유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열차는 출발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나 홀로 독점했던 나의 자아를 아이와 나누어 쓰는 때가 온다. 아이의 자아는 이렇게 밀착되어 있다가 곧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 땐 나도 다시 혼자 되어야 델테다. 마치 독립하듯이.


아이를 언제까지 안아줄 것인가, 아니 서서 자는 아이를 언제 내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다만 코가 막히지 않게 선제적으로 가습기의 강도를 좀 더 높이고, 물을 자주 마시게 해주어야 한다는 건 안다. 깊은 잠을 자게 하기 위해선 미리 배를 든든히 채워주고, 소변도 미리 누여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잠들면 플랭크와 스쿼트로 코어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 훗날 이 모든 게 뇌 안에서 지워진 아이가, 심장의 안쪽을 긁는 소리를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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