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피곤해도, 자다 깨어난 뒤 다시 잠이 들어도 미니 시리즈처럼 연속으로 이어서 꿈을 꾼다.
요즘 들어 부쩍 며칠 동안 꿈 때문에 울다 웃다를 반복한다.
마치 그날의 운수를 점치기라도 하듯 꿈에서 깨어나면 해몽부터 해본다.
기분이 나쁘거나 슬픈 꿈은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어릴 때 엄마 손을 놓치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주위에서 말하기를 그때는 키가 크려고 한다는 것이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뭔가에 쫓기거나 사고를 당하는 내용들은 어릴 때 말해보면 늘 키가 크려고 그런 꿈을 꾼다고 했다.
20년 전 일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서 돌아가신 분이 죽고, 또 죽는다.
말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죽는 것이다. 그 당시 어렴풋이 주워들은 이야기가 꿈에서 조상에게 밥을 차려주고 조상이 밥을 먹으면 복권 당첨 꿈이라는 게 생각이 났는데 꿈속에서도 의식이 있었는지 자꾸 밥을 차려드리면 할머니는 숟가락도 들지 않은 채 죽는 것이었다.
살아생전에 나에게 늘 쌀쌀맞았고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던 분이 왜 49제도 안되었는데...
너무 공포스러운 상황이라 친정엄마에게 말한 뒤 잠시 잊었다.
3주 정도가 지났으려나? 친정엄마는 아직도 꿈에 할머니가 나오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엄마에게 말한 뒤로는 할머니 꿈을 꾸지 않아 신기해했는데 엄마 말이 더 무서웠다.
평소 할머니가 다니던 절에 가서 100일 기도를 올렸다는 것이다. 난 할머니의 반대에도 기를 쓰고 기독교를 선택했고 그런 이유로 결혼하기 전까지 늘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 그렇게 미워했던 손녀딸의 꿈에 나타나다니 아이러니한 경우다. 어쩌면 뭔가 알리고 싶어서 내 꿈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 꿈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그 뒤로도 나의 꿈 해몽은 가끔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어제....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을 꾸었다.
학교 강당에 학생들이 북적거린다. 코로나와는 상관없이 공기도 맑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심지어 단 한 명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강당 입구에서 코트를 입은 그가 걸어 들어온다.
한 손에는 골프채 7번 아이언을 들고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었다. 생뚱맞게 골프채란....
성큼성큼 오던 그는 내 앞에 서자마자 7번 아이언으로 꽃다발을 향해 마술봉을 휘두르듯 휘둘렀다.
그러자 꽃다발 속에서 선물 상자가 나왔다. 내게 무릎을 꿇고 선물상자를 건넨 그의 얼굴에는 밝고 환한 미소로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가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어서 풀어보라며 박수를 쳤다.
선물을 풀어보는데 웹툰에서 나오는 효과처럼 빛이 번쩍였다.
선물상자에서 뭔가를 꺼낸 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내 손가락에 꼭 맞는 리본 모양의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나는 그를 안으며 고마움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강당 입구에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는 여인이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다 완벽하고 좋았는데, 이 타이밍이 딱 화가 나는 순간이다.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꿈속에서도 못마땅했는지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나고야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해몽을 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좋은 쪽으로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늘 그랬다.
마음먹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내 운명은 가는 거라고.
태어난 사주는 바꿀 수 없지만 팔자는 내가 만들어 가는 거라고.
사주에 결혼을 세 번 할 팔자를 타고났다고 해서 지난 30년 동안 이틀 뒤로 생일을 바꿔서 챙겼다.
나이가 들면서 드는 생각은 사실 세 번 결혼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2년 전부터는 원래대로 생일을 지낸다.
'한 번이면 어떻고 세 번이면 어떻겠어.
살아 숨 쉬는 동안 마음껏 사랑하는 게 중요한 거지.'
오늘 특별히 운수대통일만한 사건은 없었다.
분명 운수대통인 예지몽이었는데 마지막에 나타나 우리를 바라보던 기분 찜찜한 여인이 문제였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