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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molove Sep 14. 2021

# 4 비우는건 없다.

채워짐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이기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나를 찾고 싶었다.

비우기 위해 애를 쓰지만 우리는 결국 비워내지 못한 채 비웠다고 마음먹고 다시 채우는 것일 뿐....

스스로 체념하며 새로움을 찾은 듯 자기 최면을 걸며 살아간다. 다람쥐 챗바퀴가 늘 제 자리에서 도는 것처럼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한다. 내려놓기, 비우기, 인내하기, 용서하기... 그 무엇 하나 내뜻대로 되는 게 있을까?

 


 

2년 전 한국영화의 핫한 소식으로 지구촌이 들썩이던 6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비영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고 영화 역사상 3번째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수상하면서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      

빈부격차가 가져오는 희비극적 갈등에 관한 메시지를 담아낸 디테일한 촬영, 미술 등 미장센과 잘 짜인 각본이라는 평가를 받고 각 나라의 호평이 이어진다는데 이런 영화를 보지 않고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그 한류 열풍에 질세라 서둘러 합류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서글펐다. 빈부격차라는 서글픈 스토리를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을 테다.  


외부강사로 출강 중이던 초등학교 개학일에 맞춰 움직이느라 부산스럽기만 하다.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출근이었지만 나의 일생에 큰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날이었다. 

개학 첫날 수업을 마친 뒤 오랜 시간 운영 중이던 음악학원을 폐원하기로 마음먹고 서류 신고를 하러 가는 중에 순간적으로 쾅 소리의 굉음과 몸이 옆으로 밀리는 충격을 받으며 운전석 차 문 기둥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려움도 함께 들이닥쳤다.

아니, 꾸역꾸역 끌고 오던 생활이 끝장이 났다고 해야 더 옳겠다. 학교에서는 심한 부상 아니면 수업을 진행하라며 출근을 요구했다. 시청 연계 수업, 교육청 수업도 개인 레슨도 상황은 마챦가지였다. 

당시 나는 피아노를 지도하는 교사로 하루 종일 눈뜨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 동안은 쉴 틈 없이 시간표를 빡빡하게 채워서 일을 했다. 늘 시간에 쫓겨 식사시간을 놓치기 일쑤였고 이동 중인 차에서 한 손에는 김밥을 다른 한 손은 핸들을 잡았다. 일중독자였으며 쉴 틈 없이 일하는 것을 즐기며 살았다. 그만큼 벌어들이는 수입도 비례했으니 딱히 못마땅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살았다.


사고 당일엔 몰랐던 여기저기의 통증이 이틀 밤 지나니 마구 치고 올라왔다. 이런 상태로라면 출근은 커녕 병원밖에 나간다고 했다간 제정신이 아니라고 몰릴 수도 있겠다 싶어 고민 끝에 학교에 연락을 했지만 2주 동안의 수업을 보강해야 한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심지어 주일에 반주 활동으로 알바를 하던 일까지 직접  일할 사람을 구해줘야 했다.

'일도 적당히 하고 살았어야지.' 

2주 동안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이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우선이지 일이 우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 정지하고 다음일은 몸부터 추스르자는 생각을 하고 미련 없이 멈췄다. 그러나 우울함과 무기력증 탓인지 눈물만 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시련이 온다지.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어디선가 들어는 봤다.

하지만 다들 그렇듯이 나에게 닥친 시련은 무게로도 측정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언젠가 하루만 평범했으면, 하루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봤으면 하고 바라왔는데 내 의지로는 해결되지 않을 상황으로 마주하게 되다니. 내가 정해 놓은 길목과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인생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아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의 대사는 그저 대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맞는 말이었다.


난 무속신앙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타고난 사주는 바꿀 수 없지만 살면서 팔자의 길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르게 열심히 산다면 반드시 좋은 삶이 된다고 믿고 살았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내 생각이 맞았다. 그리고  왜 슬픈 예감은 늘 맞아떨어지는지...




