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에 깃든 봉황>

-2017년에 그린 봉황도 이야기

by 연아 아트

봉황은 아무 나무에나 내려앉지 않는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봉황이 반드시 오동나무에만 깃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통 그림 속에서 봉황과 오동나무는 늘 함께 등장한다.
봉황이 나타난다는 것은 곧 태평성대가 이루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오동나무 꽃을 본 적이 없었다.


민화를 배우며 봉황도를 여러 번 그려 보았지만,
오동나무는 늘 그림 속에만 있는 나무였다.

가지와 꽃을 따라 그리면서도

실제로 그 꽃이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본 기억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봄날 길을 걷다가 처음으로 오동나무 꽃을 보게 되었다.


연보라빛 종 모양의 꽃들이 가지 끝에 모여 피어 있었다.
화려하게 눈에 띄는 꽃이라기보다는 조용히 피어 있는 꽃에 가까웠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차분한 꽃이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봉황이 이 나무에 내려앉는다고 했구나.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기품이 있는 나무.
옛사람들이 상서로운 새가 깃드는 나무로 오동나무를 떠올린 이유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2017년에 그린 이 봉황도는 바로 그 꽃을 보기 전,
아직 오동나무를 그림 속에서만 알고 있던 시절의 그림이다.


민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 몇 해가 지난 뒤였다.
대구에서 전통 민화를 배우며 기초를 익히던 시간을 지나
인사동에 올라가 처음으로 스승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게 되었던 시기였다.


그때 내가 모셨던 첫 번째 스승님이
바로 故 예범 박수학 선생님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그림들은 모두 조심스러웠다.

붓을 잡는 손도 조심스러웠고 색을 올리는 마음도 조심스러웠다.
전통 그림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라
오래 이어져 온 그림의 문법과 질서를 몸으로 익혀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화면에는 봉황 한 쌍이 오동나무 가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길게 흐르는 꼬리와 화려하게 펼쳐진 깃털은 화면에 부드러운 흐름을 만든다.
봉황의 깃털은 가느다란 선을 하나하나 겹겹이 쌓아 올리듯 표현하고
그 위에 색을 덧입히며 깃의 결을 살려 나간다.

특히 가슴 부분은 멀리서 보면 분홍 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점이 아니라 아주 가는 선으로 한 올 한 올 살려 넣은 깃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전시에서 가까이 본 사람들이 그 부분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이걸 다 손으로 그렸냐”고 감탄하던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리고 오동나무 줄기와 가지 쪽에는 작은 점들을 촘촘히 얹어
나무 표면의 질감과 화면의 리듬을 살렸다.

이 점들은 화면을 무겁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오동나무가 ‘살아 있는 표면’처럼 보이게 하는 장식적 장치가 된다.


봉황 주변에는 모란꽃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전통 회화에서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대표적인 도상이다.

그래서 봉황과 모란이 함께 등장하는 화면은 단순한 꽃과 새의 그림이 아니라
태평성대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이해된다.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이 어우러진 봉황의 채색과

화려하게 피어난 모란꽃은
화면에 풍성한 색의 대비를 만들고,
오동나무 가지와 잎들은 그 주변을 감싸며 민화 특유의 장식적인 화면을 완성한다.


지금 이 그림을 다시 보면 그때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인사동에서 예범 박수학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한 획 한 획 그려가던 시간.
전통 민화를 조금 더 깊이 배우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오동나무 꽃을 실제로 보지 못한 채
그 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 봄날, 길가에서 우연히 그 꽃을 보게 되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림 속에 있던 나무가 어떤 나무였는지,
그리고 왜 봉황이 그 나무에 내려앉는다고 했는지를.


그래서 이 봉황도는 내게 단순히 오래된 그림이 아니다.

전통을 배우던 시간과
그 전통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해 가던 시간이
함께 겹쳐 있는 그림이다.

KakaoTalk_20260304_151114354.jpg <오동나무에 깃든 봉황>, 41*126cm, 순지, 분채 등, 2017.


KakaoTalk_20260304_151114354_01.jpg <오동나무에 깃든 봉황>, 41*126cm, 순지, 분채 등,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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