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리 백호>

-태양과 별자리, 길게 흐르는 기(氣)

by 연아 아트

2022년, 47×60cm.
옻지와 분채로 그린 작품.
그리고 2025년, 화면 위에 레진을 다시 올렸다.


이 작업은 고구려 5세기경 약수리 고분벽화 사신도 중 백호를 모티프로 한다.


약수리 고분의 사신들은 모두 길게 뻗은 신체 비례를 지니고 있다.

청룡도, 주작도, 현무도, 그리고 백호 역시 짧고 단단한 동물의 형상이 아니라,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처럼 유연하게 늘어져 있다.


처음 도상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 백호를 잠시 용이라 생각했다.

몸의 길이와 유연한 곡선이 익숙한 호랑이의 형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서쪽을 지키는 사신, 백호였다.


나는 그 길이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선의 흐름을 더 또렷하게 세웠다.


백호의 몸은 정지된 형상이 아니라, 화면을 가로지르는 기의 흐름이다.

굽이치는 선은 단순한 동세가 아니라,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에너지처럼 읽힌다.


화면에는 태양이 있다.
그리고 별자리의 점들이 흩어져 있다.


약수리 고분의 서쪽 벽에서 백호는 달과 함께 그려져 있다.

동쪽의 청룡이 해와 마주하듯, 백호는 본래 달의 기운과 연결된 존재다.


나 역시 그 구조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화면에 나는 해를 두었다.


달을 지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방위를 뒤섞으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길게 뻗은 백호의 몸을 따라 흐르는 기가 화면 안에서 한 번 더 응축되기를 바랐다.


태양은 동쪽의 기호라기보다, 기의 중심처럼 자리한다.

방위의 경계를 넘어, 사신이 지닌 우주적 긴장과 에너지를 하나의 화면 안에 모으는 매듭처럼.


백호는 서쪽을 지키는 존재이지만, 그 기운은 한 방향에만 머물지 않는다.

길게 뻗은 선은 화면을 가로질러 흐르고, 태양은 그 흐름을 붙잡는 지점이 된다.

별자리의 점들은 그 위에 흩어진 시간의 흔적처럼 놓였다.


재료는 옻지와 분채.
옻지는 본래 황토색 계열의 바탕을 이룬다. 화면은 이미 대지의 색을 품고 있다.

그 위에 대자색, 먹등으로 바탕을 한 번 더 눌러주고, 기의 흐름을 따라 선을 세웠다.


이 대자색 층은 단순한 음영이 아니라,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기의 방향을 드러내는 구조다.

백호의 몸 위에 얹힌 분채의 색은 오방의 기운을 암시한다.


선명한 색들은 황토 바탕과 부딪히며 화면 안에 긴장을 만든다.

흙의 색과 기의 색, 대지와 방위의 색이 서로를 밀어내며 살아난다.


2022년 완성 당시, 화면은 흡수된 색의 상태였다.

분채는 옻지 위에 스며들 듯 자리 잡았고, 표면은 숨을 쉬고 있었다.

2025년 레진을 올린 뒤, 색은 더 또렷해졌고 표면은 응축되었다.

빛을 반사하며 기운이 밖으로 흩어지기보다 안으로 모인다.

숨 쉬는 화면과 봉인된 화면, 두 시간의 층이 한 작품 안에 겹쳐 있다.


약수리 백호는 고분벽화를 그대로 옮긴 재현이 아니다.
길게 뻗은 선과 방위의 상징을 오늘의 화면 위에서 다시 이어가는 하나의 응답이다.

태양과 별자리, 황토의 바탕과 적갈색의 흐름, 그리고 백호의 몸을 따라 이어지는 기의 선.


이 화면은 동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방향을 그리고,
움직임을 그리고,
공간을 가르는 기의 흐름을 그린 것이다.


1.약수리 백호,옺지,분채등,  47x60cm,대서초행정실장,이승연(졸작).jpg <약수리 백호>, 47×60cm, 옻지와 분채, 2022.
서쪽의 호령(레진) 해상도 약.jpg <약수리 백호>, 47×60cm, 옻지와 분채, 레진, 2025.


#약수리백호 #약수리고분벽화 #고구려사신도 #백호 #사신도 #태양상징 #별자리 #기의흐름 #옻지 #분채

#한국민화 #민화작가 #대구민화 #달서구민화 #송현동민화 #갤러리본 #연우아트센터 #이승연 #전통도상

#한국회화

작가의 이전글<비천상, 내려오고 연꽃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