4년 전. 인생 최대의 왕성한 활동기 시절에 잘 나가던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하게 된 남편. 

자사고에 다니는 아들과 여고에 다니는 딸. 그리고 모든 돈벌이를 멈추고 병원에 누워있는 나.

남이 볼 땐 여느 가정에서나 그려질 그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마다 가정사의 사정이 다르다. 

잘 벌었던 시절에 비해 유지만 하며 이어온 복잡했던 생활은 그나마 수입원이 되었던 내가 고장이 나면서부터 도미노 쓰러지듯 차례로 무너졌다. 그 어떤 어려웠던 시절도 다 이겨냈던 나였는데 지쳐가나 보다. 한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게를 진 사람처럼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그뿐이면 다행이었을 텐데....


"인생에서 가끔 큰 시련이 오는 거 한 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느님이 주신 큰 기회가 아닌가 싶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남긴 의미심장한 말이다. 말 같지 않은 상황에 부딪힌 나는 배신의 칼날까지 다 맞아야 했다. 


'걸러지는 거였구나, 이렇게.'


병원에서의 생활은 옥상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병실에 처박혀 베개에 얼굴 묻고 우는 게 일상이 되었다. 5층 건물밖에 되지 않던 옥상에서는 하루면 수도 없이 뛰어내렸다. 용기가 없어 마음만 지옥을 오갔을 뿐.

시간이 지날수록 퇴원하는 게 두려워졌다. 이대로 아무도 보지 않아도 되는 병실에서 살고 싶었다.

그해 여름 서글프고 잔인하다 느끼며 봤던 영화 '기생충'속의 빈곤함을 느끼는 약자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딸이 병문안을 왔다. 알바를 하느라 도통 얼굴 보기가 힘든 고등학생이다. 한때 연애계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뒤 연습생 생활을 접고 들려오는 비난을 등 뒤로 다 받아치며 자아를 찾아 헤매는 고단한 소녀의 모습이다. 어느 부모나 다 같은 맘이라는 것을 굳이 알리지 않아도 부모라면 애틋함을 공감할 것이다. 혼돈의 일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잘 견디며 이겨내 주기만을 바랐다.

딸과 함께 올라간 병원 옥상에서 처해있는 두려움에 또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도 언젠가는 엄마가 되고 가장이 되어 큰 결정을 내리면서 아파할 날이 오겠지, 많이 아파하지 않고 살면 좋겠는데, 사랑도 알게 되고 이별도.... 살면서 누구나 다 알고 겪게 되는 일들이지만 그래도 너무 큰 상처는 없이 살아가기를.' 모든 부모의 바람일 테지.


말없이 서로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네는 딸.


"엄마, 엄마는 특정 한때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거나  전에 뿌렸던 퍼퓸향을 다시 맡으면 가슴이 뭉클해져?"

"그럼~엄마도 어느 기쁘거나 설레이거나 슬픈 장면에서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을때,

 좋았던 때 맡았던 향을 다시 맡게 될때 스쳐지나는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가슴 한곳이 뭉클해지지."


딸에게 추억이 생겼나 보다. 가슴 아픈 추억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하니 적당히 아린 아픔이기를.... 잠시 생각에 잠긴 딸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웃으며 말한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야."

"왜?"

"엄마는 늘 용감하니까, 그래서 용감한 건 내가 엄마 닮았나 봐."


가슴이 미어져 왔다. 

'뭔가 아픔이 스치는 너만의 시절을 잘 살아주고 있어서 고맙구나.'

 내려앉는 노을을 한껏 품에 안으며 엄마와 딸은 나의 엄마도 겪었을 애틋함의 온도를 알아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싶었고 잘해볼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퇴원을 했다.

하지만 한번 넘어진 자리였을 뿐인데 그렇게 깊은 웅덩이인 줄 몰랐다. 생각보다 깊고 아팠다.

그리고 그해 겨울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두움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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